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지하 격투장은 학교 근처 폐공장을 개조한 곳이었다.
정문부터 심상치 않았다.
셔터문에 녹이 잔뜩 슬어 있었고, 그 옆으로 난 쪽문에만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었다.
'딱 봐도 정상적인 곳은 아니네.'
강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매캐한 시멘트 냄새와 담배 냄새가 동시에 코를 찔렀다.
지붕 낮은 창고 안, 콘크리트 바닥 위에 임시 링이 쳐져 있었다.
로프도 아니고 그냥 파란 테이프로 바닥에 사각형을 그려놓은 게 전부였다.
관중석이랍시고 놓인 컨테이너 박스마다 애들이 걸터앉아 있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눈빛이 살아 있었다.
'저건 무슨 무협지 초반부 왈패 소굴 느낌인데.'
"여기 원래 발소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야." 강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슴을 쫙 펴고 말하는 게 무슨 관광지 소개하는 사람 같았다.
"자랑할 곳이 맞아?" 나는 물었다.
'이거 큰일 나면 대학에서 잘리는 거 아니야. 아니, 그 전에 병원부터 가겠지.'
"신체능력 등록도 없이 그냥 붙는 거야?" 나는 다시 물었다.
"익명전이라 상관없어. 별명 쓰면 돼." 강호가 씩 웃었다.
'별명 쓴다고 뼈 안 부러지는 건 아닐 텐데.'
한소영 선배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나를 훑어봤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꼭 정육점에서 고기 상태 보는 눈빛이었다.
"강태현, 너 오늘 상태 이상한데." 그녀가 말했다.
'예리한데, 이 선배.'
등에서 살짝 땀이 났다.
"긴장해서 그래요." 나는 대충 웃어넘겼다.
사실 89까지 왜곡한 신체능력이 몇 시간이나 유지될지 나도 몰랐다.
'설명서도 없는 능력을 이렇게 막 쓰다니, 이거 완전 복불복 뽑기 아니냐.'
하지만 이미 발은 링 앞까지 와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에 앉은 관중들이 하나둘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이, 강호 발소 아니냐? 신입 데려왔어?" 상대편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목소리에 이미 재미있는 구경거리 발견했다는 느낌이 잔뜩 묻어 있었다.
덩치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놈이었다.
어깨가 문짝만 했고, 팔뚝은 내 허벅지보다 굵어 보였다.
신체능력을 짐작하자면 최소 130은 넘어 보였다.
'미친, 저거랑 붙는 거야?'
'차라리 트럭이랑 붙으라고 하지.'
"오늘 데뷔전이니까 살살 좀 해줘라." 강호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살살이 아니라 그냥 하지 말자고 좀 해줘.'
'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을 여기 데려온 거냐.'
하지만 이미 나는 링 위로 끌려 올라가 있었다.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저거 뭐야, 몸이 왜 저래?"
"쟤 원래 발소야?"
"강호가 데려왔다니까 뭐 볼 게 있나 보지."
나 같은 몸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게 이상해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까요, 저도 제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발밑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가 신발 밑창을 뚫고 올라왔다.
[정신력을 이용한 예측 반응이 가능합니다.]
'또 뜨네, 이 타이밍에.'
'꼭 시험 직전에만 뜨는 참고서 요약본 같은 거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종이 울렸다.
낡은 자전거 벨 같은 소리였는데, 그게 또 이 상황이랑 묘하게 안 어울려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상대가 달려들었다.
쿵!
바닥이 흔들릴 정도의 스텝이었다.
'느려. 아니, 아니야. 내가 빨리 보이는 건가.'
정신력 400의 진짜 효과가 그 순간 드러났다.
시야가 이상하리만치 선명해졌다.
상대의 주먹이 날아오는 궤적이 슬로우모션처럼 늘어져 보였다.
마치 예전에 보던 격투 게임에서 프레임 하나하나를 넘기며 보는 것 같았다.
'저기 보인다, 저기, 저기, 저기.'
슈아악!
나는 몸을 반쪽만 틀어 그 주먹을 흘렸다.
신체능력이 부족해 완전히 피하진 못했지만, 최소한의 타격만 받았다.
어깨에 스치듯 지나간 충격이 그래도 뻐근하게 남았다.
'와, 이거 제대로 맞았으면 진짜 뼈 갔겠는데.'
"어어?" 관중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맞다. 몸이 안 따라주면 예측만 해도 반은 된다.'
