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죽은 영애는 숨어 산다

3화

이렘 교수의 연구실은 좁고 어두웠다. 벽마다 알 수 없는 도구와 서적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어딘가에서 은은한 약초 냄새가 풍겼다. 말린 허브인지, 마법 재료인지 구분이 안 되는 냄새였다. 책상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병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액체가 담긴 병도 있었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병도 있었다. "앉으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낡은 나무 의자가 삐걱, 소리를 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기분이었다. 교수는 책상 너머에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확인하고 싶어서요." "……뭘 확인하시려는 건가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애썼다. 육 년 동안 갈고닦은 포커페이스였다. 교수는 잠시 나를 보다가,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학생, 마력을 억누르는 훈련을 받은 적 있죠?" 숨이 턱 막혔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가, 곧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알았지. 표정 관리는 완벽했는데. 아니, 완벽하지 않았나. 부정하고 싶었지만, 표정이 이미 답을 해버린 것 같았다. "그런 훈련을 받은 아이는 흔치 않습니다." 교수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는 비난도, 동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했다. "보통 마력을 가진 아이들은 오히려 그걸 드러내는 법을 배우거든요. 자기 마력을 통제하고, 원하는 대로 다루는 법. 억누르는 훈련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필요하죠." 특수한 상황. 그 단어가 귓가에 콱 박혔다. 감금. 학대. 죽은 것으로 처리된 딸. 머릿속으로 온갖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애써 표정을 굳혔다. 웃어야 하나, 아니면 어리둥절한 척을 해야 하나. "오해십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저는 그냥, 마력이 불안정해서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에요. 어릴 때부터 마력이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편이라,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거짓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다. 육 년 동안 단련된 능력이었다. 이렘 교수는 잠시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 시선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몇 초였는지 몇 분이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눈을 피하지 않으려 애썼다. 결국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더 캐묻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다만." 교수가 말을 이었다. 나는 다시 몸이 굳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저는 마법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우호적인 편이니까." 그 말이 왜 이렇게 낯설게 들리는지 몰랐다. 마법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우호적이다. 그 말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저리는지. 그 말에 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타이밍에 우는 건, 개복치인 나에게도 너무 촌스러운 일이었다. 연구실을 나오면서 나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복도의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그제야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 밤, 오랜만에 그 기억이 다시 찾아왔다. 열 살이었다. 서지훈 오빠가 열병을 앓았다. 이마가 펄펄 끓어올랐고, 밤새 헛소리를 했다. 마법력이 없는 오빠였기에, 치료할 방법은 어머니의 마법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별채에서 나오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날 밤, 나는 몰래 별채를 빠져나와 오빠 방으로 마법을 쓰러 갔다. 복도는 어두웠고, 발걸음 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어떻게 될지,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서투른 치유 마법이었지만, 오빠의 열은 내려갔다. 오빠가 편안하게 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마법력을 가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다음 날 바로 깨달았다. 그 다음 날, 아버지가 처음으로 나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혐오. 그리고 두려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아니 벌레보다도 못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 아이를 데려가."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명령했다. 목소리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날 밤, 낯선 사람들이 나를 마차에 태웠다. 손목이 묶였고, 입에는 재갈이 물렸다. 저항할 힘도, 소리칠 힘도 없었다. 마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별채의 불빛을 마지막으로 본 게, 그게 마지막이었다. 육 년. 그 육 년 동안 나는 어두운 지하실과, 낡은 창고와, 이름 없는 감방들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곰팡이 냄새와, 습기와, 배고픔이 일상이 되었다. 박기수라는 남자가 나를 관리했다. 한서린이라는 여자의 명령을 받는 하수인이었다. 그는 매번 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나 밥그릇을 던지듯 넣어주고 사라졌다. "이 아이는 그냥 죽이는 게 나아요, 마님. 마력 흔적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열 살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저 무서웠다. 그리고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나는 매번 그 말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이. 죽는 게 오히려 나은 아이.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으면, 결국 그 말을 스스로 믿게 된다. 나는 그렇게 육 년을 버텼다. 왜 살아남았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저 어느 날, 태호 공작가에서 사람이 왔고, 그들이 나를 구출했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태민도, 태호 공작도, 아무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데려간 뒤, 서인호 공작에게는 딸이 이미 죽었다는 통보만 갔다. 서지율은 죽었다. 그리고 강소율이 태어났다. 새벽, 침대에 누워 그 기억을 다시 되짚다가 나는 조용히 이불을 끌어당겼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들어 방 안을 희미하게 비췄다. 마법력. 모든 불행의 시작이자 근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이 힘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청하 공작가의 장녀로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다과회를 열고, 예쁜 드레스를 고르며 웃고,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게 받으며 살고 있었을지도. 아니, 어쩌면 아니었을지도. 어머니도 결국 이 힘 때문에 별채에 갇혀 지냈고, 사 년 전 조용히 세상을 떠났으니까. 마법력이 있으면 혐오받고, 마법력이 있으면 갇히고, 마법력이 있으면 죽는다. 이 세계는 그런 곱씹을 가치도 없는 논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조용히 숨을 골랐다. 심장이 아직도 이렘 교수의 그 눈빛을 기억하고 있는 듯 두근거렸다. 신분 회복이니, 복수니, 그런 건 나에게 사치였다. 그저 살아있는 것.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이렘 교수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마법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우호적이라는, 그 말이. 혹시 교수는 알고 있는 걸까. 내가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큰 것인지. 아니, 그럴 리 없다. 알 리가 없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창밖에서 스치는 바람 소리에도 몸이 움찔거렸다. 이 학교 안에서, 나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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