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오전 6시 40분.
창문 틈으로 냉기가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떴다.
천장이 하얗게 얼어 있었다.
기숙사 안인데도 입김이 보였다.
법령 23년, 늦가을.
남강 지방에는 이미 눈이 삼 척이나 쌓였다고 했다.
계절을 거스르는 한파.
그 소문이 청림 법사학원 안에까지 퍼진 지 벌써 열흘째였다.
나는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손끝이 시렸다.
이불 속에서 나온 팔에 소름이 돋았다.
창밖을 내다봤다.
학원 마당에는 아직 서리도 남아 있었다.
남강까지는 이곳에서 사흘 거리.
그런데도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끝이 아렸다.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오래된 부적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스승님이 마지막으로 건네준 것이었다.
불이 붙지 않는 종이.
그 감촉을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그리고 다시 서랍을 닫았다.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게 규칙이었다.
누구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라야 했다.
그래야 안전했다.
"현우, 일어났어?"
문밖에서 김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열렸다.
도윤이 두꺼운 겉옷을 입은 채 서 있었다.
체약하고 마른 몸에 옷이 헐렁했다.
목도리까지 두르고 있는 걸 보니 밤새 추웠던 모양이었다.
"남강 쪽 소식 들었어?"
"조금."
"작물이 다 죽었대. 강도 얼어붙기 시작했고."
도윤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가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봤다.
"이 시기에 강이 얼다니. 말이 안 되잖아."
"법사회에서 뭐 한다는 말은 없어?"
"그거 때문에 오늘 조회 늦춰졌잖아."
나는 옷을 걸치며 물었다.
"온난 법진은 언제쯤 봐줄 수 있어?"
도윤이 벽에 등을 붙였다.
"이번 주 안에는 시간 낼게."
"부탁해."
"너 실력이면 나 대신 네가 직접 짜도 되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도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또 그 얼굴이네."
"무슨 얼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얼굴."
나는 셔츠 단추를 잠그며 창밖을 다시 봤다.
눈이 곧 다시 내릴 것 같은 하늘이었다.
도윤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밥은 먹었어?"
그 말투가 꼭 어머니 같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직."
"그럼 같이 가."
오전 8시 5분.
조회장은 평소보다 붐볐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남강 지방 전체가 위험하다던데."
"법사회에서 벌써 몇 개 조를 보냈다며."
"근데도 못 막았다잖아."
"들었어? 파견됐던 사람들 중에 다친 사람도 있대."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맨 뒷줄에 섰다.
도윤이 옆에 붙었다.
찬 공기가 조회장 안까지 스며들었는지, 다들 목을 움츠리고 있었다.
한서연이 다가왔다.
"현우 오라버니."
낮은 목소리였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얼굴이 안 좋아 보여서요."
서연의 눈이 나를 살폈다.
삼 년을 곁에 두고 가르친 제자였다.
지금은 제자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그 눈빛만으로 내 속을 반쯤 읽어냈다.
나는 애써 웃었다.
"잠을 못 자서 그래."
서연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내 소매를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그 온도만큼은 진짜였다.
차가운 조회장 안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지점이었다.
"남강 얘기 들었어요?"
"들었어."
"오라버니도 걱정돼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걱정이라는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다른 게 들어차 있었다.
불안.
아니, 그것보다 더 정확한 이름이 있을 텐데 찾을 수 없었다.
도윤이 낮게 속삭였다.
"저번에 파견 갔던 삼학년 선배들, 아직 안 돌아왔다는 거 알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소문이야. 근데 다들 그렇게 말해."
서연의 얼굴이 살짝 하얘졌다.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미안."
주위가 조금씩 조용해졌다.
단상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오전 8시 20분.
장현목 선생님이 단상에 올랐다.
백발이 성성한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누군가 기침 소리를 냈다가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남강 지방의 이상 기후는 이미 재난 단계에 이르렀다."
첫마디부터 무거웠다.
"법사회 대응조가 세 번 파견됐다. 세 번 모두 효과가 미미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낮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동원된 법사 인원은 총 마흔둘."
선생님의 목소리가 숫자를 읽을 때마다 낮아졌다.
"그중 복귀한 인원은 서른일곱."
장내가 얼어붙었다.
