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오전 7시.
일주일이 지났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남강 지방 재난은 더 심해졌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학원 게시판에는 매일 새로운 공고가 붙었다가 떼어졌다.
법사회 명단, 파견 일정, 그리고 다시 지워지는 이름들.
학원에서는 매일 같은 이야기가 돌았다.
"법사회가 이번엔 대규모로 움직인다더라."
"청림 학원생들도 이번 주 안에 파견된대."
"우리 학년에서도 몇 명 뽑힌다던데."
"누가?"
"몰라. 아직 명단 안 붙었어."
나는 아직 정식 통지를 받지 못했다.
장현목 선생님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에서 마주쳐도, 선생님은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지나갔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나를 아예 배제했다는 뜻인지.
둘 중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오전 8시.
기숙사 식당에는 사람이 반쯤 없었다.
몇몇 학생들은 벌써 짐을 싸고 있다고 했다.
"파견 예비 명단에 든 애들은 오늘부터 훈련 강도가 다르대."
"그런 것도 있어?"
"응. 실전 대응 훈련이라던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숟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밥맛이 없었다.
오전 10시.
수업 대신 실습이 있었다.
조를 나눠 온난 법진을 설계하는 과제였다.
강의실 안은 종이와 법구 도구들로 어수선했다.
나는 도윤과 한 조가 됐다.
"저번에 부탁한 거."
도윤이 말을 꺼냈다.
책상 위에 도면 하나를 펼쳐놓으면서였다.
"내 방 온난 법진 설계 말이야."
"오늘 시간 되면 봐줄게."
도윤은 열세 살에 법역을 개척한 재능 있는 법사였다.
그 나이에 법역을 연 사람은 학원 역사에서도 드물다고 했다.
그런데도 체약한 몸 때문에 큰 규모의 법술은 늘 무리였다.
작은 온난 법진 하나 짜는 데도 도윤은 며칠을 매달렸다.
도면에는 지우고 다시 그린 선들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이 부분, 여기서 흐름이 끊기지 않아?"
내가 손끝으로 도면 한쪽을 짚었다.
도윤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어. 여기서 열기가 새는 거 같아."
"응. 여기 매듭을 하나 더 넣으면 나을 거야."
도윤이 연필을 쥔 손이 조금 떨렸다.
작은 동작 하나에도 힘이 많이 드는 몸이었다.
"고마워. 형 아니었으면 이거 못 끝냈을 거야."
"별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 법진 하나에도 저렇게 힘들어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걸까.
오전 11시.
실습이 이어지는 동안, 옆 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었어? 남강 쪽 파견팀 벌써 두 개나 조직됐대."
"인원이 부족해서 3학년까지 끌어온다더라."
"우리도 곧 명단 나올 것 같은데."
나는 못 들은 척 도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손끝이 조금 차가워졌다.
오후 12시.
식당에서 소식이 전해졌다.
남강 지방 인근 마을 하나가 완전히 고립됐다는 이야기였다.
식량이 끊기고, 길이 막혔다.
식판을 든 학생들이 하나둘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거기 사람들, 어떻게 되는 거야."
서연이 젓가락을 내려놨다.
식판 위의 반찬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모르겠어."
"법사회에서 구조대는 안 보내?"
"보냈는데 눈 때문에 진입이 안 된다더라."
"진입 못하면 그냥 두는 거야?"
"당장은 방법이 없대. 기상 법사들이 계속 붙어있는데도 눈이 안 그친다고."
서연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거기 사람 수가 몇 명인데?"
"삼백 명쯤 된다고 했어."
삼백 명.
그 숫자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 밥을 씹던 입이 그대로 멈췄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멈췄다.
마을 하나가 고립됐다.
식량이 끊겼다.
사람이 죽어갈 수도 있다.
숫자 하나가 사람의 목숨으로 바뀌는 그 순간이,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뭔가가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오후 1시.
실습이 다시 시작됐지만, 나는 손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도윤이 옆에서 뭔가를 물었는데도 대답을 놓쳤다.
"형, 괜찮아?"
"어? 아, 괜찮아."
"아까부터 딴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야. 잠깐 다른 생각이 나서."
도윤은 더 묻지 않고 다시 도면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그 옆에서 계속 삼백이라는 숫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오후 2시.
