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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편의점 형광등이 유독 시끄럽게 웅웅거렸다. 야간 알바 세 시간째, 손님 하나 없던 매장에 갑자기 저 남자가 들어왔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정장 차림에, 이 시간에 삼각김밥을 고르는 손놀림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여기 출근하는 사람처럼. "뭘 갖고 있다는 거예요."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손이 떨리는 걸 감추려고 계산대 밑으로 손을 내렸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게 신경 썼는데, 그것도 실패했다. 갈라졌다. 남자가 명함을 하나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상승관리국 사업3팀 차승훈** 글씨체가 이상하게 반듯했다. 손으로 쓴 것도 아니고 인쇄한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엔가 있는 느낌. "상승관리국이요?" "들어본 적 없으실 거예요. 보통은 못 듣죠." 뒤통수 안쪽에서 책이 뭔가 반응했다. 목소리가 아니라 그냥 진동 같은 느낌이었다. '조심하라.' 짧게 한마디였다. 그 짧음이 더 무서웠다. 책은 원래 말이 많았다. 예의범절이 어떻고, 원숭이가 어떻고. 그런데 지금은 딱 한마디뿐이었다. 그게 제일 무서운 신호였다. "저는 그런 데랑 상관없는데요." "확률이 이상하게 좋으시더라고요, 도현씨." 남자가 삼각김밥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손끝으로 봉지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는데, 그 리듬이 일정했다. 계산된 여유였다. "최근 한 달, 도현씨 주변에서 일어난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이 세 건입니다. 강도 사건, 서류 반영, 시급 인상. 세 건 다 확률적으로 있을 수 없는 수치였어요." 식은땀이 흘렀다. 강도 사건은 나만 아는 일이었다. 그런데 저 남자가 그걸 알고 있었다. 강도 사건, 서류 반영, 시급 인상. 순서까지 정확했다.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남자가 명함을 도로 집어넣었다. 손목시계를 흘긋 보는 게, 시간을 확인하는 건지 그냥 습관인지 구분이 안 됐다. "거래를 하나 하시죠." "무슨 거래요." "저희 쪽에 자산 하나가 필요합니다. 위험도가 높은 물건이에요. 도현씨의 능력이면 가능할 것 같군요." 뒤통수가 이번엔 강하게 뜨거워졌다. '거절해라.' 책이 말했다. 이번엔 확실히 명령조였다. 평소라면 나도 코웃음 쳤을 거다. 원숭이 어쩌고 하면서 훈계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훈계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 차이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남자가 웃었다. "위험하죠. 그런데 보상은 확실합니다." "뭘 준다는 건데요." "도현씨 몸에 붙어 있는 그 물건, 조금 더 편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뒤통수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 남자가 책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그게 더 무서웠다. 물건이라니. 그 표현조차 책이 싫어할 게 뻔한데, 이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 '거절해라, 지금 당장.' 책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이런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원래 책은 여유가 넘쳤다. 하늘 위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로, 존댓말도 안 쓰고 항상 예스러운 어조로 나를 원숭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나는 여전히 시급 9,960원짜리 알바생이고 천이백만 원 대출이 남은 프리터일 뿐이다. 이 남자가 뭘 원하는지 모르지만, 정보와 힘을 준다면 그게 어떤 위험이든 지금보다 나쁠 수 있을까. 통장 잔고 팔만원. 다음 달 카드값 오십만원. 이자만 매달 오만원씩 빠져나가는 대출. 이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았다. 위험도 같은 추상적인 말보다 이 구체적인 숫자들이 훨씬 무거웠다. "뭘 해야 되는데요." "간단합니다. 이번 주 안에 어떤 물건 하나가 종로3가 인근 경매장에 나올 겁니다. 그 물건을 확보해주시면 됩니다." "경매요? 저 그럴 돈 없는데요." "돈은 필요 없습니다. 낙찰 확률만 조작해주시면 돼요. 이건 도현씨 능력에 딱 맞는 일이죠." 이해가 됐다. 이 사람은 내 능력을 도구로 쓰려는 거다. 그런데 이해가 됐다고 해서 안심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정확히 뭘 원하는지 알아버리니까,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지가 그제서야 실감났다. '저 인간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마라. 상승관리국이라는 이름은 나도 안다. 좋은 곳이 아니다.' "거기가 뭐 하는 데예요, 정확히."