누군가 옆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앞을 봤다.
서연의 손이 내 옷자락을 살짝 다시 잡았다.
"이에 법사회는 청림 법사학원 상위 과정생들에게 구제 파견 명령을 내렸다."
종이 넘기는 소리.
"명단은 이후 개별 통지될 것이다."
나는 숨을 죽였다.
명단.
그 단어가 목구멍에 걸렸다.
왜인지 그 단어가 다른 단어들보다 크게 들렸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것 같았다.
주변 학생들이 술렁였다.
"나 상위 과정 아닌데 다행이다."
"난 겨우 통과했잖아. 이럴 때 걸리면 어떡해."
누군가 웃었다.
누군가는 웃지 못했다.
도윤이 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우리 학년에서 상위 과정 몇 명이었지."
"열둘."
"그중에서 뽑히겠지."
"그렇겠지."
나는 대답하면서도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조회가 끝났다.
학생들이 흩어졌다.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서 있었다.
왜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발밑이 무거웠다.
도윤이 내 팔을 툭 쳤다.
"안 가?"
"먼저 가."
"뭐야, 왜 그래."
"그냥. 좀 있다 갈게."
도윤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서연도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봤다.
그 눈에 걱정이 스치는 게 보였다.
나는 손을 흔들어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서연은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이현우."
장현목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단상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 목소리가 조회장에 남아 있던 마지막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네."
"잠깐 따라오게."
도윤이 나를 돌아봤다.
서연도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봤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선생님을 따라갔다.
발걸음마다 마룻바닥이 얕게 울렸다.
복도를 걸으며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뭔가가 확정될 것 같았다.
확정되지 않은 채로라도 조금 더 있고 싶었다.
오전 8시 40분.
교사실 안은 조용했다.
난로 하나가 켜져 있었지만 온기는 부족했다.
선생님이 서류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놨다.
책상 위에는 다른 서류들도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만 따로 떨어져 있었다.
붉은 인장이 유독 선명했다.
"이 서류가 뭔지 아나."
나는 서류를 내려다봤다.
법사회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소집 명령서입니다."
"그래."
선생님이 나를 똑바로 봤다.
그 눈빛에 평소와 다른 무게가 있었다.
삼 년간 나를 가르쳤던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자네 이름으로만 따로 왔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서류 위에 내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다른 이름은 없었다.
학원 이름도, 학년도, 반 번호도 없었다.
그저 이름 세 글자.
이현우.
"보통 학원 명단으로 오는 게 아닙니까."
"보통은 그렇지."
선생님이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 손이 살짝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건 개별 지명이다."
숨이 막혔다.
왜 나만.
왜 내 이름만.
그동안 그렇게 숨겨왔는데.
기억 하나가 스쳤다.
스승님의 목소리.
"네 힘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네가 안전하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되새기며 살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모른다."
"모른다고요."
"법사회 상층부에서 직접 내려온 명령이다.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아."
선생님이 서류를 다시 접었다.
그리고 나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입을 열려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
"뭔가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선생님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그 흔들림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삼 년 동안 이 사람의 표정을 읽는 법을 배웠다.
지금 저 얼굴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현우."
"네."
"혹시… 최근에 누군가와 접촉한 일이 있나."
"무슨 뜻입니까."
"낯선 사람. 낯선 법사. 혹은 법사가 아닌 존재."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낯선 존재.
그 말이 뜻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없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빨리 나왔다.
선생님이 그걸 눈치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서류를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놨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창밖으로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계절에 어긋난 눈이었다.
그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상하게도 느리게 떨어졌다.
마치 시간이 잠깐 멈춘 것처럼.
"파견은 언제입니까."
"사흘 뒤."
"사흘…"
"그 전에 짐을 챙기게. 그리고."
선생님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뭡니까."
"아무한테도 이 서류에 대해 말하지 마라. 특히."
그 말끝이 흐려졌다.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입을 다물었다.
난로의 불꽃이 작게 흔들렸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더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내 이름만 적힌 서류.
사흘 뒤의 파견.
그리고 선생님이 끝내 삼키고 만 마지막 한마디.
그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물어볼 수 없었다.
교사실 문을 나서면서도 손끝이 계속 차가웠다.
창밖의 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