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조사관이라는 단어가 나온 다음 날, 남작가 저택 앞마당에는 낯선 마차가 서 있었다.
바퀴에는 흙탕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말들은 먼 길을 달려온 듯 옆구리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이 정도로 급하게 왔다는 건,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터졌다는 뜻이었다.
···와, 이거 진짜 실시간 서버 점검 나온 느낌이잖아.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마차에서 내렸다.
키가 크고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였는데, 걸음걸이만 봐도 관료 냄비 근성이 잔뜩 배어 있었다. 등을 곧게 세우고 걷는데, 저러다 허리 삐끗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뻣뻣했다.
"영지관리부 조사관 최윤재입니다."
그는 인사도 대충 하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어제 신전에서 발생한 현상에 대해 조사하러 왔습니다."
목소리에 억양이 거의 없었다. 사무적이라기보다는,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확인만 하러 온 사람 같은 말투였다.
집사가 나를 대신해 대답하려 했지만, 조사관은 손을 들어 막았다.
"본인에게 직접 듣겠습니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와, 눈빛만으로 사람 죄인 만드는 스킬 배웠나 보네. 이거 완전 세관 검사 걸린 기분이잖아.
"저는 그냥, 조약돌을 만졌을 뿐인데요."
최대한 순진한 척 대답했다. 표정 관리는 자신 있었다. 전생에 회의실에서 상사 눈치 보며 웃는 표정 짓던 경력이 몇 년인데.
그러나 최윤재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0등급 마력 소지자가 중급 이상의 마력석을 만들어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게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지 아십니까?"
"아뇨, 저는 잘 모르는데···"
"보통 이런 일은 두 가지 경우에만 발생합니다. 첫째, 측정 자체가 잘못됐거나. 둘째, 사용자가 규정에 없는 미등록 스킬을 은닉했거나."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설명했다. 마치 나열식 발표 자료를 읽는 것처럼, 억양 하나 없이.
···와, 이거 완전 게임 어뷰징 신고당한 느낌이잖아. 근데 나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니까요.
"저는 어뷰징 안 했는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최윤재의 눈썹이 올라갔다.
"어뷰징이 뭡니까?"
···아, 이 세계에는 그 단어가 없구나. 망했다, 또 이상한 말 튀어나왔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정말로 그냥 신관님이 시키는 대로 손을 올렸을 뿐이에요. 저도 놀랐어요. 갑자기 조약돌에서 빛이 나길래."
최윤재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이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등에서 땀이 한 줄기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측정 기록에는 오차가 없었습니다. 명확한 0등급입니다."
"그럼 첫째 경우는 아니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둘째 경우를 조사하러 온 겁니다."
말이 씹혔다. 내가 봐도 자충수였다.
"결정체를 확인하겠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집사가 창백한 얼굴로 상자를 가져왔다. 어제 만들어진 마력석이 벨벳 위에 얹혀 있었는데, 은은한 푸른빛이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윤재는 그것을 들어 올려 눈앞에서 이리저리 돌려봤다. 빛이 그의 얼굴에 부딪혀 서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압수하겠습니다."
"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영지관리부에서 보관합니다."
그가 결정체를 가죽 주머니에 담아 넣었다. 그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심장이 철렁했다. 저게 내가 처음으로 뭔가를 '만들어낸' 물건인데, 저렇게 그냥 가져가버리네.
···이거 완전 첫 게임 아이템 압수당한 느낌이잖아.
"보름 뒤에 재조사를 실시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미등록 스킬 사용을 삼가십시오."
"삼가라고 하셔도, 저는 뭐가 미등록 스킬인지도 모르는데요."
"그럼 아무것도 만지지 마십시오."
···와, 그건 또 그렇게 딱 잘라 말하네. 참 성격 시원하시네요.
최윤재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떠나는 걸 보며 집사가 한숨을 쉬었다. 아까부터 계속 참았던 숨을 이제야 내뱉는 것처럼, 어깨가 축 늘어졌다.
"도련님, 정말 큰일입니다. 재조사에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저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게 그렇게 큰일인가요?"
"영지관리부에 요주의 인물로 등록되면, 최악의 경우 마력 관리국으로 강제 소환될 수도 있습니다."
"강제 소환이요?"
"네. 그곳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사람이 드뭅니다."
···강제 소환이라니, 그거 완전 게임 계정 정지 같은 건가. 아니, 계정 정지면 그냥 못 로그인하는 거지, 여긴 아예 사람을 잡아간다는 소리잖아.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그날 밤, 나는 저택 뒷마당에 홀로 앉아 작업창을 다시 불러냈다.
