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력 0, 장비는 만렙

5화

보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낮에는 박정호에게 기본적인 주조 기술을 배웠다. 망치질하는 법, 마력을 불어넣는 타이밍, 재료를 고르는 눈까지. "자, 다시. 힘 빼고, 손목으로." 박정호는 같은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나중에는 그 반복이 몸에 새겨졌다. 밤에는 홀로 작업창을 붙잡고 씨름했다. 【부마 시도: 실패】 【부마 시도: 실패】 【부마 시도: 실패】 시스템은 매정할 정도로 정직했다. 한 번은 마력을 너무 많이 밀어넣어서 재료가 통째로 녹아버렸고, 한 번은 너무 적게 넣어서 아예 반응조차 없었다. ···이거 완전 저글링 배우는 기분이잖아. 공 하나 던지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손끝에 물집이 잡혔다가 터졌고, 그 위에 또 물집이 잡혔다. 밤새 작업하다 새벽에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잔 날도 여러 번이었다. 스물세 번의 실패 끝에, 겨우 하나의 물건이 완성됐다. 낡은 쇠 조각을 깎고 다듬어 만든, 손가락 두 개 크기의 작은 나이프였다. 손잡이에는 미세한 균열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칼날은 청록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완성되는 순간, 손바닥에서 이상한 온기가 훅 퍼져나갔다. 마치 방금 만든 물건이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진동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부마 완료: 절삭 강화 나이프 (등급 미확인)】 등급 미확인이라니, 이거 뭔가 불안한 표기 아닌가. 성공이면 성공, 실패면 실패지, 등급 미확인은 또 뭔데.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다음 날이 바로 대륭 주조 조합의 정기 승인 시험이었다. 나이프를 천으로 감싸 품속에 넣으면서도,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게 진짜 통할까. 박정호한테 물어봐도 소용없었다. 이미 그 아저씨도 이 물건을 처음 보는 거니까. * * * 다음 날 아침, 조합 건물로 향하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조합 건물은 영지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석조 건물 중 하나였다. 높은 아치형 창문, 대리석 바닥, 그리고 곳곳에 걸려 있는 조합 소속 명인들의 초상화. ···이거 완전 대기업 로비 느낌이네. 로비 한켠에는 응시자들이 줄지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나보다 나이도 많고 등급도 높아 보였다. 몇몇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 관심 가질 가치도 없다는 눈빛이었다. ···뭐, 이해는 간다. 나도 내가 여기 왜 있는지 아직도 헷갈리니까. 시험장 안, 긴 테이블 뒤에는 심사위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 앉은, 백발에 콧수염이 인상적인 노인이 조합장인 듯했다. 그 양옆으로 앉은 심사위원들은 서류를 뒤적이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오늘 하루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는 얼굴들이었다. "응시자 도현우." 이름이 불리자 나는 앞으로 나섰다. 주변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들렸다. "0등급이 여기 왜 있어?" "박정호가 특례로 밀어넣었다던데." "저 나이에 부마를 한다고?" "괜히 시간만 잡아먹는 거 아니야?" 소문은 이미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한 걸음씩 나설 때마다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이 늘어났다. 조합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나를 내려다봤다. "박 주조사의 추천으로 특례 응시가 허가됐다만, 솔직히 나는 이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와, 첫마디부터 그렇게 세게 나오시네. 인사도 없이 바로 팩트로 찌르시는구나. "0등급 마력으로 무슨 부마 아이템을 만들었을지 심히 궁금하군." 조합장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옆에 앉은 심사위원 하나가 낮게 웃었다. "이거 심사 시간도 아까울 것 같은데요." 다른 심사위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나마나 실패작이겠죠. 저희 다음 응시자나 빨리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몇몇 관중석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박정호는 뒤편 관중석에서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나를 향해 확고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저 아저씨 믿음 하나는 확실하네. 배신하면 안 되겠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 저 눈빛 하나가 여기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제작품을 제출하십시오." 조합장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천에 싸인 나이프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손이 살짝 떨렸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이를 꽉 물었다. 