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칠흑용왕이 짬뽕 봉투를 앞발로 들어 올렸다.
뚜껑이 열리자 김이 훅 올라왔고, 용왕의 콧구멍이 벌어졌다.
매운 향이 동굴 벽을 타고 퍼지는데, 그 냄새가 어이없게도 익숙한 편의점 라면 냄새랑 똑같았다.
"흠. 향이 제법이구나."
버스 두 대만한 몸집을 지닌 존재가 짬뽕 국물을 홀짝이는 모습은, 뭐랄까, 세상 규칙이 하나 어긋난 느낌이었다.
비늘 사이로 스며드는 매운 김이 올라올 때마다 용왕의 눈이 슬쩍 감겼다.
저거 완전 국물 맛있다는 표정인데.
"불닭짬뽕 하나요, 15,000원입니다."
"결제는 마쳤을 텐데."
"네, 확인했어요. 감사합니다."
존댓말로 인사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자식, 별점 3개 준 거 취소 안 해주나. 리뷰란에 "국물이 다 식었음"이라고 써놓은 게 아직도 눈에 밟혔다. 여기까지 오토바이로 30분, 그것도 던전 3층을 관통해서 왔는데 식을 틈이 어딨냐고.
용왕은 짬뽕을 다 비우고서야 나를 다시 봤다.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저러고 별점 3개라니, 위선자 새끼.
"흥미롭구나. 인간이 내 앞에서 그리 태연할 수 있다니."
"태연한 게 아니라, 그냥··· 안 죽는다는 걸 알아서요."
【적성률 -1000% 존재는 던전 판정 시스템 밖에 있습니다.】
용왕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갈라지면서 촛불처럼 흔들렸다.
"음의 적성률이라, 오랜만에 보는구나. 마지막으로 본 게 300년 전이었나."
"300년이요? 그럼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었어요?"
심장이 미묘하게 뛰었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동시에 그 사람이 어떤 꼴을 당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있었지. 그자는 나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다 세 번 죽었다가 세 번 살아났다. 재밌는 놀이었지."
오싹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게 재밌는 놀이라니, 취향이 상당히 험악하시네. 그 검사는 대체 무슨 정신으로 라스보스한테 칼질을 했을까. 나였으면 배달만 하고 바로 튀었을 텐데.
"제 경우엔 그냥 배달이니까 죽을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구나."
용왕이 스마트폰을 다시 꺼냈다. 커다란 발톱으로 화면을 톡톡 두드리는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래도 손가락, 아니 발가락 놀림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다음에도 시켜도 되겠느냐?"
"네? 아, 네, 뭐, 저희 앱에 등록만 되어 있으시면요."
"좋다. 앞으로 자주 부르겠다."
라스보스의 단골 손님 확보. 이걸 기뻐해야 하는지 무서워해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섰다. 시급으로 치면 이 콜 하나가 웬만한 던전 세 개 값이긴 한데, 그 대신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이야기가 또 달랐다.
아니 근데 나는 안 죽는다니까. 그럼 걸 게 없잖아. 완전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이네.
돌아가는 길은 신기하게도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이미 소문을 들은 건지, 슬쩍 나를 보고는 알아서 비켜줬다. 오크 무리 하나가 길을 막고 있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몸을 던지듯 피했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무릎까지 살짝 굽히는 듯한 자세를 취했는데, 저거 인사인가 아니면 겁먹은 건가 헷갈렸다.
고블린 두 마리는 아예 나를 보자마자 등을 돌리고 도망쳤다. 뒷모습이 어찌나 급했는지 짐을 하나 흘리고 가는 것도 못 챙기고 사라졌다.
이거 완전 VIP 취급이네. 근데 좋은 의미의 VIP는 아닌 것 같고.
* * *
조합에 배달 완료 보고를 하러 가는데, 접수처에 사람이 유독 많았다. 평소라면 창구 두어 개만 열려 있던 곳인데, 오늘은 네 개 다 열려 있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다들 나를 힐끔거리는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강대길 씨?"
낯선 정장 차림의 남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넥타이를 목까지 딱 조여 맨 스타일이 딱 봐도 공무원 냄새가 풀풀 났다.
