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스승님, 저 아직 안 죽었어요

4화

발소리는 태청문 쪽에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눈밭을 밟는 소리가 하나가 아니라 둘, 셋으로 갈라져 들려오는 것을 강휘는 귀로 헤아리며, 서둘러 도적의 시신을 눈 더미와 덤불 사이로 밀어 넣어 흔적을 지운 뒤, 부러진 갈비뼈를 부여잡고 절벽 옆 완만한 사면을 따라 절뚝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으며, 그 걸음마다 첫 살인의 무게가 발밑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사이로 뜨거운 통증이 관통했는데, 강휘는 그 통증을 억지로 삼키며 걸음을 세었다. 하나, 둘, 셋. 발소리가 이만큼 가까워졌으니 저들이 시신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다행히 새벽 눈이 다시 내려 발자국의 흔적을 어느 정도 덮어주고 있었으나, 그것도 오래갈 리 없었다. 태청문은 태청산 중턱에 자리한 오래된 도문으로, 삼청 중 태청도군을 받든다는 명분 아래 세워졌으나, 실상은 잡역 제자들의 노고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크고 번잡한 산문이었는데, 강휘가 차용한 이 육신은 바로 그 태청문에서 십 년 가까이 물지고 나무하며 살아온 최말단 잡역 제자였다. 산문의 기와는 낡아 이끼가 슬었고, 회랑을 지나는 도사들의 도포 자락에는 정갈함보다는 생활의 궁핍함이 더 짙게 배어 있었으니, 강휘는 이 몸의 주인이 살아온 세월이 결코 편안하지 않았음을 새삼 짐작할 수 있었다. 산문 어귀에 이르렀을 때, 마침 마주친 것은 다름 아닌 조필이었다. 조필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리는 것이 눈에 뻔히 보였는데, 그는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 자가 멀쩍이 살아 돌아온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몇 걸음 뒷걸음질을 치다가 억지로 태연한 낯빛을 꾸며냈다. 그의 손끝이 옷자락을 움켜쥐며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강휘는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어, 어떻게 된 거냐. 너,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조필이 말끝을 흐리며 물었는데, 그 목소리 끝이 파리하게 갈라져 있었다. 강휘는 그 얼굴을 잠시 응시했는데, 예전의 강휘라면 이 순간 분노에 사로잡혀 즉시 손을 썼을 것이나, 지금의 그는 자신의 몸이 얼마나 초라한지, 그리고 조필의 뒤에 태청문 내부의 어떤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계산했다. 분노는 칼과 같아서, 벼려지지 않은 채 휘두르면 제 손을 벤다는 것을, 강휘는 화선산에서 오십 년을 살며 뼈에 새겨 알고 있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사형." 강휘는 존댓말로 짧게 답했는데, 그 순종적인 말투 속에 숨어 있는 서늘한 눈빛까지는 조필이 미처 읽어내지 못했다. 조필은 몇 번 눈을 깜박이더니, "그, 그래. 몸조리나 잘해라"라는 말을 던지고는 서둘러 산문 안쪽으로 사라졌는데, 그 뒷모습이 도망치듯 다급했다. 그날 이후 며칠이 흘러갔다. 부러진 갈비뼈는 태청문 의당의 조악한 탕약과 강휘 자신의 은밀한 진기 운용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아물어갔으며, 그 사이 강휘는 낮에는 여느 잡역 제자처럼 물을 긷고 장작을 패며 지냈으나, 밤이면 홀로 처소에 틀어박혀 천지건곤결의 구결을 되짚으며 이 몸에 맞는 수련법을 조금씩 찾아나갔다. 이 몸의 근골은 오랜 노동으로 다져져 다부졌으나, 단전은 텅 비어 있어 마치 마른 우물과 같았으니, 강휘는 그 텅 빈 곳에 조금씩 기운을 흘려보내며 조바심을 억눌렀다. 물을 지고 오를 때마다 어깨에 닿는 지게의 무게가 예전 화선산주였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낯설었는데, 강휘는 그 낯섦을 오히려 감사히 여겼다.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으니, 이 초라한 몸이야말로 그가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든든한 은신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필은 그 짧은 며칠 사이에도 몇 번이나 강휘를 불러 험한 일을 시켰고, 다른 잡역 제자들 앞에서 은근히 그를 모욕하며 예전의 위세를 되찾으려 했는데, 한번은 땔감을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세 번이나 옮기게 하며 "굼벵이 같은 놈"이라 조롱하기도 했고, 또 한번은 강휘가 뜨거운 물을 나르다 옷깃에 물을 조금 흘렸다는 이유로 다른 제자들 앞에서 뺨을 후려칠 듯 손을 들어 올렸다가, 강휘의 눈빛과 마주치자 이내 슬그머니 손을 내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강휘의 눈빛에는 언제부턴가 예전과는 다른 서늘한 침묵이 서려 있었다. 화선산 식솔들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는 밤이면, 강휘는 처소 창밖으로 흐르는 달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골랐는데,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유독 차가워 뺨을 스칠 때마다 오십 년의 기억이 조각조각 되살아났다. 그 그리움과 원한이 뒤섞인 감정이 오히려 그를 더욱 단단하게 벼려주고 있었으니, 밤마다 되풀이되는 구결의 암송은 어느새 주문처럼 그의 숨결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렇게 열흘이 흐르는 사이, 처소 밖 마당에 서 있던 매화나무 한 그루에 아직 꽃봉오리 하나도 맺히지 않은 채 삭풍만 스치고 있었으니, 강휘는 그 헐벗은 가지를 볼 때마다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 겨울이었다. 아직은, 그 무엇도 피어나지 않은 계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밤, 강휘가 홀로 진기를 운용하던 중 문득 처소 밖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발소리는 조심스러웠으나 분명 사람의 것이었고, 그 방향은 다름 아닌 조필의 처소 쪽에서 이어져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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