나는 상대의 다음 동작까지 미리 읽었다.
주먹을 뻗은 후 균형이 살짝 무너지는 그 타이밍.
체육 시간에 배운 것도 아닌데 몸이 먼저 알아챘다.
'저기다.'
팔이 다시 올라오는 순간, 나는 상대의 무릎 안쪽을 정확히 걸어 넘어뜨렸다.
퍽!
덩치가 큰 놈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콘크리트 바닥과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창고 전체를 울렸다.
체육관 전체가 조용해졌다.
파리 한 마리 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정적이었다.
[승리. 관전자 반응: 열광적.]
'뭐야, 이거 진짜 이긴 거야?'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지금은 그냥 멍하게 서 있는 게 다였다.
순수한 힘 싸움이었다면 3초 안에 끝났을 판이었다.
내가 저 덩치를 3초 만에 눕히는 그림이 아니라, 내가 3초 만에 눕는 그림이 나왔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정신력이 판단과 예측을 몇 배로 끌어올려서, 신체능력의 격차를 어느 정도 메워준 거였다.
'게임으로 치면 스탯 낮은 캐릭터가 반응속도 버프 하나로 보스를 잡은 느낌인가.'
'이거 밸런스 패치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저거 뭐야! 완전 예측샷이잖아!"
"쟤 신인이라고 안 했어?"
"미친, 저 반응속도 뭐야!"
시끄러운 함성 속에서 나는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정신은 아직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강태현! 저거 뭐냐!" 강호가 뛰어와 어깨를 붙잡았다.
눈이 완전히 커져 있었다.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운이 좋았어." 나는 애써 웃으며 둘러댔다.
'운이 아니라 계산이지, 인마.'
'사실 계산도 아니고 그냥 정신력 스탯 뽕빨이었지만.'
강호가 내 어깨를 두 번, 세 번 더 흔들었다.
"운이 아니잖아! 너 그 스텝, 그거 완전 프로급이었어!"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제발 좀 조용히 해줘.'
한소영 선배가 팔짱을 풀고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느릿했는데, 그게 더 불안했다.
"너 방금 그 스텝, 무자 기초 3년 차들도 못 하는 반응속도였는데."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들켰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자연스러운지 감이 안 잡혔다.
'그냥 웃어야 하나. 아니면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하나.'
'아니, 그것보다 지금 표정 관리할 정신이 있는 게 신기하네.'
"그, 어릴 때 무술 좀 배웠어요."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거짓말이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한소영 선배가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못 믿는 표정인데.'
그때 관중들 사이에서 누군가 휴대폰을 들고 촬영 중인 게 눈에 들어왔다.
화면 안에 방금 그 장면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익명전이라고 해도, 저 영상이 퍼지면 답이 없었다.
'저거 진짜 큰일이다.'
신체능력 등록도 없이 저런 반응속도를 보였다는 게 어딘가에라도 새어나가면, 캐릭터 카드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저기, 방금 그거 찍었어?" 나는 애써 웃으며 그 사람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던 것 같은데, 상대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완전 레전드였어!" 그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며 벌써 몇 번이나 다시 돌려보고 있었다.
"이거 SNS에 올려도 되지? 완전 화제될 것 같은데!" 그가 신난 목소리로 물었다.
'끝났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머릿속으로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등록 안 된 신체능력으로 지하 격투장 뛰다가 협회에 걸리면 그게 벌금이야, 퇴학이야.'
'아니, 그 전에 대학 잘리는 게 먼저겠지.'
강호가 옆에서 뭐라고 계속 떠들고 있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정신력이 몇 시간 유지되는지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유독 피곤해 보였다.
'이 짓을 또 해야 하나.'
'아니, 이 짓을 또 할 수는 있는 건가.'
침대에 눕고서도 한참을 뒤척였다.
정신력 스탯이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자고 일어나면 신체능력이 원래대로 돌아가 있으려나.'
'아니면 갑자기 자는 도중에 풀려서 근육통으로 응급실 가는 거 아니야.'
그런 걱정을 하며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휴대폰 알림이 백 개가 넘게 쌓여 있었다.
화면을 켜는 순간 눈에 들어온 숫자에 잠이 확 달아났다.
'백 개가 넘는다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알림창을 열자마자 낯선 계정들의 댓글과 태그가 쏟아지듯 나타났다.
'이거 설마 그 영상이 벌써...'
화면을 스크롤하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