【부마 스킬: 도구 강화 (미숙련)】
【남은 재료: 없음】
뭐라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만질 만한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손에 잡히는 건 마른 나뭇가지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마저 강화창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저택은 이미 텅텅 빈 상태였다. 응접실 벽에는 그림이 걸렸던 자리만 사각으로 색이 다르게 남아 있었고, 복도 카펫도 절반쯤 뜯겨 나간 채였다. 아버지의 장례 비용으로 가구까지 다 팔아치웠다고 집사가 말했었다.
···이거 완전 무자본 창업 스토리네. 심지어 초기 자본금도 마이너스잖아.
그렇게 낙담해 있을 때, 저택 대문 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묵직했다. 걸음마다 무게가 실려 있었다.
체격이 크고 어깨가 넓은 중년 남자였다. 손에는 낡은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가방 겉면이 여기저기 긁혀 있고 쇠 부속이 반쯤 녹슬어 있었다. 오래 써온 물건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현우야."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익숙한 듯, 그러나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나다, 박정호. 네 아버지 친구다."
[박정호입니다. 한빛 주조공방의 주조사입니다.]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친절하게 정보를 알려줬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이 목소리 진짜 은근 도움 되네. 이름표라도 붙어 있으니 예의는 안 어긋나겠다.
박정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많이 컸구나. 인철이 장례식에도 못 가봐서 미안하다. 원정 다녀오는 길이었어서."
그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손이 거칠고 두꺼웠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굳은살로 단단했는데, 이건 며칠 만에 생기는 게 아니라 몇십 년을 망치질하며 만들어진 손이었다.
"들었다, 마력 측정 얘기. 신전 쪼그마한 신관 놈이 온 영지에 소문을 냈더라."
"···그렇게 많이 퍼졌어요?"
"영지 전체에. 남작가 도련님이 0등급인데 중급 마력석을 만들어냈다고. 사람들이 별 소리를 다 하고 있어. 어떤 놈은 네가 금지된 고대 마법을 썼다고 하고, 또 어떤 놈은 신전에서 뭔가 조작을 했다고 하고."
박정호가 혀를 찼다.
"소문이라는 게 다 그런 거지. 진짜는 아무도 관심 없고, 재밌는 쪽으로만 부풀려지니까."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손 올렸다가 벌어진 일이라···"
"됐다, 자세한 건 됐고."
그가 가죽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낡은 망치와 정, 그리고 각종 부속품이 가득했다. 망치 손잡이는 손에 닿는 부분이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나랑 가자. 내가 인철이한테 약속했다. 저 애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책임진다고."
"어디로요?"
"한빛 주조공방. 내 밑에서 일 좀 배워봐라."
집사가 뒤에서 조심스레 물었다.
"박 주조사님, 도련님을 데려가시면 저희 가문의 격은 어떻게···"
"격 따위 챙길 여유 있으면 그렇게 하시고요."
박정호가 단호하게 잘랐다. 목소리에 짜증이 살짝 배어 있었다.
"지금 저 애한테 중요한 건 격이 아니라 밥이랑 기술입니다. 격 챙기다가 굶어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이 아저씨, 뭔가 사람 볼 줄 아네. 격보다 밥이라니, 이거 완전 현실적인 조언이잖아.
나는 왠지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될 것 같았다.
"제가 뭘 해야 하는 건가요?"
"일단 짐 챙겨. 오늘부터 공방에서 지낸다."
박정호는 그렇게 말하고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몇 안 되는 짐을 챙겼다.
낡은 옷가지 두 벌과,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손목시계 하나가 전부였다. 시계는 태엽이 멈춰 있었고, 유리도 살짝 깨져 있었다. 그래도 왠지 버릴 수가 없었다.
···와, 이거 진짜 무일푼 회귀물 클리셰네. 짐 보따리 하나 들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거, 이거 완전 정석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살짝 설렜다.
마차에 오르기 전, 집사가 나를 붙잡았다.
"도련님, 부디 조심하십시오. 재조사가 보름 뒤입니다. 그때까지 뭔가 답을 찾으셔야···"
"네, 알겠어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아무런 답도 갖고 있지 않았다.
마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호가 나를 슬쩍 쳐다봤다. 마차 안은 좁고 어두웠는데, 낡은 가죽 냄새와 흙먼지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신전에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의 눈빛이 진지했다.
"조약돌을 만졌는데, 갑자기 뭔가 빛이 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마력석이 됐더라고요."
"그게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
"···네, 알아요."
박정호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봤다. 창밖으로 저택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공방에 가면 물어볼 게 많을 거다. 근데 그 전에, 하나만 알아둬라."
"뭘요?"
"보름 뒤 재조사에서 또 이상한 게 나오면, 이번엔 정말 마력 관리국이 직접 나설 거다."
마차 바퀴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거기 끌려가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요?"
박정호가 잠깐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큰 손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거기 끌려가면, 다시는 못 나온 사람들 얘기가 있다."
마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