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숨긴 몸, 허락된 밤

3화

환영회는 강당 옆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형광등 아래로 접이식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신입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기소개를 나누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어색한 침묵이 번갈아 오갔다. 서연은 벽 가까이에 서서 사람들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손에 든 종이컵의 물은 벌써 반쯤 줄어 있었지만, 마실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낯선 얼굴들 속에서 안면을 익히려 애썼지만, 이름과 얼굴이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며 웃었고, 누군가는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서연은 그 틈에 섞이지 못한 채, 마치 투명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무대 앞에 조혜진이 마이크를 들고 섰다. 단정한 셔츠 차림에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걸음걸이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이크를 쥔 손끝이 정확히 입 앞 십 센티 지점에서 멈췄다. — 청람관에 입주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자치위원회 회장 조혜진입니다. 목소리가 홀 안을 울렸다. 소음이 잦아들었다. 몇몇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 청람관은 규율을 중시하는 곳입니다. 특히 이성 방문 금지 규정은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경고 없이 즉시 조치합니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안에 실린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서연은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어제 욕실에서 마주쳤던 시선을 떠올렸다. 물기 어린 타일 바닥, 흐릿한 김 사이로 스쳐 지나가던 눈빛. '저 사람, 뭔가를 눈치챈 걸까.' 낫표 속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조혜진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팔짱을 끼었다. 손끝이 옷소매 안으로 파고들었다. 규정 설명이 끝나고 짧은 박수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서연의 귓속에는 아직 조혜진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예외 없이. 경고 없이. 두 단어가 반복해서 울렸다. 환영회가 끝나갈 무렵, 사람들이 흩어지며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었다. 몇몇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고, 몇몇은 벌써 친해진 듯 팔짱을 끼고 걸어 나갔다. 서연은 조용히 홀을 빠져나가려 했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벽을 따라 걷는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 한서연 씨. 조혜진이었다. 서연은 몸을 돌리며 표정을 최대한 무심하게 유지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쿵, 하고 한 번. — 네. — 아까 오리엔테이션 명단 확인했는데, 강원도 출신이시더라고요. — 네, 맞아요. — 특이하네요. 이 학교엔 지방 출신이 많지 않은데.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서연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듯했다. 코끝에서부터 눈매, 턱선까지, 마치 지도를 그리듯 훑고 지나가는 시선이었다. 서연은 그 시선을 견디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 그냥... 대학을 여기로 오고 싶어서요. — 그래요.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조혜진이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듯 짧게 좌우를 살폈다. 그 동작 하나에서도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 어제 욕실에서 목소리가 좀 특이했잖아요. 그런 저음, 원래부터 그랬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숨이 잠깐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서연은 침을 삼키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었다. 입꼬리를 올리는 데 평소보다 훨씬 많은 힘이 들었다. — 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요. 원래는 안 그런데. — 그래요? 다행이네요. 조혜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그 미소는 서연에게 전혀 안심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서늘한 무언가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웃음의 모양은 분명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온도는 얼음장 같았다. — 앞으로도 눈에 좀 담아둘게요, 한서연 씨. 규율 위반은 예외가 없으니까. 짧은 인사를 남기고 조혜진은 뒤돌아 사라졌다. 구두 굽 소리가 또각또각, 규칙적으로 멀어져 갔다. 서연은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었다. 손바닥에 옅게 손톱자국이 남았다. '왜 나를... 왜 굳이 나를 지켜본다는 거지.' 낫표 속 질문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조혜진의 시선에는 단순한 규율 확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서연은 그것이 의심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치 사냥꾼이 발자국을 따라가듯, 조혜진은 이미 서연의 뒤를 쫓기 시작한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서연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복도의 조명은 절반쯤 꺼져 있어 걸음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하지만 마음속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412호 문을 열자 아름이 이미 그림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붓통을 정리하는 손길이 느긋했다. 캔버스 위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파란빛 물감이 얼룩져 있었다. 아름은 서연을 보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환영회 어땠어요. — 그냥... 평범했어요. 서연은 대답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신발을 벗는 손끝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름이 잠시 서연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붓을 든 손을 멈춘 채였다. — 조혜진 회장, 좀 무서운 사람이니까 조심해요. 예상치 못한 조언이었다. 서연은 눈을 들어 아름을 바라보았다. — 아름 씨도... 그렇게 생각해요? — 규칙에 집착하는 사람은 늘 뭔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법이에요. 아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캔버스로 시선을 돌렸다. 물감을 섞는 손놀림이 태연했지만, 그 말의 무게는 태연하지 않았다. 서연은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유리에 번져 보였다. — 규칙에 집착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 지켜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매달리는 거죠. 사람은 지킬 게 없으면 그렇게까지 예민해지지 않아요. 아름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서연은 그 말에서 어떤 확신을 읽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대신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서연은 눈을 떴다. 화면에는 낯익은 이름이 떠 있었다. 오지우. 화면 밝기에 눈이 잠깐 시렸다. 메시지 한 줄이 도착해 있었다. '나 방금 청람관 도착했어. 너 몇 호실이야?' 서연은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심장이 다시 한번,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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