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구석채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낡은 이불 위였다. 곰팡이 냄새가 코끝에 스몄고, 벽 틈으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누가 건져낸 건지는 몰랐다. 아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물에 젖은 옷은 누군가 벗겨놓았는지 마른 무명옷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약 한 첩, 따뜻한 물 한 그릇도 없었다.
천장을 보았다. 낯설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천장을 보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머릿속에 다른 기억들이 흘러들어와 있었다. 처음엔 물살처럼, 다음엔 홍수처럼.
망치를 쥐던 손의 감각. 화로 앞에서 밤을 새우던 열기. 도끼로 쇳덩이를 쪼개던, 지긋지긋하도록 정직한 노동의 리듬. 쇠를 두드릴 때마다 튀던 불티, 그 불티가 살갗에 박혀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던 무던함까지.
나는 오랫동안 떠돌던 고혼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흐릿해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지금, 이 몸에 스며들었다.
장서하라는 이름과, 그 이름이 겪어온 멸시까지, 전부 나의 것이 되었다. 방계 서자, 재능 없는 짐짝, 물에 빠져 죽어도 아무도 찾지 않을 목숨. 그것이 이 몸의 전부였다.
몸을 일으켰다. 뼈마디가 우두둑 소리를 냈다. 손끝이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단전을 짚어보았다. 텅 비어 있던 그릇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득 차 있었다. 화로 속 숯불처럼, 꺼지지 않고 은은하게 타오르는 열기였다.
"...이거 참."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죽으라고 밀었더니 오히려 배가 부르게 됐군요."
혼잣말이었지만 말투는 존댓말이었다. 오랜 습관이었다. 어느 삶에서든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화가 나도, 억울해도, 말투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게 유일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발바닥에 닿는 흙바닥이 얼음장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춥지 않았다. 조용히 진기를 흘려보았다.
우웅.
손바닥 위로 열기가 피어올랐다. 눈송이가 닿기도 전에 녹아버렸다. 화로 앞에서 쇳덩이를 달구던 그 감각과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쇳덩이가 아니라 내 몸 안에서 열이 솟는다는 것뿐.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했다.
이 힘이면 충분했다. 장빈에게, 이 가문에게 되갚아줄 수 있을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나는 손바닥을 몇 번 쥐었다 폈다. 마디마디에서 뻐근한 뜨거움이 흘렀다. 도끼를 쥐던 손과, 검을 쥘 이 손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리치는 건 내리치는 것이니까.
다음 날 아침, 가문 게시판에 방이 붙었다.
선발시험 공고였다. 열흘 뒤, 방계 자제들의 서열을 다시 정하는 시험이라고 했다. 합격자는 정당한 후계 후보로, 낙방자는 영원히 폐인으로 낙인찍히는 자리였다.
게시판 앞에 모인 이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
"이번엔 본가에서 직접 심사를 나온다더군."
"떨어지면 그냥 쫓겨나는 거야. 목숨 부지하는 것도 감사할 일이지."
수군거림 사이로, 장빈이 마당을 지나며 나를 보고 비웃었다. 뒤에는 늘 그랬듯 하인 둘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었다.
"형님도 나가보실 겁니까? 물속에서 숨 참는 법이라도 배워 오셨나 봅니다."
주변 하인들이 다시 웃었다. 누군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누군가는 아예 대놓고 낄낄거렸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가야지요."
"..."
장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잠깐 지워졌다. 그는 잠시 나를 훑어보더니, 다시 비웃음을 되찾으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떨어지면 밥값이라도 벌게 시켜주십시오."
그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인들도 웃음을 멈추고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장빈의 눈썹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웃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열흘 뒤, 저 손가락이 몇 개나 남을지 두고 보자고.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손바닥 위에서 눈송이가 녹듯이, 저들의 웃음도 곧 그렇게 사라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