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숨겼는데 신이라니

4화

오전 8시. 다음 날, 학원 전체가 시끄러웠다. 복도를 걷는 동안 여기저기서 같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남강." "기적." "구조." 세 번째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남강 지방 고립 마을의 기적 같은 구조 소식이 학원 안까지 퍼졌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 외부와 완전히 끊긴 마을이었다고 했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알 수 없는 법력이 마을을 감싸 온도를 유지시켰다고 했다. "이번엔 누구 법역이었대?" "몰라. 법사회에서도 조사 중이라던데." "규모가 상당하다던데. 그 정도면 상급 법사 아니야?" 나는 교실 뒷줄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들었다. 손이 자꾸 차가웠다. 옆자리 학생이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시각에 우리 학원 훈련장에서도 뭔가 감지됐다던데." 나는 펜을 쥔 손에 힘을 줬다. 펜대가 부러질 것 같았다. 훈련장. 그 새벽, 통제하지 못한 채 터져 나온 법역. 방벽이 찢어지듯 갈라지던 감각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때는 그저 실수라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실수. 아무도 모를 실수. 그런데 아니었다. 마을 하나가 구해졌다는 사실이, 내 실수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목 뒤가 서늘해졌다. 오전 9시. 장현목 선생님이 다시 나를 불렀다. 교사실 안, 이번엔 서류가 두 장이었다. 첫 번째 서류는 손을 대기도 전에 무거워 보였다.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낮았다. "고립 마을 인근 기온 변화, 그 시각의 법력 파동. 훈련장에서 감지된 파동과 일치했다." 숨이 막혔다. "확실합니까." "확실하다." 선생님이 서류를 짚었다. "파동의 형태, 지속 시간, 확산 반경. 세 가지 모두 오차 없이 일치했다." 세 가지. 일치. 오차 없이. 그 세 마디가 순서대로 가슴을 짓눌렀다. 선생님이 나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이현우. 자네 법역이 그 마을을 구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느껴야 하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부심도, 기쁨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얹혔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을 살렸다는데, 왜 안도가 아니라 두려움이 먼저 올라오는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됩니까." "이미 알려지고 있다." 선생님이 서류를 내밀었다. "두 번째 서류는 법사회에서 온 것이다." 나는 서류를 받아 펼쳤다. [남강 지방 재난 최전선 구제 파견 명령] [대상: 이현우] [사유: 관측된 법력 파동의 규모, 재난 대응 필요성] 손이 떨렸다. 최전선. 다른 학원생들이 가는 후방 지원이 아니었다. 가장 위험한 곳. 가장 눈에 띄는 곳. 서류 위 글자들이 뭉개져 보였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제 이름이 왜 이렇게까지 드러났습니까." "그건 자네가 훈련장에서 통제 없이 법역을 펼쳤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목소리에 원망은 없었다. 다만 확인이었다. "자네 실력이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다는 것도, 이제 법사회 전체가 안다." 그 말에 눈앞이 하얘졌다. 20년. 20년을 지켜온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책상 밑에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아프다는 감각조차 늦게 도착했다. "제가 어떻게든 부정할 수는 없습니까." "이미 파동 기록이 남았다. 부정할 수 없어." "기록을 삭제하거나, 오차라고 정정할 방법은 없습니까." 선생님이 처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현우. 마을 사람 삼백 명이 살아 있다. 그 사실이 오차일 수는 없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틀린 게 없는 말이라서, 반박할 수도 없었다. 선생님이 서류를 다시 접었다. "최전선에 가면 익명으로 있을 수 없다. 자네가 가진 힘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교사실 창밖으로 눈발이 스쳐 지나갔다. 오전 11시. 교사실을 나온 뒤, 나는 학원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눈이 다시 내리고 있었다. 발자국 하나 없는 마당에 내 발자국만 찍혔다. 그동안 숨겨온 것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실습 시간마다 절반, 삼분의 일, 십분의 일로 줄여 썼던 힘. 측정기 앞에서 애써 태연했던 표정. 동급생들의 의심 어린 눈빛을 못 본 척했던 시간. 측정기 숫자를 조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매번 힘을 줄이는 쪽을 선택했다. 백을 열로. 열을 하나로. 하나를 티 나지 않을 만큼만. 그 계산을 몇 년째 반복했는지 셀 수 없었다. 그 모든 노력이 한 번의 실수로 무너졌다. 마을 하나를 구했다는 대가로. 