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 밤, 그녀의 가정부

3화

삐빅삐빅삐빅. 알람이 새벽 여섯 시에 울렸다. 나는 잠을 설친 탓에 눈이 뻑뻑했지만, 이불을 걷어차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창밖은 아직 컴컴했고, 방 안 공기는 냉장고 속처럼 차가웠다. 보일러를 아낀 탓에 손끝이 시렸다.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며칠 밤을 설친 사람답게 눈 밑이 거뭇했다. 손으로 뺨을 두어 번 두드려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옷장을 열고 그나마 깔끔한 셔츠를 뒤적였다. 목 부분이 살짝 늘어났지만 그거 하나가 제일 나았다. 청바지에 셔츠를 대충 걸치고, 낡은 운동화를 신으며 몇 번이나 시계를 확인했다. 버스 노선을 세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정류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첫차가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뒤꽁무니의 빨간 불빛이 점점 작아지는 걸 바라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쳤다, 진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다음 차는 이십 분 뒤였고, 그러면 도착 시간이 늦어질 게 뻔했다. 첫 출근부터 지각이라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결국 나는 손을 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미터기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숫자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심장도 같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이 돈이면 이틀 치 식비였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낯선 동네의 높은 건물들을 보며, 나는 무릎 위에 놓은 손을 꽉 쥐었다. 잘해야 한다. 오늘 하루가 앞으로의 모든 걸 결정할 것 같았다. 아파트 로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8시 3분이었다. 로비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숨을 몰아쉬며 인터폰을 누르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몇 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문이 열리고, 현관에 서 있던 윤지수가 시계를 힐끗 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등을 보이는 그 뒷모습에서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었지만, 그 침묵이 어떤 지적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청소용품은 다용도실에 있어요.” 그녀가 짧게 말했다. “세제 종류마다 쓰는 곳이 다르니까 라벨 확인하고.”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화가 난 건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 감정이 지워진 듯한 어조였다. 다용도실 문을 열자 처음 보는 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리석용, 원목용, 유리용, 스테인리스용. 이름만 봐도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용도가 다르다니. 나는 병 앞에 서서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며 라벨을 읽었지만, 뭐가 뭔지 하나도 감이 오지 않았다. 글씨는 작았고, 영어 단어까지 섞여 있어서 더 헷갈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늦은 지각으로 이미 안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여기서 더 지체하면 정말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아무거나 하나 집어 거실 바닥에 뿌렸다. 익숙한 세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런데 곧, 반짝이던 원목 바닥에서 하얗게 얼룩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심장이 얼어붙었다. “어, 어……”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걸레로 급히 문질렀지만 얼룩은 오히려 더 퍼졌다. 손끝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거……” 윤지수가 서재에서 나오다 그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바닥으로, 그리고 내 손에 들린 병으로 옮겨가는 걸 느끼며 나는 온몸이 굳는 걸 느꼈다. 마치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죄송해요, 저……” 말을 더듬으며 얼룩을 닦으려 했지만, 손이 떨려서 걸레질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온갖 최악의 상상을 다 했다. 당장 나가라는 말이 나올까, 아니면 그보다 더 차가운 말이 나올까. 그런데 그녀는 다가와서 내 손에 들린 병을 가져갔다. 손가락이 스치듯 닿았는데, 그 온도가 이상하게 서늘했다. 라벨을 확인하고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건 대리석 전용이에요. 여긴 원목이고.”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됐어요. 이번만.”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이 오히려 더 낯설었다. “정말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으려 했지만, 그녀는 벌써 몸을 돌려 서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걸레를 쥐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세제가 묻은 손끝이 화학약품 때문에 따가운데도 이를 악물고 계속 문질렀다. 손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얼룩이 조금이라도 옅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잘하고 싶었다. 정말로. *** 점심시간이 되자 주방에서 도마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규칙적인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윤지수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빵에 버터를 바르고, 채소를 겹겹이 쌓아 올렸다. 그러고는 완성된 샌드위치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먹어요.” 그녀가 무심히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사실은 아침도 걸러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고용인과 가사관리사 사이에 밥을 얻어먹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괜히 폐를 끼치고 싫은 소리를 들을까 두려웠다. “먹으라니까요.” 그녀가 다시 한번, 이번엔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다. “일 시키는 사람이 밥 안 챙겨주면 그게 문제죠.” 그 말투에는 거절을 허용하지 않는 무게가 있었다. 나는 결국 자리에 앉아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빵과 채소, 얇게 썬 햄이 전부였는데도 그날 먹은 어떤 음식보다 맛있게 느껴져서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씹을 때마다 입안 가득 채소의 신선한 향이 퍼졌고, 마요네즈의 부드러운 맛이 텅 빈 위장을 달래주었다. 그녀는 맞은편에 앉지 않고 서서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손에 든 흰 머그컵에서 옅은 김이 올라왔다. 그 뒷모습이 겨울바람처럼 시린데도,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나는 그 그림자를 훔쳐보다가 황급히 시선을 접시로 떨어뜨렸다. “다 먹었으면 오후엔 세탁물 정리해요.” 그녀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여전히 온기가 없었지만, 나는 그 짧은 문장 속에서 방금 전 샌드위치를 만들어준 손길과 같은 결을 느꼈다. *** 오후에는 세탁물을 정리하다가 옷장 서랍에서 낡은 사진 액자를 발견했다. 손에 잡히는 감촉이 다른 물건들과 달라 눈길이 갔다. 나무 액자는 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유리에는 옅은 지문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오래 만졌던 흔적처럼 보였다. 어린아이의 사진이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햇살 아래 눈을 가늘게 뜨고 이가 다 보이도록 웃는 얼굴이 낯익은 듯도, 낯선 듯도 했다. 누구 사진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윤지수의 딸일까, 조카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누군가일까. 어떤 상상을 해도 그 끝에는 물어볼 수 없다는 벽이 있었다. 서랍을 조심스레 닫으며, 나는 방금 본 걸 못 본 척하기로 했다. *** 저녁 6시가 다 되어 청소를 마치고 짐을 챙기려는데, 윤지수가 현관까지 나와 나를 배웅했다. 신발을 신는 내 손끝이 아직도 세제 때문에 따가웠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내일도 8시.” 그녀가 말했다. 그러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덧붙였다. “늦지 않게, 버스 시간표 확인해서 나와요. 택시 타지 말고.”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녀가 내가 오늘 택시를 탔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파트 앞에서 내린 걸 봤을까, 아니면 그저 지레 눈치를 챈 걸까.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살짝 시선을 피했다. 그 짧은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요, 늦었어요.” 그녀가 말을 돌리며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그 무심한 배려가 이상하게 가슴을 뛰게 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나는 손목의 흉터를 만지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 서투르고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는데도 이상하게 몸이 가벼웠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불빛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그리고 그 가벼움이 두려웠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일 아침, 그녀가 만들어줄 또 다른 샌드위치와, 시계를 힐끗 보던 그 눈빛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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