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의 균형을 관리하는 곳이라고 해두죠." 대답이 너무 뻥 같았다. 그런데 뭔가 진짜 같기도 했다. 균형이라는 말이 유독 걸렸다. 균형을 관리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 같은 사람 하나 조작해서 얻는 균형이 대체 어떤 종류의 균형인지. "보상은 그거 하나로 끝이에요?" "그리고 하나 더." 남자가 지갑에서 작은 카드 하나를 꺼냈다. 은색으로 빛나는, 신분증처럼 보이는 카드였다. 카드 표면에 아무 글자도 없었다. 그런데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뭔가 무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착시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됐다. "이걸 드리죠. 도현씨 몸속에 있는 그 힘, 지금은 그냥 뇌 회로를 태워가며 억지로 쓰는 수준일 겁니다. 이 카드를 접촉시키면 회로가 좀 더 넓어집니다." '받지 마라.' 책이 소리쳤다. 이번엔 진짜 다급했다. '원숭이, 내 말을 들어라. 지금 저 카드를 받으면 돌이킬 수 없다.' 목소리에 처음으로 존댓말 비슷한 절박함이 섞였다. 평소의 그 거만한 어조가 사라졌다. 하지만 손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카드를 받았다. 그 순간, 뒤통수 안쪽에서 뭔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게 아니라 아팠다. 진짜로 아팠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회로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 그리고 그 회로 끝이 뭔가에 강제로 접합되는 감각. 뒷목부터 정수리까지 전기가 지나가는 것처럼 저릿했다. "으윽." 계산대를 짚고 몸을 숙였다. 남자가 그런 나를 보고도 표정 하나 안 변했다. "통증은 잠시입니다. 며칠 내로 낙찰 소식 다시 연락드리죠." 남자가 삼각김밥 값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매장을 나갔다. 정확히 천오백원. 잔돈까지 딱 맞춰 낸 걸 보고, 이 남자는 원래 이 정도 물건도 잔돈으로 딱 맞춰 사는 성격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이없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계산대 앞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뒤통수 안쪽이 계속 진동했다. 마치 뭔가가 자리를 다시 잡는 느낌이었다. '이 멍청한 원숭이야.' 책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 정말로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놀리거나 훈계하거나 잔소리는 했지만, 이렇게 화를 낸 적은 없었다. "왜, 왜 화를 내요." 목소리가 떨렸다. 아직 뒤통수가 얼얼했다. '저 인간이 준 그 카드가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니까 물어보잖아요." '그 카드는 내 회로와 네 뇌 회로를 강제로 연결하는 접속키다. 지금까지는 내가 완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그 완충 장치가 사라진다.' 완충 장치. 그 단어가 유독 무겁게 들렸다. 지금까지 아팠던 것도 완충된 상태였다는 뜻이니까. "그게 무슨 뜻인데요." '네 뇌가 나와 직접 연결된다는 뜻이다. 대가가 커질수록 네 뇌가 직접 그 대가를 치른다는 뜻이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금까지 힘을 쓸 때마다 두통이 오고 코피가 났다. 그것도 완충된 결과였다면, 완충이 없는 상태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러면 왜 아까 말릴 때 말리고, 지금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주는 거예요."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제부터는 경고를 확실히 해두는 것뿐이다.' 뭔가 무섭게 들렸다. 나는 계산대에 손을 짚고 겨우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그럼 이거 다시 뺄 수는 없어요?" '이미 늦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편의점 안이 갑자기 너무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형광등 웅웅거리는 소리만 유독 크게 들렸다. '네가 선택한 것이다, 원숭이.' 그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창밖으로 그 남자의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이상하게 여유로웠다. 마치 원하는 걸 이미 다 얻은 사람처럼.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실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뒤통수 안쪽에서 다시 무언가 반응했다. 이번엔 진동이 아니었다. 낮고, 무겁고, 처음 듣는 종류의 울림이었다. '……원숭이야.' 책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 몸속에서, 지금 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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