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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심문의 여파는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선우 공작가의 문턱까지 밀려들었다. 아침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 저택 정문 앞에 검은 마차 한 대가 멈춰 섰고, 그 안에서 내린 조사관 두 명이 뻣뻣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공작도 아니고 안주인도 아닌, 붉은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메이드였다. "주인님은 외출 중이십니다." 백하린은 문 앞에 팔짱을 낀 채로 서서 조사관들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에는 예의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섞여 있지 않았는데, 마치 처음 보는 벌레를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조사관들은 그 태도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영애님은 저택 안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조사관 하나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뒤에 선 다른 조사관은 서류철을 품에 안은 채 저택의 정면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마치 앞으로 얼마나 뒤집어놓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채영 아가씨 말씀이시면, 지금 몸이 좋지 않으셔서 방문객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린의 어조는 흠 잡을 데 없이 정중했으나, 그 정중함 아래로 서늘한 칼날이 숨겨져 있는 것을 느낀 사람이라면 결코 편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사관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왕명을 받고 온 자들 앞에서 이렇게 태연히 문을 막아서는 하인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장선 조사관의 미간이 좁아지며 목소리에 위압감을 덧입혔다. "이는 왕실의 명령이오. 협조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영애께 돌아갈 것입니다." 하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순간의 표정은 마치 먹잇감의 위치를 가늠하는 뱀의 눈빛과 같았는데, 겉으로는 여전히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목소리 한 톤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녀는 문틀에서 손을 떼며 한 걸음 비켜섰다. "협조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드린 적이 없습니다." 하린이 문을 살짝 열어 조사관들을 안으로 들였다. "다만 순서를 지켜 주십사 부탁드리는 것뿐이지요. 이 저택에도 나름의 법도가 있으니까요." 그 말에 앞장선 조사관이 잠시 멈칫했으나, 더는 트집을 잡을 구실을 찾지 못한 듯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다. 대리석 복도를 지나는 그들의 구두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는데, 그 소리를 뒤따르는 하린의 발소리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마치 사냥감의 뒤를 밟는 짐승처럼, 그녀의 걸음에는 소리가 없었다. 조사관들이 응접실로 안내되어 자리에 앉는 동안, 하린은 뒤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 시선은 표면적으로는 시중을 드는 하녀의 것이었으나, 실은 침입자를 가늠하는 사냥꾼의 것에 가까웠다. 창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 위로 떨어져 마치 핏빛으로 물든 듯 보였는데, 그 빛깔이 그녀의 지금 심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래전, 왕도로 향하던 길 위에서 어린 하린은 인신매매단의 손에 붙잡혀 마차 짐칸에 짐짝처럼 실려 있었다. 사방이 어둡고 좁은 그 공간 안에서, 그녀는 밧줄에 묶인 손목의 통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것은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취급받는다는 감각이었다. 그때 우연히 그 길을 지나던 채영이 그녀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저택에서 정중한 척 문을 지키고 있는 이 여자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하린의 손목 안쪽에 희미한 흉터로 남아 있었다. 밧줄에 눌려 살갗이 짓이겨졌던 자리였는데, 그 흉터를 볼 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자들이 아직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곤 했다. 채영이 마차 문을 열어젖히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어린 하린은 겁에 질린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고, 채영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길에는 동정도 연민도 아닌,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듯한 태연함이 담겨 있었는데, 그 태연함이야말로 하린이 지금까지 채영을 따르는 이유였다. 그 세력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하린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우두머리가 귀족 사회의 그늘 아래 숨어 있다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었는데, 왕실의 조사관들이 저택을 들쑤시고 다니는 지금이야말로 그 뿌리의 끝자락을 엿볼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부인, 그러니까 메이드께서는." 조사관이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영애께서 그날 행동하신 이유에 대해 짐작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짐작이라니요." 하린이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은 순한 인상을 만들려는 노력의 결과였으나, 눈매까지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저는 그저 아가씨의 시중을 드는 사람일 뿐, 아가씨의 생각까지 헤아릴 재주는 없습니다." 조사관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으나 더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가 펜 끝으로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다음 질문을 고르는 사이, 옆에 앉은 다른 조사관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영애께서 평소 가까이 지내시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알고 계실 텐데요." "아가씨께서는 사람을 가려 만나지 않으십니다." 하린이 대답했다. "다만 저는 그중 누구의 이름도 함부로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공손했으나, 그 안에는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경고가 은근히 섞여 있었다. 대신 그는 서류를 뒤적이며 하린 자신에 관한 항목을 훑어보는 듯했다. "메이드께서는 원래 이 저택 출신이 아니시라고 들었는데." 그 질문에 하린의 턱 끝이 미세하게 조여지는 것을, 그녀 자신 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주인님께서 거두어 주신 은혜를 입었을 뿐입니다." 간결한 대답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간결하지 않았다. 하린에게 채영은 단순한 주인이 아니었다. 그날 자신을 짐짝처럼 다루던 자들에게서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존재였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왕실의 조사관 앞에서 거짓을 섞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세력이 다시 채영의 발밑을 노린다면, 자신이 먼저 그 목을 조를 것이다.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하린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서늘한 빛이 스쳤으나, 그것도 이내 평온한 무표정 뒤로 사라졌다. 그녀는 조사관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심장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얕은 물속에 몸을 숨긴 뱀이 수면 위로 지나가는 발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과 같은 침묵이었다. 조사관들의 질문은 한동안 더 이어졌으나, 대부분이 하린의 짧고 절제된 대답 앞에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서류를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저택 안을 몇 걸음 더 둘러보겠다고 청했으나 하린은 미리 준비해 둔 듯한 태연함으로 그들을 응접실 밖으로 이끌었다. "아가씨의 방까지는 곤란합니다."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몸이 좋지 않으신 분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은, 왕실의 명령이라도 예의가 아니지요." 조사관들이 별다른 소득 없이 저택을 떠난 뒤, 하린은 응접실 창가에 서서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마차 바퀴가 자갈길 위를 굴러가는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이내 완전한 정적만이 응접실을 가득 채웠다. 저 조사관들이 물어 온 이름들 중, 그녀가 오래도록 벼려온 원한의 대상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손끝이 저절로 문틀을 꽉 움켜쥐었다. "아가씨." 하린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 "이번 소란, 결코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이 향한 곳은 텅 빈 응접실이었으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채영이 벌인 이 작은 균열이 어쩌면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실마리를 끌어낼지도 모른다는, 냉정한 계산이었다. 창밖으로 완전히 사라진 마차의 잔영을 눈에 담으며, 하린은 손목의 흉터를 무의식적으로 매만졌다. 그 감촉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오래 잠들어 있던 뱀이 다시 눈을 뜨는 순간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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