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하인들 숙소는 저택 뒤편,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별채와 이어져 있었다.
해가 완전히 기울기 전, 그쪽에서 소란이 일었다는 전갈이 정헌에게 닿았다. 심부름을 온 하인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공자님, 뒤뜰에서···"
"알았다."
정헌은 더 묻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걸음이 빨라졌다. 담장을 따라 이어진 좁은 길, 발밑에서 자갈이 서걱거렸다. 저녁 바람이 소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서늘함 속에서도 그의 눈빛만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또 그쪽이군.'
무수련 출신 아이들과 하인들 사이의 마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다만 매번 크기가 조금씩 달랐을 뿐.
정헌이 도착했을 때, 마당 한가운데 아이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열두어 살 남짓,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뺨에는 손자국이 선명했고, 입가에는 마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앞에는 정도욱을 따르는 무수련 출신 청년 셋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마당을 둘러싼 다른 하인들은 숨죽인 채 곁눈질만 하고 있을 뿐,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뭐 하는 짓이지."
정헌의 목소리가 마당에 낮게 깔렸다. 청년들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고, 공자님···"
청년 중 하나는 급히 팔짱을 풀었고, 다른 하나는 시선을 피하며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반응만으로도 정헌은 이미 절반쯤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묻는 말에 대답해."
청년 하나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별일 아닙니다. 이놈이 도욱 공자님 처소에 함부로 들어가려 했기에···"
"함부로, 라···"
정헌은 그 단어를 곱씹듯 되뇌었다. 그러고는 무릎 꿇은 아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조그만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말해봐. 사실대로."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그저 도욱 공자님 방 청소를 하러··· 시간을 착각해서 일찍 들어갔을 뿐인데···"
말끝이 흐려지며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들썩였다. 정헌은 그 자세, 그 목소리의 떨림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살폈다.
'거짓을 고하는 아이의 목소리와, 진실을 두려워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다르다.'
이 아이는 후자였다.
정헌의 눈이 청년들을 향했다. '거짓을 고하는군.' 그는 속으로 차갑게 판단했다.
"실수 하나에 이렇게 다뤘단 말이냐."
청년들은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정헌은 그들 앞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굳이 힘을 쓰지 않아도, 그 걸음걸이만으로도 마당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녁 바람에 나부끼던 나뭇잎 소리마저 잦아드는 듯했다.
청년 하나가 뒷걸음질을 치려다 멈췄다.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정헌의 눈빛 앞에서, 그들의 다부진 체격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육 년 전부터 거두어 키운 아이들이다. 정가의 하인이기 이전에, 내 사람들이다."
정헌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청년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중 하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도욱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청년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는 어찌···"
정헌은 잠시 그들을 응시하다가 손을 들어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의 팔을 붙든 손끝에서, 아직 남아 있는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번은 경고로 끝낸다. 대신 이 아이에게 사과해."
청년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그 고갯짓은 짧았고, 진심이 담기지 않은 것이 뻔히 보였다. 하지만 정헌은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진심을 얻으려는 건 욕심이지.'
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도욱 그 자신을 만나야겠군.'
아이를 향해 정헌이 나직이 말했다. "가서 상처부터 봐라.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마."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그 모습이 오히려 정헌의 마음 한 켠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정헌은 아이를 별채로 돌려보낸 뒤, 곧장 정도욱의 처소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마당에 남은 청년들의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원망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눈빛이었다.
정도욱은 마당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수련자답게 다부진 체격, 열여섯의 나이에도 이미 어른 못지않은 근골을 갖추고 있었다. 목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휙, 휙'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었다.
"헌 형님."
정도욱이 목검을 거두며 예를 갖췄다. 겉으로는 정중했지만, 그 눈빛 안쪽에는 감추지 못한 불만이 스며 있었다. 목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직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네 사람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들었나."
"···들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나."
정도욱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답했다. "제 사람들이 과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허나 형님, 그 아이들이 저희 무수련생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석 그놈 쪽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저희를 마치 힘만 쓰는 자들 취급하니···"
목검을 쥔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정도욱의 목소리도 조금씩 격앙되었다.
