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벽 여섯 시 반, 알람이 울렸다.
삐리리릭. 삐리리릭.
이도현은 손을 뻗어 휴대폰을 더듬었다.
액정 불빛이 어두운 방 안을 잠깐 밝혔다가 꺼졌다.
이불을 걷어차고 몸을 일으켰다.
목뒤가 뻐근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문제집을 붙잡고 있었던 탓이었다.
창밖은 아직 푸르스름했다.
해가 뜨기 전의, 그 애매한 색이었다.
도현은 눈을 몇 번 깜빡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바닥에 닿는 방바닥이 서늘했다.
세면대 앞에 서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거울을 봤다.
눈 밑이 거뭇했다.
'오늘도 죽었네.'
교복을 걸쳐 입고 방문을 열었다.
식탁 위엔 아버지 이성민이 차려둔 계란말이가 놓여 있었다.
노릇하게 부친 계란말이 위로 김이 아직 살짝 올라오고 있었다.
접시 옆엔 밥공기와 김치, 된장국이 나란했다.
"오빠, 늦었어."
여동생 이서은이 가방을 메고 현관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교복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초조하게 까딱거렸다.
"먼저 가."
도현이 짧게 대답했다.
숟가락을 들어 계란말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달큰하고 짭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서은은 입을 삐죽이며 문을 나섰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텅, 울렸다.
식탁 위 계란말이는 절반쯤 남아 있었다.
도현은 남은 계란말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늘도 야자에 학원까지.'
대학 입시가 넉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책상 위엔 이미 채워진 오답노트가 세 권째 쌓여 있었다.
수학 모의고사 점수가 이번에도 목표에 못 미쳤다.
도현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아버지는 이미 출근한 뒤였다.
식탁 위 메모지엔 짧은 문장 하나뿐이었다.
〈밥 챙겨 먹어.〉
늘 같은 필체, 늘 같은 문장이었다.
도현은 메모지를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는 이미 구겨진 메모지 몇 장이 더 있었다.
버리지 않고 계속 쌓아두는 이유는 스스로도 잘 몰랐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입김이 하얗게 퍼졌다가 흩어졌다.
가로등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십오 분 거리였다.
익숙한 골목, 익숙한 담벼락, 익숙한 전봇대.
매일 같은 풍경이 지나갔다.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도, 신문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도 그대로였다.
한빛고 3학년 3반, 그의 자리는 창가 두 번째였다.
책상 위엔 어제 풀다 만 수학 문제집이 그대로 펼쳐져 있을 것이었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가 될 거라 생각했다.
1교시는 국어, 2교시는 수학.
야자 시간엔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학원에서는 인강을 들을 것이었다.
그러다 밤 열두 시가 되면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갈 것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똑같이.
그때였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방금까지 푸르스름하던 하늘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구름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날개.
그것도 두 쌍의 거대한 날개였다.
가죽질의 날개막이 펄럭일 때마다 바람이 아래로 몰아쳤다.
비늘로 뒤덮인 몸통이 하늘을 통째로 가리고 있었다.
검은 비늘 사이사이로 희미한 붉은 광택이 어른거렸다.
주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누군가 손에 든 커피를 떨어뜨렸다.
컵이 바닥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도현의 다리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저게 뭐야.'
머릿속이 텅 비었다.
용의 형상을 한 것이 말의 몸통을 하고 있었다.
앞다리는 짧고 굽었으며, 뒷다리는 근육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턱은 사람 서넛을 한입에 삼킬 만큼 컸다.
이빨 사이로 침이 실처럼 늘어졌다.
몸높이만 봐도 십 미터가 넘어 보였다.
쿠웅.
앞발이 도로에 내려앉으며 아스팔트가 갈라졌다.
균열이 도현의 발밑까지 뻗어왔다.
발바닥으로 진동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현은 그제야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가방끈이 어깨를 파고들었지만 벗을 생각조차 못 했다.
등 뒤에서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울렸다.
퍼덕, 퍼덕.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도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쿵쿵 울리는 게 느껴졌다.
'따라잡힌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넘어지고 밟혔다.
누군가의 비명이 귀를 찢었다.
한 아주머니가 발을 헛디뎌 도현의 옆으로 넘어졌다.
도현은 그녀를 일으켜줄 새도 없이 앞으로만 달렸다.
'미안합니다.'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발밑에서 뭔가 밟혔다는 감각이 스쳤지만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도현은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좁은 담벼락 사이로 몸을 밀어넣듯 뛰어들었다.
벽에 어깨가 부딪혀 통증이 번졌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나 골목 끝은 막다른 벽이었다.
콘크리트 담벼락, 그 위로 뻗은 녹슨 철조망.
도현은 손톱으로 벽을 긁었다.
손끝에서 피가 배어났지만 아무 감각도 없었다.
돌아섰을 때, 거대한 턱이 이미 그를 덮치고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이빨과 검붉은 입천장.
서걱, 이라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턱이 통째로 그를 삼켰다.
어둡고 뜨겁고 미끄러운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호흡이 끊겼다.
폐가 짓눌리는 느낌,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가, 검게 꺼졌다.
'아버지.'
마지막으로 떠오른 얼굴은 아버지의 등이었다.
출근길에 늘 보이던 그 굽은 등.
와이셔츠 안으로 드러나는 마른 어깨.
'서은아.'
여동생의 삐죽인 입술이 잠깐 스쳤다.
가방을 메고 발을 동동 구르던 그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도, 냄새도, 온기도 없었다.
도현의 의식은 그렇게 완전히 끊어졌다.
한빛고 3학년 3반 창가 두 번째 자리는 그날 이후 계속 비어 있었다.
책상 위엔 여전히 어제 풀다 만 수학 문제집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무도 그 문제집을 치우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출석부에 그의 이름 옆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이내 지웠다.
펜 끝이 종이 위를 몇 번이고 오갔지만, 결국 아무 표시도 남기지 못했다.
교실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그날 아침 뉴스를 봤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못 봤다고 했다.
정확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아침,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검은 차량을 타고 사건 현장을 훑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차량은 아무런 표식도 없이 조용히 도로를 지나갔다.
내려선 사람들은 짧게 무언가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그들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절도 있었고, 지나치게 조용했다.
경찰도 아니었고, 소방도 아니었다.
그들의 옷깃엔 작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정안회.
낡은 놋쇠 배지처럼 반짝이는 그 문장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작았다.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알게 될 필요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사건 현장에 남은 것은, 텅 빈 아스팔트의 균열과, 누군가의 신발 한 짝, 그리고 짓눌린 가방끈 하나뿐이었다.
가방 안에서 흘러나온 수학 문제집 한 장이 바람에 날려 골목 밖으로 굴러갔다.
아무도 그것을 주우러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