우습게도, 가장 감추고 싶었던 것이 가장 좋은 일을 한 순간에 드러났다. 숨기는 일에는 그렇게 능숙했으면서, 드러나는 순간의 대처법은 하나도 준비해 두지 않았다. 눈송이가 뺨에 닿았다. 차가웠다. 그런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후 1시. 서연이 마당까지 나를 찾아왔다. "오라버니, 무슨 일이에요? 표정이 왜 그래요." 숨소리가 조금 가빠 보였다. 교사실 소식이 벌써 퍼진 모양이었다. 나는 서류를 보여줄까 고민했다. 몇 초쯤, 손이 먼저 움직였다. 결국 보여줬다. 서연이 서류를 읽었다. 눈이 커졌다. "최전선이요?" "응." "오라버니 법역이 그 마을을 구한 거예요?" "그런 것 같아." 서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류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오라버니.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죠. 자기 힘이 얼마나 큰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마르고, 이가 갈렸다. 서연이 서류를 돌려줬다. "숨긴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말 안 해도 돼요." 그 말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숨긴 이유. 나조차 정확히 몰랐다. 힘의 근원을 몰랐으니, 숨겨야 할 이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다르다는 것. 너무 다르다는 것이 무서웠을 뿐이었다. "괜찮아요?" 서연이 다시 물었다. "모르겠어." "밥은 먹었어요?" 너무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아니." "그럼 오늘은 같이 먹어요. 혼자 있지 말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발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서연은 내 손을 살짝 잡아끌었다. 작은 손이었다. 그 손의 온도가, 서류의 무게보다 잠깐 더 크게 느껴졌다. 오후 3시. 도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성큼성큼 마당을 가로질러 오는 걸음에서부터 다급함이 느껴졌다. "들었어. 최전선 파견." "어." "괜찮아?" "모르겠어." 도윤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네 실력이면 별일 없을 거야." "그게 문제가 아니야." "뭐가 문제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실력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체가 드러나는 것. 그게 문제였다. 도윤이 내 얼굴을 살피듯 들여다봤다. "뭘 숨기고 있어? 그 표정, 마을 구한 사람 표정이 아닌데." 나는 눈을 피했다. "그냥, 갑자기 이렇게 되니까 정신이 없어서." "정신없는 거랑 이건 다른 것 같은데." 도윤의 눈빛이 진지했다. 몇 번이나 물러서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이 녀석은 예전부터 그랬다. 내가 대충 넘기려 하면 오히려 더 물고 늘어졌다. "현우야." "어." "네가 뭘 감추고 있는지, 나는 몰라도 돼. 근데 최전선은 진짜 위험한 곳이야. 거기선 감출 여유가 없어." 그 말이 정확히 맞았다. 가장 무섭게 맞는 말이었다. "알아." "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잖아."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도윤은 한숨을 쉬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필요하면 불러. 나흘 남았다며. 그동안 뭐든 도울게." "고마워." 짧은 대답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오후 6시. 방 안, 창밖으로 어둠이 내렸다. 눈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이 서류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다시 펼쳤다. 최전선. 남강 지방. 출발일 예정. 나흘 뒤였다. 나흘. 96시간. 5760분. 숫자로 바꿔 세어도 시간은 줄지 않았다. 그 사이에 무언가를 결정해야 했다. 숨긴 채로 갈 것인지, 드러낸 채로 갈 것인지.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숨긴 채로 간다면, 최전선에서 힘을 절제하며 싸워야 한다. 절제한 만큼 위험이 커진다. 드러낸 채로 간다면, 20년의 방벽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다음엔 무엇이 남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었다. 숨길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는 것을. 법사회 전체가 파동 기록을 손에 쥔 이상,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소용없었다. 창밖에서 눈이 유리창을 두드렸다. 소리가 점점 커졌다. 톡, 톡, 토독. 점점 빨라지는 그 소리가, 나흘 뒤로 다가오는 시간을 재촉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서류를 접어 책상 서랍에 넣었다. 서랍이 닫히는 소리가 방 안에 오래 울렸다. 그 소리가 멈춘 뒤에도, 창밖의 눈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나흘 뒤의 문을 미리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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