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형벌 이후 사흘 만에 등의 상처는 거의 사라졌다.
거울이 없어서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손으로 더듬어보면 매끈했다. 채찍이 지나간 자리마다 남았던 열감도, 진물이 흐르던 감촉도 없었다. 그냥 원래 그런 살이었던 것처럼.
집행관들은 그걸 못 본 척했다.
아니, 정확히는 못 본 척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회복실을 관리하는 간호병조차 내 등을 살필 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서류에 뭔가를 적을 때도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
'이례적인 회복 속도. 그런 걸 기록해봤자 자기들한테 좋을 게 없다는 거겠지.'
나는 회복이 끝나자마자 특별행동대 훈련장으로 이동됐다.
제국 서부, 낭아군단 소속 병영이었다. 이송용 마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익숙한 최전선 풍경과는 확실히 달랐다. 성벽처럼 두른 목책이 시야 끝까지 이어졌고, 그 안쪽으로 훈련장이 여러 개 배치돼 있었다. 흙바닥은 잘 다져져 있었고, 훈련용 무기들이 벽면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그중 가장 넓은 곳이 특별행동대 신참들을 위한 장소로 지정돼 있었다.
입구에서 나를 맞은 건 낭아군단 통령, 구현석이었다.
키가 크고,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흉터가 있는 남자였다. 흉터는 오래된 것이었지만 여전히 선명한 붉은 실선을 그리고 있었다. 갑옷 대신 간단한 훈련복을 걸치고 있었는데도 어깨선의 근육이 갑옷 위로도 드러날 것 같았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병사를 보는 눈이 아니라, 뭔가를 감정하는 눈이었다. 가축시장에서 가축의 이빨을 살피는 눈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양지호."
"예."
이름을 부르는 방식부터 위압적이었다. 계급도, 존칭도 없이 그냥 이름 석 자였다.
"1년을 버텼다고 들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구현석이 짧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나오는 반응 같았다.
"운으로는 1년을 못 버텨."
그는 더 묻지 않고 나를 훈련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뒤통수에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걸어가는 동안 그가 계속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감정하는 눈이라고 했지. 저 사람 눈엔 내가 뭘로 보일까.'
훈련장 안에는 이미 스무 명 남짓한 신참들이 모여 있었다.
각 전선에서 뽑힌 후보들이었다. 체형도, 얼굴도 제각각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비슷했다. 다들 서로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여기서도 서열이 곧 생사를 가른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누군가는 벽에 등을 붙인 채 주변을 훑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무리도 있었지만 목소리가 낮았다. 서로 정보를 캐는 느낌이었다.
박노식은 이번 선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나이가 걸림이 됐을 거였다. 홍서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원래 부대로 돌려보내졌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을 때, 박노식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죽지 마라, 새끼야.'
그 말이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낯익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여준혁.
다른 최전선 부대에서 온 병사였는데, 예전에 잠깐 같은 정찰조에 있었던 인연이 있었다. 헤벌쭉 웃는 얼굴로 나를 알아봤다.
"어, 너! 살아 있었냐?"
"너도."
"당연하지, 내가 죽을 상은 아니잖냐."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낙천적인 성격은 여전했다. 주변 신참들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저 웃음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근데 너 여기 어떻게 왔어? 정찰조에서 갈린 지가 언젠데."
"그냥 살다 보니."
"살다 보니, 라니. 참 대단한 표현이다."
여준혁이 낄낄거렸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 웃음이 얼마나 오래갈까 싶었지만.
첫날 훈련은 간단했다.
짝을 지어 목검으로 대련하는 것.
교관 하나가 규칙을 짧게 설명했다. 순서대로 짝을 정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실전처럼 붙는다는 내용이었다. 부상은 알아서 감당하라는 말이 덧붙었다.
문제는 짝을 정하는 순서에서 벌어졌다.
한 남자가 억지로 순서를 무시하고 여준혁 앞에 섰다.
체구가 크고, 목에 흉터가 여러 개 있는 자였다. 흉터의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베인 상처, 찢긴 상처, 화상 자국까지. 저 몸이 겪은 시간이 어땠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네가 나랑 하자."
"어, 나 원래 저 사람이랑 정했는데……"
여준혁이 나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바꿔."
말투에 위협이 섞여 있었다. 낮고 짧은 한마디였는데도 훈련장 공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다른 신참들이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시선을 끌었다가 다음 표적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구현석은 훈련장 한쪽 단상에서 그 광경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이런 충돌을 유도한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그 남자와 여준혁, 그리고 나를 오가고 있었다.
'첫날부터 서열을 정리하겠다는 거군.'
나는 그 상황을 빠르게 계산했다.
'끼어들면 나도 표적이 된다. 안 끼어들면 여준혁이 저 자한테 갈리겠지. 어느 쪽이 낫나.'
답이 나오기도 전에,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다시 봤다.
그리고 그때, 그 남자도 나를 봤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훈련장의 소음이 갑자기 아득해졌다. 다른 신참들의 숨소리,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 교관의 목소리까지 전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멀어졌다.
한쪽 눈에, 그가 검은 안대를 하고 있었다.
가죽으로 된 안대였다. 낡고, 오래 사용한 흔적이 있는.
나머지 한쪽 눈이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눈동자 색이 예전보다 더 짙어진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내 기억이 흐려진 걸지도.
가슴 안쪽에서 뭔가가 덜컥 내려앉았다.
"……양지호."
낮고 거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강철수였다.
목소리가 예전보다 더 낮아졌다. 아니, 낮아진 게 아니라 갈라진 것 같았다. 오랫동안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침묵했던 사람의 목소리처럼.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게 왜 여기 있어.'
'죽었다고 들었는데.'
'아니, 정확히는 들은 게 없었지. 그냥 소문만 있었지.'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뒤엉켰다. 그 사이로 강철수의 남은 한쪽 눈이 계속 나를 향해 있었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반가움인지, 원망인지, 그저 확인인지.
훈련장 안의 시선이 서서히 우리 둘에게로 몰리기 시작했다.
여준혁도 상황을 눈치챈 듯 나와 강철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입을 벌린 채로.
구현석의 시선도 그제야 흥미로워졌다. 팔짱을 낀 채로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훈련장 안의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