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백세에 눈이 열렸다

2화

대전(大殿)의 문턱을 넘어서던 순간, 나는 향불의 매캐한 연기와 함께 벽면을 따라 늘어선 시선들이 일제히 내게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 냄새는 익숙했다. 백 년 가까이 이 산문(山門)을 오르내리며 맡아온 냄새였고, 그 아래 깔린 목단향(木丹香)의 씁쓸함까지도 나는 눈을 감고도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익숙함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장로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들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동정, 그리고 얕은 조소가 뒤섞여 있었다. 몇몇은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옆자리와 귓속말을 나누었고, 그 귓속말 사이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나는 애써 듣지 않으려 했다. 백 세가 다 되도록 연기(練氣) 이층에 머물러 있는 제자라는 것이, 이 문파 안에서 어떤 존재로 취급받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한때는 재능이 늦게 피는 것뿐이라며 다독여주던 목소리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이제 남은 것은 이런 자리에서 마주하는 시선들뿐이었다. 장문인은 상석에 앉아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고, 그 곁에는 새로 부임했다는 감정관이 흰 옥판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옥판의 표면에는 미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이 진기의 흐름을 읽어내는 법구(法具)라는 것을 나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감정관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애당초 이 심사의 결과가 무엇이든 그에게는 하루의 업무 중 하나일 뿐이었을 것이다. "이도현." 장문인이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대전 바닥의 냉기가 무릎을 타고 올라왔다. 그 냉기마저 오늘만큼은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단전을 열고 진기를 이끌어보아라. 오늘로 마지막 심사이니, 결과가 어찌 나오든 다시 묻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유독 무겁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백 년간 갈고 닦은 호흡법을 따라 단전 깊숙한 곳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숨을 들이쉬고,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실낱같은 흐름을 좇아 끌어올리는 그 과정은 이미 내 몸에 새겨진 습관과도 같았다. 미약하지만 정순한 기운이 경맥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고, 그 흐름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매끄러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실 한 가닥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긋남 없이, 흐트러짐 없이. 감정관이 내 손목을 짚고 옥판에 무언가를 새기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려왔다. 그 소리는 유독 크게 울렸다. 대전 안의 모든 숨소리가 잦아든 탓이었을까, 아니면 내 심장이 유난히 크게 뛰고 있던 탓이었을까. 그 짧은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늘어지는 것 같았다. 옥판 위로 옮겨지는 진기의 궤적을 지켜보는 장로들의 눈빛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도 느낄 수 있었다. "진기의 순도는 놀라울 정도로 높습니다." 감정관이 옥판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고, 순간 장로들 사이에서 낮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백 년을 헛되이 보낸 것은 아니었나 보군."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는 뜻밖이라는 놀라움과,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옅은 경멸이 함께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아주 잠깐이었지만 무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백 년이라는 시간이 아주 조금은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얕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말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하지만 단전의 그릇 자체가 극히 협소합니다. 나이로 인해 골격과 경맥이 굳어버린 지 오래이니, 이제 와서 그릇을 넓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전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 흘러나오던 감탄과 웃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신 침묵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 침묵은 앞서의 조소보다 훨씬 잔인했다. 장문인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마치 판결을 내리듯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도현은 평생 축기(築基)에 이를 수 없다. 이것으로 심사를 마친다." 그 문장이 끝나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감각과 함께 무릎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귓속이 멍하게 울렸고, 대전 안의 소음들이 아득하게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백 년. 백 년을 견뎌온 대가로 돌아온 것은, 처음부터 그릇 자체가 담을 수 없다는 통보뿐이었다. 전생에서 나는 무엇이었나. 이승에서 나는 또 무엇을 해왔나. 그 물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지만, 어느 것도 답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럼 대체 무엇을 위해서였나.' 나는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할 수 없었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대전을 나섰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등 뒤로 쏟아지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조소도, 동정도 아닌, 그저 무관심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흥미로운 구경거리조차 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장로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산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마치 백 년간 짊어졌던 무언가가 통보와 함께 뜯겨나간 듯한, 허탈한 가벼움이었다. 산문의 돌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는 동안, 나는 그 계단 하나하나에 새겨진 손때를 눈에 담았다. 이 계단을 처음 올랐던 날의 나와, 지금 내려가는 나 사이에는 백 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었지만, 정작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정처 없이 산길을 걸었고, 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만이 유일한 동행이었다. 바스락, 바스락. 그 소리는 규칙적이었지만, 내 마음은 그 규칙과는 정반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구름 사이로 드러난 초승달이 희미한 빛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빛은 너무나 약해서, 내 발밑의 그림자조차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전생에서도, 이승에서도 나는 늘 뭔가에 미달했지.' 전생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 이루지 못한 일들, 끝내 닿지 못했던 목표들. 그리고 이승에서마저 되풀이된 그 미달의 감각. 그런 자조적인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 나는 문득 눈앞의 풍경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무의 이파리 하나, 바위의 표면 하나가 마치 수많은 작은 점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어른거리기 시작했고, 그 점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진동하며 미세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의 피로인가 싶었다. 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지만, 그 점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손을 들어 눈앞에 대보았는데, 손등 위에도 그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마치 살가죽 아래에 무수한 별들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그 점들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의 리듬은 서로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이게 뭐지.' 전생의 지식으로도, 백 년간 배운 선도의 지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그 점들의 흐름을 따라가보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곧 극심한 두통으로 되돌아왔다. 마치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단위를 들여다보는 듯한, 그러면서도 동시에 극심한 두통을 유발하는 그런 시야였다. 관자놀이 안쪽에서 무언가가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은 점점 강해져 눈알 뒤쪽까지 뻗어나갔다. 나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시야는 점점 더 선명해지는 동시에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숨을 몰아쉬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감은 눈 안쪽에서도 그 점들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심사에서 무너진 충격 때문인가.'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지만, 이 감각은 단순한 정신적 충격과는 결이 달랐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뒤틀리며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읽어내려 하는 듯한, 낯설고도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숲 저편에서 무언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크아아아아! 그 울음소리는 짐승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낮고 무거웠으며, 그 뒤로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지끈, 콰직! 한 그루가 아니었다. 여러 그루의 나무가 연달아 쓰러지는 소리였고, 그 소리는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살폈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직감했다. 두통으로 흐려졌던 시야 사이로도, 저 멀리 나무들 사이에서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 그림자는 사람의 것도,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짐승의 것도 아니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의 절망과 허탈함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원초적인 긴장이 채웠다. 절망에 젖어 아무 생각 없이 산길에 앉아 있던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강렬한 본능을 느꼈다. 그 본능은 백 년간 쌓아온 어떤 수련보다도 빠르게,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무들이 쓰러지는 소리는 이제 거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고, 그 사이로 짓눌린 흙냄새와 함께 어딘가 비릿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어둠 속에서 서서히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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