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서자, 한 달 만에 뒤집다

3화

시험장은 가문 연무장 한복판에 마련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방계 자제들의 서열을 매기는 자리였으니, 구경꺼리로는 최고였을 것이다. 방계 자제 스물여덟 명이 줄지어 섰다. 장빈은 가장 앞줄, 나는 가장 뒷줄이었다. 줄을 서는 순서부터가 서열이었다. 뒷줄에 선다는 건, 애초에 기대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딱히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감독관은 장청의였다. 가문의 정예 고수이자 아버지의 심복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오십을 넘겼다고 들었지만, 등은 곧았고 눈빛은 서늘했다. 그가 명부를 훑었다. 한 줄, 한 줄, 이름을 확인하며 내려오던 그의 시선이 내 이름에서 멈췄다. "장서하." "예." "...몸은 괜찮으냐." 뜻밖의 물음이었다. 연무장에 있던 다른 이들도 흠칫 놀란 눈치였다. 이 냉정한 감독관이 방계 자제 하나의 몸 상태를 물어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나는 짧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밥만 잘 나온다면요." 장청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명부를 쥔 손이 잠시 멈춘 걸로 보아, 예상 밖의 대답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명부로 눈을 돌리며 시험 규칙을 읽어 내려갔다. 시험은 대련 방식이었다. 상대는 무작위로 정해졌고, 첫 상대는 장빈이었다. 장빈이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이 어제 얼음물을 뒤집어썼던 날의 앙심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형님, 이번엔 얼음물이 아니라 모래바닥입니다.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몇몇은 손으로 입을 가렸고, 몇몇은 그냥 대놓고 낄낄거렸다. 누나 장구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보았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걸 보니, 뭔가 말리고 싶은 눈치였다. 형 장시우도 팔짱을 끼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보다는 흥미가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장청의가 신호를 내렸다. "시작." 장빈이 먼저 검을 뽑아 들며 달려들었다. 그의 검끝이 정확히 내 목젖을 향해 있었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으로 덤빈 건 아니었겠지만, 다치게 할 생각은 분명했다. 콰아앙! 그의 검이 내 팔뚝을 스쳤다. 옷자락이 살짝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그의 검신을 그대로 붙잡았다. "...!" 장빈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나는 정확히 보았다. 검신을 맨손으로 잡는 순간, 손바닥에서 화끈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참을 만했다. 가마솥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검을 쥔 그의 손을 위에서 아래로, 가장 정직하게 눌러버렸다. 뻐걱.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장빈이 비명을 질렀다. 검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손목은 이미 내 손아귀 안에 있었다. 나는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결대로 쪼개듯이 손가락 하나씩을 마저 눌러 부러뜨렸다. 뚝. 뚝. 뚝. 다섯 번의 소리가 연무장에 울렸다. 마치 장작을 패는 소리처럼, 규칙적이고 정직했다. 장빈이 바닥에 쓰러져 손을 움켜쥐고 뒹굴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연무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낄낄거리던 이들도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는 헛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장청의가 굳은 얼굴로 다가와 내 어깨를 짚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만해라." "이미 그만했습니다." 나는 태연하게 손을 털었다. 손바닥에 남은 화끈함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굳이 티내지 않았다. "검값은 가문에서 물어주는 겁니까, 제가 물어주는 겁니까." 장청의가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방금 부러진 다섯 개의 손가락보다, 검값을 묻는 내 태도가 더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그 기운. 어디서 배웠느냐."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오래전 누군가를 떠올리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빛에서 낯선 무언가를 읽었다. 두려움도 아니고, 경계도 아닌, 그리움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연무장에는 여전히 정적이 감돌았다. 장빈의 신음 소리만이 그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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