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선발 시험은 사흘 뒤였다.
장소는 명치 마을에서 하루 거리에 있는 훈련 계곡이었다. 후보로 뽑힌 자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각 부대에서 하나씩, 많아야 셋씩. 나도 그중 하나였다.
다들 눈빛이 날 서 있었다. 이유는 뻔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다시 최전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이번엔 살아 돌아올 확률이 더 낮아질 거였다. 다들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보는 눈에도 경계가 섞여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 굳이 눈을 맞추지 않았다. 누구든 적이 될 수 있었고, 누구든 발판이 될 수 있었다.
시험은 단순했다.
계곡 안에 풀어놓은 마수를 상대로, 정해진 구간까지 살아서 통과하면 되는 것.
다만 마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계곡 초입에서부터 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색 가죽에 뒤덮인 늑대형 마수 세 마리가 바위 뒤에서 튀어나왔다. 눈이 붉었고, 이빨 사이로 침이 지지직 끓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침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흙이 옅게 녹아내렸다.
같은 조에 배정된 낯선 병사 하나가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병사가 그를 밀치며 앞으로 나갔다.
밀린 병사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눈이 마주쳤다. 뭔가 도와달라는 눈빛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 없어.'
'셋 다 상대할 수는 없다. 하나를 줘야 나머지를 벤다.'
계산은 빨랐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뒤로 밀린 병사의 어깨를 붙잡고, 마수의 진행 경로 앞으로 그를 살짝 틀어 세웠다.
마수의 이빨이 그의 옆구리를 뚫었다.
젖은 소리가 났다. 살이 찢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계곡의 다른 어떤 소음보다 크게 귓속에 박혔다.
그 틈에 내가 검을 뽑아 마수의 목을 갈랐다.
피가 튀었다. 뜨거운 피였다. 얼굴에 튄 것을 닦을 여유도 없었다.
병사는 그대로 쓰러졌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남은 두 마리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나는 몸을 낮췄다. 첫 번째 마수의 다리를 베어 균형을 무너뜨리고, 쓰러지는 순간 목을 그었다. 두 번째는 뛰어오르는 궤적을 그대로 받아치듯 검을 세웠다. 마수의 무게가 검날에 실리며 목뼈가 부러지는 감각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시간은 채 십 초가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다른 후보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뭔가를 봤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중 몇몇은 슬쩍 물러섰다. 나와 같은 조가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을 거다.
계곡 끝, 시험을 지켜보던 감독관 하나가 뭔가를 기록하는 게 보였다. 펜이 종이 위를 빠르게 오갔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다음 구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 쓰러진 병사 쪽은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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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난 밤, 나는 배정된 임시 야영지 한구석에 혼자 앉았다.
불빛이 멀리서 흔들렸다. 다른 후보들은 삼삼오오 모여 낮의 시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쪽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피리를 꺼냈다.
낮에 있었던 일이 자꾸 머릿속을 스쳤다. 병사의 옆구리에 이빨이 박히는 소리. 그 소리가 마수의 울음소리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죄책감이냐.'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 그런 거였으면 진작에 죽었어야지.'
'몇 명이나 밀어냈더라. 이제 와서 셀 필요도 없나.'
생각이 자꾸 그쪽으로 흘러갔다. 밀어냈던 얼굴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이름들.
피리를 입에 물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소리를 냈다. 처음엔 조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곡조가 점점 격해졌다. 내 손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게 부는 것처럼, 소리가 점점 커지고, 떨렸다.
낮에 눌러뒀던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바람이 없는데도 주변 나뭇잎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손끝이 저릿했다.
그 소리가 정확히 어디까지 퍼졌는지, 나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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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었다.
나무 뒤, 그늘 속에 서 있던 그림자 하나. 은빛 갑주 위에 걸친 붉은 장미 문양의 망토. 긴 흑발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고, 눈동자는 짙은 자색이었다.
서한별. 창월제국 3공주. 장미 기사단의 단장.
낮의 시험을 감독하러 왔다가, 우연히 이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가 거기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눈치챘을 때는 이미 소리를 멈춘 뒤였다. 그림자가 움직였다는 걸 느낀 순간, 곡조는 이미 끝나 있었다.
'누구지.'
돌아봤지만, 그늘 속엔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결과 발표 자리에서 그녀가 나를 정면으로 마주 봤다.
발표장은 조용했다. 후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감독관들이 명단을 하나씩 부르고 있었다. 내 이름이 불리기 전, 서한별이 먼저 걸어 나왔다.
"양지호."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낮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나."
"압니다."
"동료를 방패로 썼다."
"살아남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녀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방법이 아니라 냉혹함이었겠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변 후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쏟아졌다. 누군가는 고소하다는 표정이었고, 누군가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근위병들이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50군 채찜질."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근위병의 손이 내 팔을 세게 눌렀다.
"공주 전하, 저 자는 시험을 통과한 후보입니다."
소월이라는, 그녀의 친위대원인 듯한 여자가 조심스레 나섰다. 목소리에 조심스러운 떨림이 섞여 있었다.
"통과했다고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서한별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딱 한 번, 내 얼굴이 아니라 내 손에 든 피리 쪼가리를 향했다.
짧았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시간보다도 짧았다.
그 짧은 순간이 나는 이상하게 걸렸다.
그녀가 눈치챈 걸까. 어젯밤의 그 소리가 나였다는 걸.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선만은 분명히, 내 얼굴이 아니라 내 손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