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지하 삼십 척, 대현제국의 사각투기장(死角鬪技場)—사람들은 이곳을 그저 '구덩이'라 불렀다. 나는 그 구덩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여섯 자루의 칼끝이 나를 향해 좁혀 오는 걸 보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오른팔은 이미 감각이 없었고, 왼쪽 옆구리에서는 뜨끈한 것이 계속 흘러나왔다. 흙바닥에 스며드는 그 붉은 웅덩이가 자꾸 넓어지는 걸 보면서도, 이상하게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아, 이거 진짜 죽는 거구나.' 열다섯 살짜리가 할 생각치고는 너무 담담해서 나조차 놀랐다.
구경꾼들의 함성이 천장을 타고 울렸다. 저 위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이 오가고 있을 거였다. 내가 몇 초 안에 뻗을지, 몇 놈한테 당할지, 그런 걸 놓고 낄낄대며 은자를 던지는 놈들. 나를 포위한 놈들은 저마다 하나씩 이름을 걸고 이 바닥에서 밥 벌어먹는 살수 출신들이었다. 가장 앞에 선 사내가 낫처럼 휜 도(刀)를 늘어뜨린 채 씩 웃었다. 뺨에 길게 그어진 흉터가 웃을 때마다 꿈틀거렸다.
"애송아, 여기까지 버틴 것만도 대단한 거다."
옆에 선 대머리 하나가 도를 어깨에 걸치며 거들었다.
"삼 년 만에 처음이야, 이 정도로 버틴 애새끼는."
'대단하긴 개코나. 도망갈 구석도 없는데.' 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손가락이 후들거렸다. 부들부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검을 쥔 손바닥에 땀인지 피인지 모를 것이 미끄덩거렸다. 이대로 검을 놓치면 그냥 끝이다—라는 생각만이 유일하게 또렷했다.
챙—
첫 번째 칼이 허공을 갈랐다. 나는 몸을 굴려 겨우 피했다. 등이 바닥에 쓸려 살갗이 벗겨지는 게 느껴졌다. 아프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이상하게 그 순간, 눈앞이 흐려지면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 씨발 상황에서 엄마 얼굴이 떠오르는 게 말이나 되나. 그런데 정말로, 그랬다. 얼굴조차 희미한 사람인데. 목소리도 기억 안 나는 사람인데. 왜 지금.
"뭘 웃어, 이 새끼가."
세 번째로 서 있던 놈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섰다. 두 번째 놈이 옆구리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나는 검을 세워 겨우 흘렸지만 팔이 통째로 마비되는 충격이 왔다. 빠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
'이러다 진짜 죽는다.'
죽음이라는 게 이렇게 가까이 오면 사람은 뭘 생각할까. 나는 그 답이 궁금했던 적도 없었는데, 지금 그 답을 알게 됐다. 사람은 지나온 시간을 되짚는다. 특히 가장 초라했던 순간부터, 가장 따뜻했던 순간까지 차례로. 죽음이 순서까지 정해주다니, 참 배려 넘치는 놈이다—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어지간히 미친 것 같았다.
"거참, 안 죽고 뭘 그렇게 오래 버티나."
가장 뒤에 있던 놈이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마치 지루한 구경거리를 억지로 보는 사람처럼.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이놈들에게 나는 목숨이 아니라 그냥 오늘의 유흥이었다.
세 번째 놈의 칼끝이 내 목젖 앞에서 멈췄다.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 도의 표면에 비친 내 얼굴이 우스울 정도로 태연했다. 나는 그 정지된 순간 속에서, 이 년 전 그 낡은 양로원의 냄새를 맡았다. 삭은 나무와 탕약 냄새, 그리고 어느 괴짜 노인의 코 고는 소리까지도. 마당에 널어놓은 낡은 무명 이불이 바람에 흔들리던 소리, 부엌에서 죽이 끓던 냄새, 그 노인이 자면서 내던 이상한 헛소리들.
'전부 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지.'
그때 그 노인은 나를 보고 뭐라고 했더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었지. 그 손이 그렇게 따뜻했던 걸 지금 이 순간에 떠올리는 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정말로 잡스러운 기억들이 다 튀어나오는 모양이었다.
여섯 번째 놈이 마침내 걸음을 옮겨 원을 좁혀왔다. 이제 도망갈 틈도, 숨 쉴 틈도 없었다. 구경꾼들의 함성이 한층 더 커졌다. 마치 마지막 순간을 놓칠까 봐 조바심 내는 것처럼.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구덩이 바닥의 소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