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쿠웅.
다시 한 번,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도현은 벽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바닥 타일에 금이 가 있었다.
손바닥에 짚인 벽면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창문이 없는 방이라 밖을 볼 수 없었지만, 진동의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쿵. 쿵. 쿵.
간격이 줄어들수록 심장 박동도 따라 빨라졌다.
〈긴급 알림: 시설 인근에서 대형 개체가 감지되었습니다.〉
〈고객님, 신체 안전을 위해 즉시 대피 프로토콜을 실행해 주십시오.〉
도현은 헛웃음을 뱉었다.
"대피 프로토콜은 또 뭐야."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 있었다.
대답 대신 방문이 저절로 스르르 열렸다.
경첩 소리 하나 없이, 마치 처음부터 열려 있었던 것처럼.
밖은 좁은 복도였다.
형광등이 깜박이며 낮게 지지직 소리를 냈다.
복도 끝에서 사람들이 뛰어가는 발소리가 울렸다.
비명 소리도 섞여 있었다.
여자 목소리 하나가 길게 이어지다 뚝 끊겼다.
도현은 지팡이를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 끝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탁, 탁, 탁.
젖은 벽지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어딘가에서 타는 냄새도 섞여 들어왔다.
복도 모퉁이를 돌자 벽 한쪽이 무너져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이 바닥에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그 틈으로 거대한 앞발 하나가 밀고 들어와 있었다.
비늘로 덮인 그 발톱은 사람 몸통만큼 컸다.
발톱 끝에서 검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거다.'
도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를 삼켰던 그거야.'
숨이 목구멍에서 턱 걸렸다.
다리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발끝부터 무릎까지 차가운 마비가 기어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손에 쥔 지팡이가 덜덜 떨렸다.
그때, 등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뭐 해! 빨리 움직여!"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 하나가 도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손아귀 힘이 세서 팔이 뻐근하게 당겨졌다.
연구원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안경이 반쯤 깨져 있었다.
도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반대쪽으로 뛰었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마다 지팡이가 함께 튀어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복도를 빠져나오자 넓은 로비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이 절반쯤 뜯겨 나가 있었고, 그 틈으로 밤하늘이 보였다.
구름 사이로 달이 드문드문 비쳤다.
바람이 그 틈으로 훅 밀려들어와 얼굴을 스쳤다.
로비 한복판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정안회의 요원들이었다.
그들의 손엔 이상한 형태의 총과 마법 문양이 새겨진 방패가 들려 있었다.
방패 표면의 문양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지휘하는 듯한 남자가 소리쳤다.
"실험체 확보가 우선이다! 놓치면 안 돼!"
그 시선이 도현에게 정확히 꽂혔다.
'나를 말하는 거야.'
도현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연구원이 도현의 팔을 놓고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도움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용마도, 정안회도, 둘 다 그를 원하고 있었다.
어느 쪽에도 붙잡히면 안 될 것 같았다.
도현은 몸을 낮추고 로비 옆 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가는데, 손끝에서 다시 그 낯선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이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흘렀다.
다리에 힘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가벼워졌다.
숨이 덜 가빠졌다.
계단 위 문을 박차고 나가자 옥상이었다.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긴 백발이 바람에 날렸다.
피부에 소금기 같은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옥상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건물 앞마당에 그 거대한 존재가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용의 얼굴에 말의 몸통, 두 쌍의 거대한 날개.
그날 그를 삼켰던 그 용마였다.
달빛 아래 비늘이 검푸르게 번뜩였다.
날개가 한 번 펼쳐질 때마다 바람이 옥상까지 밀려왔다.
콧숨을 내뿜을 때마다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도현의 손끝이 다시 떨렸다.
'저것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싸울 수나 있나.'
〈경고: 대상 개체와의 전투력 격차가 극단적으로 높습니다.〉
〈전투를 회피하고 은신을 권장합니다.〉
시스템조차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로 도망치라는 건데."
도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알림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딱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사라졌다.
도현은 옥상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곳에도 이미 검은 옷의 요원 셋이 올라와 있었다.
장비가 삐걱대는 소리, 발걸음 소리가 옥상 바닥을 울렸다.
"실험체, 순순히 따라와."
앞장선 요원이 방패를 들며 다가섰다.
목소리에 억양이 없었다.
명령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절차를 읊는 것 같았다.
도현은 지팡이를 앞으로 세웠다.
손바닥에 다시 화끈한 열감이 올라왔다.
손가락 끝이 저려왔다.
'양쪽에 다 갇혔다.'
앞엔 요원들, 뒤엔 옥상 끝, 그리고 그 아래엔 용마.
숨이 가슴 속에서 얕게 끊어졌다.
발밑에서 건물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쿠웅.
균열이 옥상 바닥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요원 하나가 총구를 겨눴다.
철컥.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리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도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안내: 고객님의 생존 확률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씨발.
그 순간, 옥상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퍽.
요원의 몸이 그대로 튕겨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부딪혀 두어 바퀴 굴렀다.
남은 두 요원이 방패를 세우며 뒷걸음쳤다.
도현이 눈을 떴다.
검은 로리타풍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눈앞에 서 있었다.
긴 흑발이 앞머리를 가려 눈이 보이지 않았다.
드레스 자락이 바람에 흔들리며 옥상 난간 쪽으로 살짝 부풀었다.
허벅지에 매달린 여러 자루의 단검이 달빛에 번뜩였다.
소녀는 도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낮고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따, 따라와요. 지금 아니면 늦어요."
도현은 그 손을 붙잡을지, 말지 판단할 겨를조차 없었다.
등 뒤에서 요원들의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용마의 울음소리가 건물 아래에서부터 길게 울려 퍼졌다.
쿠오오오오.
그 소리에 옥상 바닥이 다시 진동했다.
소녀의 손끝이 여전히 도현을 향해 뻗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