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안 보여서 안전합니다

1화

마탑의 최하층에는 빛이 들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빛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구분이 나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대신 나에게는 손끝이 있었다. 손끝으로 만지면 마도구의 결함이 보였다. 마력 회로가 어디서 끊어졌는지, 어느 부분의 접합이 헐거운지, 나는 그것을 감각으로 읽어냈다. 최하층 공방은 늘 서늘했다.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발끝을 타고 무릎까지 스몄고, 벽을 짚으면 오래된 석재 특유의 축축한 감촉이 손바닥에 남았다. 나는 그 냉기와 감촉을 오히려 좋아했다. 시야가 없는 대신 나는 온도와 질감으로 공간을 그렸다. 이 공방의 구조는 이미 내 손끝 안에 지도처럼 새겨져 있었다. 마탑 사람들은 나를 '뇌조'라고 불렀다. 천둥새라는 뜻이었다. 탑주인 묵현 님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원래 이름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신부님도, 나를 거둔 마탑의 어른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저 뇌조로 살았고, 견습 마도구사로 최하층 공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날도 나는 손끝으로 낡은 조명구를 만지고 있었다. 마력석의 균열이 손끝에 걸렸다. 나는 그 틈으로 흘러나오는 마력의 흐름을 따라가며, 어디서 새는지 짐작했다. 조명구 안쪽, 마력 회로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부분이었다. 손끝을 더 깊이 밀어넣자 마력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마치 실 끝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처럼, 그 부분만 유독 예민하게 울렸다. 나는 그곳에 은사를 덧대었다. 실을 감는 손끝의 움직임은 이제 거의 반사적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온 작업이라 손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 정확한 위치를 짚어내는 일은, 눈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사실 나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른 견습생들이 시야로 회로도를 훑고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을, 나는 손끝으로 몇 배는 더 천천히, 그러나 더 정확하게 읽어냈다. "또 그러고 있었어?" 공방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상급 마법약사 우진이었다. 발걸음이 무거운 걸 보면 청린초 화분을 몇 개 더 들고 온 모양이었다. 화분이 부딪치는 소리, 그 사이로 섞여드는 흙냄새와 풀 비린내가 공방 안에 훅 퍼졌다. "손이 노는 게 싫어서요." 나는 대답하며 조명구를 내려놓았다. 우진이 화분을 내려놓는 소리, 흙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화분을 옮기는 동선은 늘 일정해서, 나는 그가 몇 걸음을 걸어 어디에 화분을 두는지 소리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넌 진짜 쉬는 법을 모르는구나." "우진 님도 쉬러 오신 거 아니잖아요." "어이구, 말은 잘해." 우진이 웃었다. 그가 웃을 때는 목젖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좋아했다. 우진은 마탑 안에서 나에게 유독 친절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늘 내게 말을 걸 때 시선을 낮추고 몸을 살짝 기울였는데, 나는 그 습관을 알아챈 적이 있었다. 눈이 안 보이는 나를 위해서 목소리의 방향을 더 정확히 맞춰주려는 배려였다. "위에서 또 시끄러워. 신의 강림 조짐이라나." 나는 손끝을 멈추었다. "신의 강림이요?" "몰라,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거야. 요 며칠 하늘이 이상하다고들 하더라고. 밤마다 구름이 이상한 색으로 물든다나. 사제들도 뭔가 불안한 눈치던데." "이상한 색이라니, 어떤 색이요?" "자색이라던가, 아니면 핏빛이라던가. 보는 사람마다 말이 다 달라서 나도 뭐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어." 마탑에서는 이런 소문이 자주 돌았다. 대부분은 며칠 지나면 사라지는 뜬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우진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는 평소라면 소문을 웃음거리로 넘기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뇌조 너는 신경 쓰지 마. 그냥 조명구나 잘 고쳐."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아까보다 조금 짧았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나가고 나서, 나는 다시 조명구를 들었다. 손끝에 익숙한 팔찌가 걸렸다. 오른쪽 손목에 늘 차고 있는, 파손된 격납형 마도구였다.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신부님이 그렇게만 알려주었다. 팔찌는 오래전부터 마력이 통하지 않았다.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손끝으로 더듬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이나 그 문양을 따라 그려보려 했지만, 손끝이 기억하는 것은 그저 불규칙하게 얽힌 홈들뿐이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는 얼굴을 모른다.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신부님은 내가 아주 어릴 때 이곳으로 맡겨졌다고 했다.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다. 묻고 또 물어도 신부님은 그때마다 화제를 돌렸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 질문을 아예 그만두었다. 대신 손목의 팔찌를 만지는 것으로, 묻지 못한 질문들을 대신했다. 그날 오후, 마탑 상층부에서 종이 울렸다. 평소와 다른 울림이었다. 짧고 급박하게 세 번, 그리고 정지. 나는 그것이 비상을 알리는 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견습생이 된 이후로 딱 한 번 들어본 소리였다. 그때는 하급 견습생 하나가 마도구 폭주로 다쳤을 때였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종소리가 더 길고, 더 격렬했다. 공방 안의 다른 견습생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 도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누군가 뛰어나가는 발소리. "하늘이 이상해!" 밖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조명구를 내려놓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대기가 이상하게 무거워졌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습기가 짙어지고, 공기 중에 타는 듯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는 마치 오래된 마력석을 태울 때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다만 그보다 훨씬 짙고, 훨씬 컸다. 먼 곳에서,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쿠구구. 건물 전체가 진동했다. 나는 벽을 짚었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의 파형이, 평범한 지진이나 폭발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력의 파동이었다. 그것도 내가 지금까지 느껴본 것 중 가장 거대한 파동이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 저편에서 천천히 눈을 뜨는 것 같은, 그런 파동이었다. '이건, 뭐지.' 나는 벽에 손을 댄 채로 숨을 죽였다. 파동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진동의 간격이 짧아질수록, 내 심장도 그만큼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탑 전체가 새하얀 빛에 잠기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지지직. 번개였다. 낙뢰가 마탑에 떨어졌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