"조합 특수조사팀입니다. 최심부 배달 이력이 조회되어서요."
뭔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심장이 쿵쿵거렸다. 세금 신고 안 한 것도 아니고, 무단횡단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거지.
"그 던전에서 대미지를 한 번도 안 입은 걸로 기록됐는데, 맞습니까?"
"···맞아요."
"장비 스캔 부탁드립니다."
스캐너에 몸을 통과시켰다. 삐이익, 하는 기계음이 두 번 울리더니 화면에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장비 등급: 없음. 스킬: 없음. 적성률: -1000%.】
조사관의 눈썹이 위로 솟았다. 그 표정이 어찌나 진지했는지, 나까지 덩달아 긴장이 됐다.
"이거 오류 아닙니까?"
"저도 그렇게 묻고 싶은데요."
조사관이 서류를 몇 장 넘기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한 번 슬쩍 둘러보는 게, 뭔가 아무나 들으면 안 되는 얘기를 하려는 눈치였다.
"강대길 씨, 이건 국가 보안 등급 정보인데요. 음의 적성률 보유자는 헌터청 특별 관리 대상입니다."
"관리요? 저 그냥 배달만 하는 대학생인데요."
"압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죠. 무등급 무장비 상태로 3등급 몬스터 밀집 구역을 무손상 통과한 사례가 없습니다. 이건 신고 대상입니다."
[감시 대상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대학생 강대길이 갑자기 국가 관리 대상이라니.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시급 만원짜리 배달 알바생이었는데.
"저 그냥 조용히 배달만 하고 싶은데···"
"조용히는 어렵겠습니다. 이미 최심부 던전 시스템 로그에 이례적 대미지 무효 기록이 올라갔습니다. 조합 상부에서도 관심 있어 하고요."
조사관이 명함을 건넸다. 명함 재질이 왜 이렇게 고급스러운지, 이런 데 세금 쓰라고 낸 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다.
"당분간 배달 콜은 저희 조에서 모니터링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명함에 적힌 부서명이 너무 무서워서 묻지 못했다.
헌터청 이상 존재 감시국.
글자를 보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거 완전 정부 기밀문서에 나오는 이름 같은데. 나 이제 감시당하는 거야? CCTV 몇 개가 나만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접수처 직원들이 슬쩍슬쩍 내 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저 사람들 눈에 나는 이미 뭔가 수상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토바이 시동을 걸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헬멧 속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씨, 나 그냥 배달만 하고 싶다니까."
휴대폰을 켜서 유설아의 채널로 들어갔다.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싶었다.
[오늘도 슬라임한테 졌습니다···ㅎㅎ 그래도 괜찮아요, 내일 또 도전할 거니까요!]
동시 시청자 9명. 후원 0원.
채팅창을 슬쩍 스크롤해봤다. "화이팅요", "다음엔 이길 거예요" 같은 응원 댓글이 몇 개 달려 있었다. 개수는 적어도 다들 진심으로 응원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화면을 보다가 픽 웃었다.
나는 최심부 라스보스한테 별점 테러당하고 국가 감시국 명함까지 받은 하루를 보냈는데, 이 사람은 슬라임한테 지고도 저렇게 웃는다.
뭔가 되게 부럽다.
나도 언젠가 저 채널에 후원 버튼 한 번 누르고 싶었다. 만원짜리 후원 하나 딱 쏴서 "화이팅요, 짬뽕 배달부입니다" 같은 문구 하나 남기는 거, 그거 꽤 로망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살아있어야겠고, 이 감시국이라는 데서 잘리지 않아야겠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토바이 핸들을 꽉 쥐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던배] 신규 콜이 도착했습니다.
목적지: 칠흑던전 최심부.
의뢰인: 칠흑용왕.
주문: 마라탕 매운맛, 곱빼기, 계란찜 추가.
나는 화면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재구매냐.
그것도 매운맛에 곱빼기, 계란찜까지. 완전 단골 코스네.
근데 이걸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감시국 명함이랑 같이 놓고 진지하게 걱정을 해야 하나.
헬멧 바이저를 다시 내리며 나는 오토바이 방향을 던전 쪽으로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