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도현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더 주자, 소년의 눈빛이 순간 사나워지는 것이 보였다. 마치 짐승이 궁지에 몰렸을 때 드러내는 이빨 같은 것이었는데, 서윤은 그 눈빛을 마주하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이대로 놓으면 짐을 뺏긴다.' 그 계산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완력을 앞세워 짐을 빼앗으려던 찰나, 골목 안쪽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형, 저기 창고 애가 또 몰래 빼먹었어."
덩치가 작은 소년 하나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 도현의 팔을 잡아당겼다. 뛰어온 기색이 역력했는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고,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서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을 풀어주었다. 손끝에 남아 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지금은 물러나는 게 맞는 선택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도현 역시 굳이 다시 짐을 빼앗으려 하지 않고 그 소년을 따라 몸을 돌렸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의 대치는 뒷전으로 미뤄놓기로 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 무심한 전환이 서윤에게는 오히려 낯설게 다가왔다.
'따라가야 하나.' 서윤은 잠시 고민했지만,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원작 속에서 도현이라는 인물이 처음으로 냉혹함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어떤 대목이었는지는 흐릿했지만, 그 장면이 그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만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골목 안쪽 창고 앞에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떨고 있었다. 낡은 옷 사이로 앙상한 어깨가 드러나 보였고, 그 앞으로 흩어진 빵 부스러기와 뒤집혀 있는 자루가 보였는데, 아마 배급받은 식량을 몰래 먹으려다 들킨 모양이었다. 부스러기 몇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걸 보니, 배가 얼마나 고팠던 건지 짐작이 갔다.
공기 중에는 옅은 곰팡이 냄새와 함께 눅눅한 흙 냄새가 섞여 있었다. 창고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그 냄새가 이 도시의 궁핍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도현이 다가서자 아이는 몸을 더 작게 웅크렸다. 마치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는 것처럼, 등을 벽에 딱 붙이고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서윤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는데, 도현의 얼굴에서 조금 전 서윤을 상대할 때와는 다른 종류의 냉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전에는 계산된 위협이었다면, 지금은 무언가 더 근본적인 분노 같았다.
"몇 번을 말했어."
도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서늘함이 골목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서윤은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몫을 훔치면 다른 애들이 굶는다고."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조그마한 손이 바닥을 짚은 채 떨리고 있었는데, 그 떨림이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도현이 손을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고, 서윤은 순간 목이 조여드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쳤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러나 도현의 손은 뺨을 향해 내려오는 대신, 소년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아 창고 벽에 등을 밀어붙였다. 쿵, 하는 소리가 골목에 울렸고, 소년의 입에서 짧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음에 또 그러면."
도현이 몸을 낮춰 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채 속삭였다. 그 자세가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보였는데, 목소리를 낮춘다는 것이 분노를 억누른다는 뜻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겨눈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내쫓는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는지, 서윤은 짐작할 수 있었다. 흑월성 안에서도 그나마 도현의 무리에 속해야 최소한의 안전과 배급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원작에서 읽은 적이 있었으니까. 밖으로 내쫓긴다는 건 굶어 죽거나, 다른 무법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 성벽 밖의 세계가 얼마나 잔인한지, 서윤은 텍스트로만 접했을 때보다 지금 이 눈앞의 공기를 통해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소년이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도현은 그제야 손을 놓았다. 벽을 짚고 주저앉는 소년을 뒤로한 채 몸을 돌리는 도현의 표정은 다시 무심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는데, 그 전환의 빠르기가 오히려 서윤에게는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마치 스위치를 끄고 켜듯, 감정이라는 것을 원할 때만 꺼내 쓰는 사람 같았다.
'이 사람, 감정을 접고 펴는 게 자유롭구나.' 서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현을 바라보았다. 소설 속 텍스트로 읽었을 때는 그저 냉정한 리더 정도로만 그려졌던 인물이었는데, 실제로 눈앞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니 그 냉정함의 무게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글자로 읽을 때는 몰랐던 것들 — 목소리의 온도, 손의 힘,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다.
작은 소년은 여전히 벽에 등을 붙인 채 훌쩍이고 있었고, 처음 도현을 데리러 왔던 아이가 그 옆에 다가가 조용히 무언가를 건네는 것이 보였다. 아마 남은 빵 조각인 듯했다. 서윤은 그 광경을 보며 이 무리 안에도 나름의 온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규율은 냉혹했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챙기는 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도현이 서윤과 눈이 마주치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까지 짐을 두고 대치했던 상대가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경 쓰이는 듯했다.
"뭘 보고 있소."
짧은 물음에 서윤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겁먹은 것처럼 보였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실제로 몸이 반응한 건 두려움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긴장이었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방식의 규율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냉정한 계산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동시에, 저 어린아이가 다시 배를 곯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섞여 있었는데, 그 두 가지 감정이 뒤섞여 정확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저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
서윤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도현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두려움도 아니고 비난도 아닌, 그저 관찰하는 듯한 태도가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서윤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오."
"상관은 없지."
서윤은 짐 보따리를 다시 고쳐 메며 어깨를 으쓱했다. 끈이 어깨를 파고드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는데, 그 사소한 불편함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현실감을 붙잡아 주는 것 같았다.
"그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뿐이야."
도현은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이 서윤의 얼굴을 훑고, 다시 그녀가 안고 있는 짐 보따리로 향했다가, 마지막으로 완전히 무방비하게 서 있는 자세로 돌아왔다. 마치 이 여자가 정말로 위협이 될 만한 존재인지, 아니면 그저 순진하게 자기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려는 눈빛이었다.
그 침묵이 꽤 길게 느껴졌다. 골목 사이로 부는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고, 저 멀리서 아이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서윤은 그 정적 속에서 도현이 자신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을 피하면 약해 보인다.' 그 생각 하나로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곧 알게 될 거요."
도현이 짧게 내뱉고는 다시 몸을 돌려 무리를 이끌고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따라 아이들이 하나둘씩 대열을 이루며 뒤따르는 것이 보였는데, 그 광경이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가 통째로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윤은 문득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예감을 느꼈다. 방금 그 말이, 위협이었는지 경고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다시 마주치게 될 거라는 예고였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곧 알게 될 거라니.' 서윤은 그 말을 몇 번이나 되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의미로 들리지는 않았다.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그림자들을 바라보며,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짐 보따리를 더 세게 끌어안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저 남자와 다시 마주치는 순간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