실습이 끝난 뒤였다.
나는 학원 뒤편 훈련장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시간을 골랐다.
훈련장으로 가는 길 내내 발자국 소리만 눈 위에 남았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퍼졌다.
눈이 쌓인 훈련장 한가운데 섰다.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손을 뻗었다.
법역을 펼쳤다.
평소보다 조금만 더.
딱 조금만 더.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제가 되지 않았다.
한 번 열린 법역은 순식간에 훈련장 전체를 덮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커져 나갔다.
멈추려 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손끝에서 열기가 뻗어나갔다.
쌓인 눈이 순식간에 녹았다.
훈련장 바닥이 젖은 흙으로 드러났다.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열기가 순식간에 담장 근처까지 번졌다.
나는 숨을 멈췄다.
이건 절반도, 삼분의 일도 아니었다.
십분의 일도 안 되는 힘이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였다.
내가 정말로 힘을 다 쓴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손을 내렸다.
법역이 서서히 접혔다.
접히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다.
마치 내 몸이 그 힘을 놓아주기 싫어하는 것처럼.
젖은 흙에서 김이 올라왔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숨이 가빴다.
힘을 쓴 게 아니라, 힘을 참는 게 힘들었다.
손바닥을 펴서 내려다봤다.
아무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손끝이 아직 뜨거운 것 같았다.
오후 3시.
훈련장을 나서기 전,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봤다.
담장 근처 눈도 절반쯤 녹아 있었다.
이걸 누가 보기라도 했다면.
그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다.
오후 5시.
소문이 돌았다.
"훈련장 눈이 다 녹았대."
"거기 누가 있었어?"
"모르지. 근데 이상하지 않아? 한파가 이렇게 심한데."
"관리인이 그거 보고 놀라서 선생님한테 보고했다던데."
"뭔 일 있었던 거 아니야?"
나는 못 들은 척 지나갔다.
등 뒤로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복도를 걷는 내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방으로 들어와서야 겨우 숨을 골랐다.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오후 6시.
저녁 식사 시간에도 훈련장 이야기는 계속됐다.
나는 최대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오후 7시.
다음 날 아침,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남강 지방 고립됐던 마을에서 갑자기 눈이 걷혔다는 것이었다.
하룻밤 사이 기온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길이 뚫려 구조대가 진입했다고 했다.
"기적이래."
"토착민들은 벌써 신이 도왔다고 떠들고 있대."
"기상 법사들도 이해가 안 된다던데. 그런 식으로 갑자기 기온이 오르는 게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그럼 뭐야, 누가 법술을 쓴 거야?"
"그 정도 규모면 최소 대법사급이라던데. 근데 그런 사람이 왜 몰래 그랬대?"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방향과 시간을 계산해봤다.
내가 훈련장에서 법역을 열었던 시각.
마을의 위치.
거리.
지도를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거리를 재보듯 계산했다.
일치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먼 거리에 내 법역이 닿을 리가 없었다.
수백 킬로미터.
훈련장에서 내가 연 법역은 담장을 겨우 넘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 손이 떨리는지 알 수 없었다.
오후 8시.
방에 혼자 앉아 그날의 일을 다시 짚어봤다.
시간. 거리. 힘의 크기.
전부 계산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후 9시.
서연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오라버니, 그 얘기 들었어요?"
"들었어."
"신기하지 않아요? 하필 그 시간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연은 잠시 나를 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오라버니 법역, 원래 그렇게 커요?"
손끝이 차가워졌다.
"무슨 소리야."
"그냥. 가끔 오라버니 주변 공기가 이상하게 느껴져서요."
서연의 눈은 흔들림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나를 꿰뚫는 것 같아서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기분 탓이겠지."
"그럴까요."
서연은 더 캐묻지 않았다.
그게 서연의 방식이었다.
알아도 묻지 않는 것.
서연은 조금 더 방 안을 둘러보다가,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라버니, 밥은 먹었어요?"
"먹었어."
"무리하지 마요."
그 말을 남기고 서연은 문을 닫고 나갔다.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창밖을 봤다.
눈이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 방 안에는, 저 창밖과는 다른 온도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하나는 구했다.
그 사실만은 분명했다.
대가로 무엇이 나갔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리고 그 대가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도.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