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학당 정문은 회색 석재였다.
낮은 첨탑이 양쪽에 서 있었다.
유겸아, 늦겠다.
서아영이 서둘러 도시락을 챙겨줬다.
손수건에 곱게 싼 빵 두 개였다.
다녀올게요.
도훈은, 아니 이제 유겸의 몸으로, 문을 나섰다.
걸음이 짧고 서툴렀다.
14세 몸에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법로.
네.
학당 정보 좀 줘봐.
귀족 자제와 평민 겸용 학당입니다. 전투 마법 수업이 있으며, 이 학당 출신 다수가 성인식 전 각성을 마칩니다.
귀족 자제라.
그리고 서지혁 남작의 아들이 이곳 학당의 실질적 규율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아들도 있었어?
서지혁 본인이 아직 젊습니다. 24세, 3급 남작 작위와 결혼 승인권을 함께 세습받았습니다.
도훈의 눈이 좁아졌다.
그럼 그 새끼가 직접 온다는 소리네.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교실은 어두웠다.
돌벽 사이로 좁은 창이 빛을 흘려보냈다.
책상마다 낡은 마력석이 놓여 있었다.
어이, 노유겸.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곱게 차려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금발, 날카로운 눈매, 손가락엔 금색 인장 반지.
서지혁이었다.
각성 몇 번 시도했다고 들었는데. 세 번 다 실패했다며.
그런 것 같은데요.
유겸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주변 학생들이 킥킥 웃었다.
무능한 방계 놈이 여기까지 와서 자리만 차지하네.
서지혁이 책상을 손끝으로 툭툭 두들겼다.
결혼 승인권 얘기 들었나.
뭘 말입니까.
네가 16세까지 각성 못하면 내가 네 결혼 상대를 정한다는 거.
서지혁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벌써 마음속에 후보가 있어. 60줄 넘은 과부인데, 아주 부자야.
교실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유겸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이미 계산이 돌고 있었다.
이 자식, 나이는 24살인데 하는 짓은 초등학생급이네.
입 밖으로는 다른 말이 나왔다.
그거 참 친절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서지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다.
뭐라고.
걱정해주시는 거 아닙니까. 제 결혼까지 챙겨주시고.
유겸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서지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냐.
그럴 리가요.
웃음소리가 다시 커졌다.
이번엔 서지혁을 향한 웃음이었다.
서지혁의 손이 책상을 세게 내려쳤다.
탁.
조용히 해.
교실이 얼어붙었다.
서지혁이 유겸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렸다.
2년 남았다, 노유겸. 그동안 나한테 예의 바르게 굴어야 할 거야.
그가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유겸은 조용히 앉았다.
법로.
네.
저 자식, 실제로 얼마나 위험해.
결혼 승인권 외에도 학당 내 규율 위반 시 즉결 처벌권을 갖고 있습니다.
즉결이면 뭐.
벌금, 체벌, 최악의 경우 퇴학입니다.
좋네 아주.
유겸은 창밖을 봤다.
마당에 아이들이 마력석으로 작은 불꽃을 튀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서투른 손짓이었다.
다들 저렇게 배우는 거야?
네. 12세부터 마력 서킷 열기 훈련을 받습니다.
난 세 번 다 실패했다며.
숙주 본연의 재능이 낮았습니다.
지금 몸은 그 재능 그대로인 거지.
그렇습니다.
유겸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나왔다.
영혼만 바꿔놓고 재능은 그대로 두면 어쩌라는 거야.
귀걸이는 대답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걷는데, 낯선 남자가 유겸을 불러세웠다.
검은 옷, 방계 가문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
노유겸 도련님이시죠.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예의는 있었지만 눈빛이 차가웠다.
방계 어르신들이 안부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무슨 안부요.
각성 시험이 얼마 안 남았으니 몸 관리 잘하시라고.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뭔가 이상했다.
법로.
네.
이 새끼 말투 왜 저래.
분석 결과, 진심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당연하지.
남자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유겸은 그 뒷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방계에서 벌써 움직이네.
혼잣말이 낮게 새어 나왔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유겸은 밥상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영이 국을 떠주며 물었다.
학당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노경환은 묵묵히 밥만 먹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국그릇을 쥔 채 잠시 멈춰 있었다.
유겸아.
네.
2년 안에 각성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압니다.
아빠가 뭐든 도와줄 테니까, 힘든 거 있으면 꼭 말해.
노경환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
피곤함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네.
유겸은 짧게 대답했다.
밥을 씹는 소리만 방 안에 울렸다.
그날 밤, 도훈은 다시 천장을 봤다.
서지혁, 방계, 시한부 각성.
세 개의 실이 동시에 목을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법로.
네.
각성 시험, 그거 언제 볼 수 있어.
숙주가 원하면 언제든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패 시 회복 기간이 필요합니다.
실패해도 다시 볼 수 있다는 거지.
네. 단, 정신력 소모가 누적됩니다.
유겸의 눈이 반짝였다.
좋아. 신청해보자.
다음 날 학당에서 시험 신청 서류를 받아온 순간, 서지혁이 다시 나타났다.
서류를 쥔 유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또 실패할 준비를 하나보네.
두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유겸이 무심히 대답했다.
서지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말버릇이 갈수록 늘어나는군.
그가 서류를 뺏어 훑어봤다.
7일 후 시험 소집이라. 내가 직접 관람해주지. 무능력한 방계가 또 어떻게 무너지는지.
서류를 던지듯 돌려주고 그가 사라졌다.
유겸은 서류를 주워 들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7일이라.
혼잣말이 낮게 새어 나왔다.
귀걸이는 조용했다.
하지만 유겸의 머릿속엔 이미 계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무엇을 준비해야 이 7일을 버텨낼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