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각성 다음 날, 학당 훈련장은 술렁였다.
결핍 속성 얘기 들었어?
최하급이라며. 방계 놈들 신났겠다.
소문이 이미 학당 전체에 퍼져 있었다.
유겸이 지나갈 때마다 시선이 따라붙었다.
법로, 오늘 무슨 수업 있어.
초급 실전 훈련이 있습니다. 각성자들이 처음 참여하는 수업입니다.
뭐 하는 건데.
마력을 이용한 기초 대상 처리 과제입니다. 대부분 낮은 등급의 마수 처치나 물체 조작입니다.
난이도가 낮다는 거네.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훈련장 한쪽에 나무 표적과 작은 우리가 놓여 있었다.
우리 안에는 손바닥만 한 회색 짐승이 웅크리고 있었다.
교관이 학생들을 줄 세웠다.
오늘은 각성자들 위주로 훈련한다. 저 짐승은 하급 마수, 진흙쥐다. 마력으로 제압해서 제출하면 된다.
학생들이 하나둘 나섰다.
대부분 작은 불꽃이나 물줄기로 짐승을 위협하는 정도였다.
노유겸.
교관이 유겸을 불렀다.
네가 그 결핍 속성이라던데. 어디 한번 보자.
주변 학생들이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서지혁도 훈련장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유겸이 우리 앞에 섰다.
진흙쥐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크르릉.
법로, 이거 어떻게 하면 돼.
짐승의 마력을 흡수해보십시오. 결핍 속성이 통할지 확인할 좋은 기회입니다.
유겸은 손을 뻗었다.
짐승과 손 사이에 짧은 거리가 있었다.
스으으.
손끝에서 익숙한 흡입감이 느껴졌다.
짐승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마력 흡수 시도]
[대상: 진흙쥐]
[흡수 성공]
짐승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털이 순식간에 색을 잃고 회백색으로 변했다.
교관의 눈이 커졌다.
뭐야, 이거.
주변이 조용해졌다.
[속성 정보 갱신]
[결핍: 흙 계통 미세 흡수]
유겸의 눈썹이 슬쩍 움직였다.
흙 계통이라니.
방금 흡수한 마력이 흙 속성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럼 나 지금 흙 속성도 조금 쓸 수 있다는 거야?
미세하게나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교관이 다가와 짐승을 살펴봤다.
생명력을 완전히 뺏어버렸군. 이거 하급 마수 상대로 이런 결과 처음 본다.
그가 유겸을 다시 봤다.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결핍이라, 이름만 후진 게 아닐 수도 있겠는데.
주변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방금 뭐 한 거야.
그냥 손 갖다 댔는데 짐승이 쓰러졌어.
서지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가 훈련장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다시 해봐.
네?
다른 대상으로 다시 해보라고.
서지혁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교관이 조심스럽게 다른 우리를 가져왔다.
이번엔 조금 더 큰 짐승이었다.
크와아앙.
짐승이 우리를 흔들며 포효했다.
이건 중급 마수인데, 학생용 훈련에 안 쓰는 등급인데.
교관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괜찮으니까 열어.
서지혁이 명령했다.
교관은 마지못해 우리를 열었다.
짐승이 뛰어나와 유겸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겸아!
어디선가 서아영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겸은 몸을 낮췄다.
짐승의 발톱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법로!
흡수 준비되었습니다. 접촉이 필요합니다.
유겸이 손을 내밀어 짐승의 다리를 붙잡았다.
[마력 흡수 시도]
[대상: 중급 마수]
[흡수 진행 중...]
짐승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흡수 성공]
[속성 정보 갱신]
[결핍: 화염 계통 미세 흡수]
짐승이 그대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털이 타버린 것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
훈련장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교관이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지혁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방금, 뭐였지.
유겸이 손을 털며 일어섰다.
숨이 조금 가빴지만 표정은 태연했다.
최하급이라고 하셨잖아요.
일부러 던진 말이었다.
서지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뭔가 숨기고 있군.
숨기는 게 아니라 저도 지금 처음 알았는데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서지혁은 아무 말 없이 유겸을 노려봤다.
그의 눈빛에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경계와 계산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오늘 일은 내가 따로 보고할 거다.
무슨 보고요.
네 각성 결과, 남작가에 정확히 알려야 하는 사안이야.
서지혁이 몸을 돌려 훈련장을 나갔다.
유겸은 그 뒷모습을 지켜봤다.
법로.
네.
저 새끼, 뭔가 알고 있는 눈빛이었는데.
결핍 속성에 대한 기록이 남작가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저 새끼가 이 속성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
가능성 있습니다.
유겸은 손바닥을 다시 봤다.
흙, 화염, 두 가지 계통을 이미 미세하게 흡수한 상태였다.
이게 계속 쌓이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귀걸이가 잠시 침묵했다.
기록에 따르면, 계승한 속성이 일정 수준 이상 축적되면 특수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변화.
구체적인 내용은 소실되어 있습니다.
유겸은 훈련장 하늘을 올려다봤다.
방금까지 회색빛으로만 보이던 하늘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최하급 취급받던 속성이 사실은 뭐든 삼켜서 자기 걸로 만드는 스킬이라니.
혼잣말이 서서히 웃음기를 띠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훈련장 입구 쪽에서 방계 문양을 두른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지난번 복도에서 만났던 그 남자였다.
노유겸 도련님.
남자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방계 어르신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해 들으셨습니다.
벌써요?
예상보다 빠른 반응이었다.
어르신들이 도련님을 한번 뵙고 싶어하십니다. 3일 후, 본가 별채로 초대하겠습니다.
남자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아래 숨은 무언가가 유겸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방계가 지금까지는 뒤에서 움직였다면, 이제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겠다는 뜻이었다.
유겸은 남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3일 후, 방계의 진짜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