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새벽, 다른 노병들 몰래 남천호에게 기초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닭이 울기도 전에 눈을 뜨고, 서리 맞은 마당에 나가 죽장을 짚고 선 그 노인 앞에 섰다. 정식 초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실전 감각—틈을 보는 눈, 거리를 재는 발, 상대의 힘을 흘려내는 최소한의 동작. 남천호는 그걸 '거지 무공'이라 불렀는데, 정작 가르치는 태도는 누구보다 엄격했다.
"발이 그게 뭐냐, 그러다 죽는다. 다시."
빠득, 무릎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새벽마다 뼈마디가 시큰거리는 걸 참으며 같은 동작을 백 번씩 반복했다. '이게 무슨 무공이야, 그냥 몸으로 때 맞아가며 배우는 개고생이지.' 속으로는 욕이 절로 나왔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남천호의 눈빛이 그런 투정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간병인 장숙희 아주머니가 어머니 병실에서 나오며 나를 붙잡았다.
"도현아, 잠깐 얘기 좀 하자."
그 표정을 보고 나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눈가가 붉게 부어 있었고, 손끝이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또 뭔가 나빠졌구나.' 몸이 먼저 알았다. 다리가 후들, 하고 떨렸다.
"어머니, 오늘은 좀 어떠세요?"
"오늘은... 아침에 잠깐 눈을 뜨셨는데, 네 얘기만 하시더구나. 밥 잘 챙겨 먹었냐고."
나는 목이 메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병세를 나한테 절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항상 웃으며 '괜찮다, 걱정 말라'고만 했다. 그 웃음이 얼마나 억지였는지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장숙희 아주머니는 이번엔 다른 말을 꺼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조심스러웠다.
"허봉수 약사 어른께 다녀왔는데... 신의 유설아님이 다시 진맥을 보고 가셨대. 이제 한 달이라고 하시더라."
한 달. 그 말이 귓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한 달, 한 달, 한 달. 마치 종소리처럼 머릿속을 때리고 사라지지 않았다.
"청심단... 값은 여전히 삼백 금이고요?"
"응. 그것도 요즘 원료값이 올라서 더 오를 수도 있다더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병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어머니의 옅은 숨소리를 들으며 서 있었다. 그 숨소리가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다시 꺼내 읽었다. 종이는 이미 몇 번이나 접었다 펴서 귀퉁이가 닳아 있었다. 육십만 명을 구했다는 공적이 있음에도, 정치적 이유로 변경 유배를 떠나야 했던 아버지. 나는 그 공적이란 게 대체 무슨 소용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십만 명을 구하면 뭐 하나, 자기 처자식 하나 못 구하는데.' 그 편지에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네 어미를 부탁한다. 나는 반드시 돌아간다.'
반드시 돌아온다던 그 약속은 삼 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편지를 접어 품에 넣고,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밤바람이 차가웠다. 남천호가 별채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죽장 끝으로 흙바닥을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다.
"밤중에 왜 그런 얼굴을 하고 나오느냐."
"어르신... 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뭐냐."
"이곳에 있는 노병분들, 예전에 다 굉장하셨다면서요. 정 노인 어르신, 최 노인 어르신... 다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그건 왜 그런 겁니까?"
남천호가 흐음, 하고 낮게 웃었다.
"그건 옛날 얘기다. 옛날엔 저놈들끼리 서열 싸움으로 골 아팠지. 정 노인 저놈은 한때 도귀(刀鬼)라 불렸고, 최 노인 저 늙은이는 창왕(槍王)이라 불리던 시절도 있었느니라. 지금은 뭐, 밥그루 싸움이나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별빛도 없는 밤인데, 그 눈만은 이상하게 빛났다.
"근데 그건 왜 묻느냐. 다른 할 얘기가 있는 게 아니냐."
나는 결국 참았던 말을 꺼냈다. 목소리가 떨리는 걸 감추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한 달밖에 못 사신답니다. 약값은 삼백 금이고요."
말을 뱉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텅 비었다. 삼백 금. 노병들 백 명이 한 달을 꼬박 일해도 못 벌 돈. 그런 돈을, 나는 대체 무슨 수로.
남천호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는 죽장을 다시 짚으며 나를 오래 바라봤다. 그 눈빛 안에서 나는 뭔가—오랜 세월을 산 자만이 낼 수 있는, 무겁고도 복잡한 감정을 읽었다. 동정도 아니고, 놀람도 아니고, 그보다 훨씬 오래된 무언가였다.
"삼백 금이라... 그 돈, 어떻게 구할 셈이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답이 없었으니까. 벌이라고 해봐야 남천호를 도와 잔심부름을 하는 것 정도였고, 그걸로는 한 달에 한 냥도 채 못 모을 판이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한 가지 무시무시한 선택지가 자꾸만 떠오르고 있었다—지하 무투장, 9사1생의 그 구덩이. 발을 들이면 열에 아홉은 시체로 나온다는 그곳. 하지만 이긴 자에게는, 단 한 번의 승리로도 삼백 금이 넘는 돈이 굴러들어온다는 그곳.
나는 어둠 속에서 그 구덩이의 냄새를 이미 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