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며칠이 지나고 하나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무렵, 서연은 오두막 뒤편의 손바닥만 한 땅을 갈아 작은 텃밭을 일구었다. 아침마다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흙을 손끝으로 파헤치고, 그 위에 콩 씨앗을 심고, 마을에서 얻어온 소금을 아껴가며 항아리에 장을 담기 시작했는데, 이는 왕실의 눈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힘을 조금씩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발효 마법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흔한 힘이 아니었다. 사용자의 감정과 손끝의 결이 그대로 발효물의 성질에 스며들어, 같은 재료로도 전혀 다른 맛과 기운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특징이었는데, 그렇기에 왕실은 오래전부터 이 힘을 가진 이들을 경계하고 감시해왔고, 서연 역시 그 시선을 피해 이 외딴 오두막까지 흘러들어온 처지였다.
"이게 뭐예요?"
하나가 항아리 앞에 쪼그려 앉아 콩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물었을 때, 서연은 살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이건 장이라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훨씬 맛있어져."
"얼마나 기다려야 해요?"
"글쎄……,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할걸."
하나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매일같이 항아리 옆에 앉아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맨발로 뛰어나가 항아리 뚜껑을 슬쩍 열어보고, 냄새가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며 서연을 불러 세우는 것이 하나의 하루 일과가 되어 있었는데,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서연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떤 온기가 자신의 안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정성껏 만드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데워줄 수 있다는 것을, 서연은 궁을 떠난 이후로 처음 다시 배우고 있는 셈이었다.
어느 날 저녁, 서연은 남은 콩과 채소로 된장국을 끓였다. 그날은 유독 하나가 낮 동안 마을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아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참이었는데, 서연이 물을 길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아이들 몇이 하나를 향해 "부모도 없는 애"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지나가는 것을 언뜻 보았고, 그 말에 하나가 아무 대꾸도 못 한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뒷모습이 서연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서연은 국을 끓이는 손끝에 평소보다 더 깊은 정성을 담고 있었는데, 도마 위에서 채소를 써는 소리마저 오늘따라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탁, 탁, 탁—
칼끝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오두막 안에 낮게 울렸고, 그 소리를 들으며 하나는 방 한쪽 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아무 말 없이 서연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국이 끓는 동안 서연의 손끝에서 퍼져나간 미생물의 결은, 그녀 자신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듯 유독 부드럽고 진한 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는 발효 마법이 사용자의 감정에 따라 그 결과물의 성질을 달라지게 만든다는 것을, 서연이 오랜만에 다시 체감하는 순간이었는데, 걱정과 애틋함이 뒤섞인 마음이 국물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평소보다 훨씬 깊고 다정한 맛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자, 먹어봐."
서연이 그릇을 내밀자, 하나는 처음엔 시무룩한 얼굴로 숟가락을 들었다가, 한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 눈이 커다랗게 떠졌고, 그 표정의 변화를 지켜보던 서연의 심장이 이유 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되게 따뜻해요."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국을 한 숟갈 더 떠먹었다. 그 순간 아이의 작은 손끝이 그릇 가장자리에 남은 국물의 결을 무심코 어루만졌는데, 놀랍게도 그 결이 아이의 손끝에서 미세하게 반응하며 부드러운 빛을 냈다.
"어……?"
하나가 그 빛을 보고 놀라 손을 떼려는 순간, 서연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고, '설마 이 아이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보다 먼저 걱정된 것은 자신의 힘이 들켰다는 사실이었다. 여기까지 도망쳐 와서 겨우 숨죽이며 살아온 시간이, 이 작은 실수 하나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저, 그건……."
서연이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찾으려는 순간, 하나는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서연을 올려다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순수한 놀라움과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언니, 마법사예요?"
그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서연의 가슴이 세게 내려앉았고,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표정에는 조금의 경멸도 두려움도 없었고, 오히려 신기한 것을 발견한 아이 특유의 순수한 기쁨만이 가득했는데, 그 눈빛이 오히려 서연을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힘을 알아챈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뒷걸음질을 쳤었는데, 이 아이는 어째서……
'들켰어…….'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서연은 반사적으로 도망치듯 부정하려 했지만, 하나의 다음 말이 그녀의 그런 마음을 완전히 멈춰 세웠다.
"저도 알아요. 그런 사람들, 저희 마을에도 있었어요."
그 말에 서연은 순간 숨을 삼켰다. '우리 마을'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정보가, 이 아이가 단순히 길을 잃고 헤매다 온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배경을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부모를 잃고 떠돌다 흘러온 고아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마을에 발효 마법을 쓰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지냈어? 다들 괜찮았어?"
조심스레 이어 묻는 서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나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서연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어느 날부터……, 안 보였어요."
그 대답에 서연의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안 보였다'는 말이 품고 있을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어지럽게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하나야, 그 마을이……, 어디였는지 기억나?"
조심스레 묻는 서연의 질문에, 하나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내렸는데, 그 순간 아이의 표정에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간 그늘을, 서연은 놓치지 않았다.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렇게 말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서연은 그 떨림 속에서 이 아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거나, 혹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릇 속 국물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서연은 한참 동안 아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