‹ 목록으로 말단 킬러의 육아일지

1화

인천항 8번 부두 뒤편, 녹슨 철제 셔터 안쪽의 창고에서 나는 컨베이어 벨트의 롤러 베어링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스패너 손잡이에 낀 기름때가 손톱 밑까지 새까맣게 스며들어 있었고, 그 손끝만 보면 누구도 내가 사람을 스물세 명 죽여본 놈이라는 걸 짐작하지 못할 것이었다. 스물세 명. 정확히는 스물넷이었지만 마지막 하나는 세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세다 보니 숫자가 더러워서, 그즈음부터는 세지 않기로 한 것뿐이다. 기계공 이도현, 17세, 인천 중구의 물류창고에서 정비 보조로 일하는 성실한 소년. 그게 내 위장이었고, 실제로는 이 창고를 소유한 한주혁 조직의 히든카드였다. 조직 내에서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넷뿐이었다. 한주혁 본인, 조직 간부인 박기범, 그리고 나머지 둘은 죽었으니 이제 둘이라고 해야 하나. 조직의 구조는 단순했다. 위에 한주혁이 있고, 그 아래 박기범을 포함한 간부 다섯이 각자 구역을 나눠 관리했으며, 그 밑으로는 흔한 잡부와 경비들이 있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였다. 서류에도 없고, 회의에도 안 나가고, 급여도 현금으로만 받는, 있으되 없는 인간. 어쨌든 내 일은 간단했다. 기계를 고치는 척하면서 5층 안전가옥에 숨겨둔 한서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선에서 지키는 것. 한서아는 다섯 살이었고, 한주혁의 유일한 딸이었으며, 인천 바닥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어린애였다. 값이 나간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실제로 그랬다. 저 조그만 애 하나를 인질로 잡으면 한주혁이 십 년 동안 쌓아 올린 걸 하루 만에 다 내놓을 판이었으니까. 렌치를 내려놓고 손을 닦던 순간, 창고 전체가 울렸다. 콰아아앙- 셔터가 통째로 날아가는 소리였고, 나는 그 진동이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걸 느끼면서도 별로 놀라지 않았는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이미 반년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년 전, 부산 쪽 조직 하나가 인천 항만 지분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언젠가는 이런 그림이 나올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다만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오늘은 서아가 안전가옥이 아니라 3층 사무실에 있는 날이었다. 한주혁이 딸을 데리고 장부를 정리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이었는데, 나는 그때 이미 이 인간이 아빠로서는 낙제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장부 정리를 애 옆에 앉혀놓고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 인간 머릿속에 자식 안전이 몇 번째 순위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였으니까. 비상계단을 두 층씩 뛰어오르며 나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정리했다. 총성 세 번, 간격 짧음, 발소리 최소 여섯. 계단 벽을 타고 울리는 발소리의 무게로 미루어 보면 셋은 몸집이 크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몸집이 큰 놈들은 정면에서 밀어붙이는 역할이고, 가벼운 놈들은 뒤에서 정리하는 역할일 확률이 높았다. 소음기를 안 썼다는 건 여기서 무슨 짓을 하든 알려질 걸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건 이 습격이 그냥 위협이 아니라 아예 끝장을 보려는 작업이라는 뜻이었다. 하-. 타이밍도 최악인데 규모까지 최악이라니, 오늘 재수 참 없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걸 느꼈는데, 이건 공포가 아니라 그냥 근육이 산소를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3층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책상 뒤에 숨어 울음을 참고 있는 한서아였다. "삼촌..."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고, 나는 그 순간 이 조그만 게 소리를 참으려고 이를 악물고 있는 걸 보면서 속으로 이 씨발 왜 이런 걸 참게 만드나 싶어 화가 났다. 다섯 살짜리가 총소리에 놀라 우는 게 정상이지, 울음을 참는 게 정상이 아니다. 이미 이 애는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어본 것처럼 굳어 있었고, 그게 나는 제일 싫었다. 나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문 바깥의 발소리를 다시 세었다. 둘이 이쪽으로, 넷이 계단 아래쪽에서 위로. 책상 밑으로 손을 뻗어 서아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괜찮다는 뜻이었는데, 이게 얼마나 개소리인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이미 몸을 낮춘 채 첫 번째 놈의 무릎 뒤쪽을 걷어차고 있었다. 퍽- 무게중심이 무너진 놈의 손목을 잡아 총구를 벽으로 돌리며 관절을 반대로 꺾자,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놈이 짧게 비명을 질렀는데 그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두 번째 놈의 목젖에 손바닥을 박아 넣고 있었다. 퍼억- 숨이 막혀 컥컥거리는 놈을 밀어 넘어뜨리며 나는 서아 쪽을 힐끗 돌아봤고, 아이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조금 안심했다. 애가 이런 걸 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놈이 다시 일어나려고 팔을 짚는 걸 보고, 나는 그 팔을 발로 지그시 밟아 눌렀다. 뭐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정확히 뭐가 부러졌는지는 관심 없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넷은 좁은 통로에서 순서를 지켜야 했다는 게 놈들의 최대 실수였는데, 그 좁은 구조 덕분에 나는 한 명씩 상대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놈이 총을 겨누려는 순간 나는 몸을 벽에 붙여 사선을 피했고, 두 번째 놈이 그 뒤를 따라 발을 내딛는 타이밍에 맞춰 계단 손잡이를 밟고 뛰어올라 놈의 얼굴에 무릎을 박아 넣었다. 콰직- 세 번째 놈은 앞의 둘이 쓰러지는 걸 보고 주춤했는데, 그 주춤한 반응 속도 자체가 놈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을 팔로 감아 조른 뒤 계단 벽에 머리를 부딪쳤고, 네 번째 놈은 그냥 도망치려다 발이 걸려 굴러떨어졌다. 굳이 자세하게 묘사할 필요도 없이 결과만 말하자면 삼십 초쯤 뒤에 그 넷은 모두 계단참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서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괜찮아?" 존댓말을 쓸 필요가 없는 유일한 상대였다. 서아는 눈을 가렸던 손을 슬며시 내리고 나를 올려다보더니, 놀랍게도 울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 다섯 살짜리가 벌써부터 이런 상황에 무뎌지고 있다는 게 나는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다. "삼촌, 아빠는?" 서아가 묻는 순간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서아의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겨주었다. 아빠가 어디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나도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 "금방 찾아줄게. 여기 꼭 붙어 있어." 서아는 내 소매를 꼭 붙잡았고, 나는 그 조그만 손의 힘이 생각보다 세다는 걸 느끼면서 한숨을 삼켰다. "이도현." 계단 아래쪽에서 낮고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서아를 등 뒤로 감추며 그쪽을 노려봤고,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남자가 양복 매듭까지 단정하게 갖춘 채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걸 보았을 때, 나는 이 새끼가 오늘 나를 진짜 화나게 만들 셈이구나 하고 직감했다. 넘어진 부하들의 몸을 지나치게 태연하게 넘어오면서도 구두 밑창 한 번 헛디디지 않는 걸 보면, 이 인간은 저 여덜 명이 다 나가떨어질 걸 이미 예상하고 온 게 분명했다. "협상을 하러 왔습니다." 놈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이 자식이 방금 여덟 명을 보내놓고도 저 말을 예의 바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앞으로 벌어질 일이 결코 짧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예감할 수밖에 없었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