조합장이 천을 걷어내는 순간,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건···" 청록색으로 빛나는 칼날. 손잡이의 균열 문양. 시험장 안의 조명 아래서, 나이프는 마치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심사위원들의 시선도 서서히 나이프 쪽으로 쏠렸다. 방금 전까지 서류를 뒤적이던 손이 멈춰 있었다. 조합장이 나이프를 집어 들고 옆에 있던 감식 도구에 갖다 댔다. 작은 수정 막대가 반응하며 숫자를 표시했다. 삐이익— 가느다란 기계음과 함께 수치가 깜빡이며 올라갔다. "이, 이게···" 조합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절삭력 지수 87. 이건 중급 부마사도 쉽게 못 내는 수치인데."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킥킥거리던 목소리들도 일제히 사라졌다. 옆에 있던 심사위원이 감식 도구를 다시 확인했다. "오작동 아닙니까?" "세 번을 다시 재도 같은 숫자가 나온다." 세 번째로 확인한 뒤, 심사위원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조합장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은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비웃음이 사라지고, 대신 의심과 경계가 가득 차 있었다. "이거, 정말 네가 직접 만든 거냐?" "네, 제가 만들었습니다." "0등급 마력으로?" "···그렇습니다." 내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지만, 눈은 피하지 않았다. 조합장이 나이프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무겁게 시험장을 채웠다. 관중석에서도 숨 쉬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시험은··· 통과다." 마침내 조합장이 말을 뱉었다. 순간 여기저기서 안도와 놀라움이 뒤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정호도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스르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 해냈다. 스물세 번의 실패가 헛짓이 아니었어. 하지만 조합장의 다음 말이, 그 안도를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다만, 이 결과물은 정상적인 절차로 나올 수 없는 수치다." 그가 나이프를 다시 집어 들고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건 조합 규정상, 별도 재조사 대상이다." "재, 재조사요?" 방금까지 풀렸던 어깨가 다시 뻣뻣하게 굳었다. "영지관리부와 협의해서, 이 물건의 제작 과정을 다시 검증할 것이다." 영지관리부. 그 단어가 나오자, 나는 최윤재 조사관의 날카로운 눈빛이 떠올랐다. ···이거 완전 데자뷰잖아. 또 조사받아야 하는 거야? 이번엔 마력석도 아니고, 그냥 나이프 하나 만든 걸로? 조합장이 나이프를 조수에게 건네며 덧붙였다. "만약 이게 정상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시험 통과는 취소될 수 있다." 그의 말이 시험장 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다시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이번엔 비웃음이 아니라, 순수한 의문이었다. 박정호가 관중석에서 벌떡 일어섰다. "조합장님, 그건 좀 과한 처사 아닙니까? 아이가 통과했으면 됐지···" "박 주조사, 자네도 이 결과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나?" 조합장의 반문에 박정호가 말을 잃었다. 그의 입이 몇 번이나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면, 사실 나도 이게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23번의 실패 끝에 나온 결과물이, 갑자기 중급 부마사급 수치를 찍는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나조차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 * * 시험장을 나오는 길, 최윤재 조사관이 건물 입구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저기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박혀 있던 것 같은 존재감이었다. "소문 들었습니다."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발소리마저 규칙적이라 어딘가 불편했다. "보름 전 그 마력석 사건, 그리고 오늘 이 나이프까지. 우연이 두 번 겹치면 그건 우연이 아니죠." "저는 그냥···"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나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니까. "재조사 날짜가 잡히면 통보드리겠습니다." 그가 냉랭하게 말을 끝내고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대화할 필요도 없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마차를 타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스치는 걸 느꼈다. 박정호가 뒤늦게 따라 나와 내 옆에 섰다. "괜찮으냐." "네, 뭐···" "저 조사관,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정호의 표정은 전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시험은 통과했지만, 뭔가 훨씬 더 큰 문제가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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