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내 별은 꺼지지 않는다

5화

체육대회를 일주일 앞둔 아침, 나는 운동장 스탠드 밑에서 계주 배턴을 손에 쥐고 있었다. 배턴은 파란색 플라스틱이었고, 손잡이 부분이 오래 써서 반질반질했다. 2학년 1반 담임 문세영 선생님이 명단을 든 채 우리를 줄 세웠다. 선생님 손에 들린 종이에는 볼펜으로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도윤, 넷째 주자." 선생님이 말했다.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박준서는 내 옆에서 팔을 붕붕 돌리며 웃고 있었다. 체육복 소매를 걷어붙인 채였고, 운동화 끈이 한쪽만 풀려 있었다. "나는 첫째 주자야. 제일 빠른 애가 첫째래." 박준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잘됐다." 나는 배턴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손끝이 저릿한 느낌은 없었다. 그냥 평범한 아침이었다.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 몇 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는 연습을 했다. 트랙 위에는 흰색 페인트로 그은 레인 선이 아직 선명했다. 연습이 끝나고 물을 마시러 수돗가로 가는데, 박준서가 뒤에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걸 봤다. 5학년 쪽 스탠드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 몇 명이 박준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박준서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수돗가 물은 미지근했고, 나는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얼굴에 끼얹었다. "쟤네 누구야?" 내가 물었다. "어... 그냥, 급식실에서 몇 번 봤어." 박준서가 대답했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5학년은 5학년이고, 2학년은 2학년이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박준서는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나는 그게 계주 순서 때문에 긴장한 거라고 생각했다. 체육대회 당일, 아침 공기는 가을 초입답게 선선했다. 운동장에는 학년별 만국기가 걸려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만국기는 색이 조금 바래 있었고,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2학년은 본부석 왼쪽 줄에 앉았고, 5학년은 오른쪽 끝 줄에 자리했다. 내 옆자리에는 한서연이 앉았고, 그 옆에는 유하린이 앉았다. 두 사람 다 목에 학년 표시 리본을 매고 있었다. 개회식이 끝나자마자, 5학년 남자아이들 한 무리가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숫자였다. 맨 앞에 강태호가 있었다. 방학 전보다 어깨가 두 배는 넓어 보였고, 새 나이키 운동화가 햇빛에 반짝였다. 운동화는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신상 모델이었고, 밑창이 아직 깨끗했다. 걸음걸이가 예전과 달랐다. 어깨를 좌우로 크게 흔들며 걸었다. 선생님들 몇 명이 그 무리를 흘긋거렸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저게 5학년 반장이래." 옆에 있던 유하린이 속삭였다. "애들 스무 명을 몰고 다닌다던데." 한서연이 덧붙였다. "진짜 스무 명이나?" 내가 되물었다. "응, 급식실에서도 지나가면 다 비켜준대." 유하린이 말했다. 나는 강태호 쪽을 잠깐 쳐다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먼 학년 일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강태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알아보는 듯 잠깐 멈춰 섰다가, 이내 씩 웃으며 무리를 이끌고 우리 쪽 트랙 근처로 다가왔다. 무리가 가까워질수록 발소리가 커졌고, 아이들 몇몇이 자리에서 슬금슬금 물러났다. "어이, 2학년." 강태호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 그때 화단에서 물뿌리개 든 애 아니냐?" 강태호가 물었다. "...맞아." 내가 말했다. "많이 컸네." 강태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봤자 여전히 꼬맹이지만!" 주변에 있던 5학년 무리가 낄낄거렸다. 한 명이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음소리를 더했다. 나는 손끝이 살짝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때 박준서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도윤아, 우리 자리로 가자." 박준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뒤돌아보니, 강태호 무리 중 한 명이 박준서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였다. 박준서는 그걸 못 본 척했지만, 입가에 짧게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오전 경기가 시작됐다. 2학년은 줄다리기부터였다. 굵은 마 로프가 운동장 한가운데 깔렸고, 심판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섰다. 우리 반은 3반을 상대로 이겼고, 다음 상대는 4반이었다. "영차, 영차!" 아이들이 소리쳤다. 나는 맨 뒤에서 줄을 당겼다.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로프의 거친 표면이 손바닥 살을 긁는 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 반이 승리했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한서연과 유하린이 나에게 달려와 양옆에서 팔짱을 꼈다. "도윤이 덕분이야!" 한서연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진짜 잘했어." 유하린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손바닥에 남은 붉은 자국을 슬쩍 문질렀다. 박준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통을 마시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는 걸,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물통 뚜껑을 닫는 손짓이 평소보다 느렸고, 시선은 자꾸 5학년 텐트 쪽을 향했다. 다음 경기는 이인삼각이었고, 나는 참가하지 않아서 스탠드에 앉아 구경했다. 햇빛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5학년 텐트 근처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강태호가 어딘가에서 가져온 아이스크림을 무리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편의점 봉지에서 하나씩 꺼내는 모습이 보였고, 포장지 색깔이 알록달록했다. 그리고 그 무리 가장자리에, 박준서가 서 있었다. 박준서 손에도 아이스크림 막대가 하나 들려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급식실에서 몇 번 봤다고 했으니까, 그냥 인사만 하는 거겠지.'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며 그렇게 생각했다. 멀리서 박준서가 강태호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각도가, 인사라고 하기엔 조금 지나치게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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