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각성식장을 벗어난 뒤, 태자궁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했다.
바퀴가 돌 위를 지날 때마다 덜컹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소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얼굴을 살피는 시선이 자꾸 느껴졌다.
그 시선이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폐무혼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의 반응은... 아니, 이것도 계획의 일부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궁궐의 담벼락이 붉은 저녁빛을 받아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빛깔이 오늘 하루의 무게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차가 궁문을 지날 때였다.
갑작스레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말발굽 소리와 사람들의 발소리가 뒤섞여 어지럽게 울렸다.
호위 무사 하나가 다급히 마차 옆으로 붙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전하, 잠시 멈춰주십시오. 궁 밖에서 괴물체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마차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궁문 근처, 사람들이 우왕좌왕 흩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도망쳤고, 누군가는 넘어진 채로 기어가듯 몸을 피했다.
그 한가운데,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형체가 불분명했다.
마치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형상이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그러나 스스로 꿈틀거리는 그 이질감이 눈에 거슬렸다.
(전생에는 없던 존재다.)
호위들이 창을 들고 그것을 둘러쌌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창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그림자 속에서 낮은 울음소리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사람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니었다.
주변의 나뭇잎들이 이유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바람에 흩날렸을 그 흔들림이, 지금은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한 리듬으로 느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뭇잎을 하나씩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때, 어린 궁녀 하나가 그 그림자 쪽으로 넘어졌다.
비명이 터졌다.
"살, 살려주세요!"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형체를 늘어뜨렸다.
검은 안개가 팔의 형상으로 뭉치며 뻗어나갔다.
호위들이 급히 달려갔지만 거리가 멀었다.
누구도 제때 닿지 못할 거리였다.
나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전생의 감각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록 지금은 폐무혼이라 불리는 몸이었지만, 십만 년의 전투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감각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발끝으로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손끝에 미약하게 남은 기운을 끌어모았다.
동황종의 힘은 쓸 수 없었다.
지금 드러내서는 안 되는 힘이었다.
대신 몸에 익은 무술의 기초만으로 그림자와 궁녀 사이에 끼어들었다.
탁.
발이 땅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궁녀를 밀어내며 그림자의 형체를 마주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것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안개처럼 뭉친 검은 기운이 사람 형상을 흐릿하게 흉내내고 있었다.
윤곽은 뭉개져 있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눈이 있을 자리에 붉은 점 두 개가 빛나고 있었다.
그 붉은빛이 나를 향해 곧게 고정되었다.
(이건... 요기다. 순수한 요기가 형체를 이룬 건가.)
전생에서도 몇 번 마주한 적 있는 종류였다.
다만 이 시대, 이 정도로 순수한 요기가 이렇게 궁 근처에 나타난다는 것은 이상했다.
전생의 나였다면 손짓 한 번으로 흩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림자가 팔을 뻗었다.
나는 몸을 틀어 피했다.
어깨를 스치듯 지나간 그 기운이 옷자락을 갈랐다.
서늘한 냉기가 피부에 닿았다.
살갗이 순간적으로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이대로는 못 버틴다.)
지금의 몸으로는 저 요기를 정면으로 상대할 힘이 없었다.
몸이 기억하는 움직임과 지금 몸이 낼 수 있는 힘 사이의 간극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모두 물러서라!"
그때 호위대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창을 든 병사들이 그림자를 둘러쌌다.
하지만 창끝이 그림자를 스쳐 지나갈 뿐,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요기는 실체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창이 헛되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연달아 울렸다.
나는 궁녀를 등 뒤로 감싸며 뒷걸음질쳤다.
(이대로면 누군가 다친다.)
손끝이 떨렸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최소한 시간을 벌어야 했다.
등 뒤에서 궁녀의 숨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떨림이 내 등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그림자가 다시 형체를 부풀렸다.
붉은 점 두 개가 더욱 짙어졌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짐승처럼, 그것은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손끝에 남은 미약한 기운을 다시 끌어모으며 자세를 낮췄다.
(한 번 더 피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떨어졌다.
그 빛은 곧게, 마치 화살처럼 그림자의 중심을 관통했다.
순간 그림자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쾅.
지면이 진동했다.
발밑의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먼지가 가라앉자, 그 자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금빛 갑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였다.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검이 들려 있었다.
검신에 남은 빛의 잔재가 아직도 은은하게 흘렀다.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남아 있던 요기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졌다.
공기가 순식간에 맑아진 듯한 느낌이었다.
"천용대의 대장군, 위철입니다."
그가 낮고 단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 전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괜찮다. 그보다... 저 요기는 대체 뭐지?"
위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굳은 표정에서 뭔가를 억누르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저도 처음 보는 종류입니다. 다만... 이런 순수한 요기가 궁 근처에 나타난 건 심상치 않은 일입니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호위들이 하나둘 자세를 정비했다.
넘어졌던 궁녀는 다른 시녀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소란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지만, 그 잔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그의 갑옷 안쪽에서 스치듯 보이는 문양을 발견했다.
용을 형상화한 문양이었다.
어딘가 낯익었다.
(저건... 아버지의 문양과 닮았는데.)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정교하게 닮아 있었다.
위철이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짧게 말했다.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단단해졌다.
"전하,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 등이 어떤 말보다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다. 게다가 저 문양... 선황과 관련이 있는 건가.)
각성식의 실패로 무너져야 할 하루였는데, 오히려 새로운 의문들이 쌓이고 있었다.
마차로 돌아가는 길, 소은이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그 침묵조차 내게 무언가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태자궁으로 돌아온 나는 홀로 서재에 앉아 있었다.
창밖은 어두웠고, 방 안은 고요했다.
탁자 위의 촛불이 가늘게 흔들리며 그림자를 벽에 흩뿌렸다.
낮의 소란이 마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요기, 위철, 그 문양.)
조각들이 맞춰지지 않은 채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는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해보려 했지만, 어느 것도 명확한 형태로 잡히지 않았다.
그때 문밖에서 낮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톡, 톡.
"전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소은의 목소리였다.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많지 않았다.
(누구지.)
심장이 다시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문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다.
방문 너머로 드리운 그림자가 낯설게, 그리고 어딘가 익숙하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