"형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문수련 쪽 아이들은 매사 우리를 낮춰 보는 눈치입니다.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무지렁이들이라고. 그런 말이 하인들 사이에서도 돈다고 들었습니다."
정헌은 그 말을 끝까지 들었다. '단순한 하인 문제가 아니라 무수와 문수 간의 해묵은 갈등이 얽혀 있군.' 그는 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서, 힘없는 아이 하나를 붙잡아 화풀이를 했다는 건가."
정도욱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감정,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힘없는 아이를 상대로 화풀이하는 건 다르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네게 직접 책임을 묻겠다."
정도욱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 표정에는 여전히 억울함이 남아 있었지만,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정헌은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도욱아. 나는 네 편을 들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것뿐이다."
정도욱이 고개를 들어 정헌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잠시 흔들림이 스쳤다.
"···형님 말씀, 새기겠습니다."
정헌은 그 모습을 뒤로하고 처소를 나섰다. 등 뒤에서 다시 목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는 조금 느려진, 조금 더 신중해진 소리였다.
마당을 벗어나던 정헌의 걸음이 문득 멈췄다. 담장 너머, 문석의 처소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짧은 그림자 하나가 담장 위로 스치듯 사라졌다.
'문석도 이 일을 들었나 보군.'
그는 굳이 확인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또 다른 무게 하나가 얹히는 것을 느꼈다. 무수와 문수, 그 사이에 낀 자신의 처지가 새삼스레 선명해졌다.
그날 저녁, 정헌은 이만호를 다시 불렀다. 방 안에는 촛불 하나가 밝혀져 있었고, 그 흔들리는 불빛이 벽에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오늘 있었던 일, 저택 내 다른 이들도 알고 있습니까."
이만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공자님께서 무수와 문수 양쪽 모두를 상대로 공정하게 처신하셨다는 평이 돕니다."
"공정이라···"
정헌은 씁쓸하게 웃었다. '공정이란 말은 결국 양쪽 모두에게서 조금씩 신뢰를 얻는다는 뜻이지. 하지만 동시에 양쪽 모두의 불만도 조금씩 산다는 뜻이기도 해.'
"그럼 도욱 쪽 반응은 어떻습니까."
이만호가 잠시 뜸을 들였다. "무수련 쪽 아이들 사이에서는 조금 불만이 있는 듯합니다. 자기네 동료를 감쌌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있고요."
"그럴 만하지."
"반면 하인들 사이에서는 공자님을 향한 신망이 더 두터워졌습니다. 특히 오늘 그 아이··· 이름이 뭐였습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이만호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그 아이 일이 하인들 사이에 빠르게 전해지며, 공자님을 두고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믿을 수 있는 분, 이라···"
정헌은 그 말을 곱씹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말이 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어르신들 반응은."
이만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몇몇 장로들이 공자님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셋째 어르신께서 공자님의 처신을 두고 흥미로운 평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평입니까."
"'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눈을 가졌다'고 하셨답니다."
정헌은 그 말을 곱씹었다. '눈여겨본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관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경계다.'
"그 말씀,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만호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셋째 어르신께서는 원래 쉽게 사람을 평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직접 언급하셨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정헌은 짧게 답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저택의 지붕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었다. 그 지붕들 사이로, 드문드문 등불이 켜져 있었다. 저마다의 처소에서, 저마다의 셈법으로 오늘 하루의 일을 곱씹고 있을 터였다.
'이 안에서도 이미 여러 시선이 나를 향해 겹치기 시작했군.'
그는 그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래된 경계심 하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만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공자님, 걱정되는 일이라도···"
정헌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촛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장로들의 관심이란,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지요."
이만호는 그 말의 무게를 짐작이라도 하듯 말을 잇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정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호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방 안에 홀로 남은 정헌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택의 어둠 속, 어딘가에서 또 다른 시선 하나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