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용왕님, 배달 왔습니다

1화

새벽 세 시, 나는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스탠드 하나만 켜놓은 채, 이불 속에서 무릎을 세우고 휴대폰을 든 자세로 두 시간째 굳어 있었다. 목이 뻐근했지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만 더 강해지길 바라며, 유설아입니다!] 화면 속 그녀는 슬라임 몸통에 부딪혀 나뒹굴면서도 웃고 있었다. 무릎을 털며 일어나는 손짓이 어설펐다. 카메라 앵글도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조명은 형광등 하나가 전부인 듯, 화질도 그리 좋지 않았다. 동시 시청자 수 열두 명. 후원 금액 0원. 채팅창은 텅 비어 있었다. 가끔 봇이 남기는 광고성 인사말 몇 줄이 스크롤을 채웠다. ···이 방송, 왜 이렇게 사람이 없냐. 실력만 보면 명백히 하위권이었다. 몸놀림도 어설프고 스킬 판정도 늦었다. 슬라임 하나 잡는 데 삼십 초씩 걸리는 배달자를 누가 좋아하겠나. 그런데 나는 저 서투른 손짓 하나에 마음을 다 뺏겨버렸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만 사랑받으면 그게 무슨 재미인가. 넘어질 때마다 "아야, 아니 이건 예상 못 했는데요" 하며 웃는 저 목소리. 그게 문제였다. 심장이 이상하게 반응했다. 문제는 내 지갑이었다. 대학생 강대길, 20세. 통장 잔고는 3,200원. 후원금은커녕 다음 학기 등록금도 부모님 등골에서 뽑아낸 것이었다. 통장 앱을 열어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위장이 살짝 뒤틀렸다. 3,200원으로는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도 애매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돈을 벌자. 던전에서. 거창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유설아 방송에 만원 한 장 던져주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였다. 그게 이렇게 인생을 뒤흔들 결심이 될 줄은 몰랐지만. * * * 서울 곳곳에 게이트가 열린 지 벌써 12년째였다. 던전이라는 말은 이제 뉴스보다 배달 앱 알림에서 더 자주 들려왔다. 던전 안에서 사냥하는 사람들은 밥을 굶을 수 없었고, 그 틈을 파고든 게 '던전 배달자'라는 신종 직업이었다. 처음엔 그냥 배달이었다. 몬스터를 피해 도시락을 나르는 정도. 그런데 사람들이 그 장면을 재밌어했다. 위험한 배경 속에서 치킨 한 마리를 지켜내는 모습, 그게 은근히 짜릿했던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방송 플랫폼과 결합했고, 지금은 하나의 산업이 되어 있었다. 인기 배달자는 방송까지 겸했다. 몬스터를 뚫고 치킨을 배달하는 스릴, 시청자들은 그걸 보며 짜장면 곱빼기를 시켰다. 후원과 배달비가 동시에 들어오니 수익 구조도 나쁘지 않았다. 한아리라는 배달자는 그 바닥의 아이돌이었다. 적성률 89%, 동시 시청자 수 4만. 방송을 켤 때마다 후원 알림음이 끊이지 않았다. 몬스터를 슥슥 베어내는 손놀림이 무슨 액션 영화 같았다. 나는 그 방송을 딱 3분 봤다가 창을 껐다. 예뻤다. 잘했다. 재미없었다. 너무 완벽한 사람을 보면 오히려 거리감이 생긴다. 나랑 다른 세계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 반면 유설아는 늘 넘어지고, 늘 웃었다. 몬스터한테 밀려서 엉덩방아를 찧어도, 배달 음식이 쏟아져도, 웬만하면 웃음으로 넘겼다. 그 웃음이 억지스럽지가 않았다. 진짜로 즐기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 웃음에 만원 한 장 쥐여주고 싶었다. 그게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 거창한 꿈도, 대단한 사명도 없었다. 그냥 그거였다. 만 원짜리 후원 한 번, 채팅창에 이름 하나 뜨는 것. * * * 서울 탐험자 조합 접수처는 아침부터 줄이 길었다. 건물 자체는 낡았다. 회색 콘크리트 외벽에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로비 벽에는 '안전 제일'이라는 오래된 표어가 붙어 있었다. 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번호표를 뽑고 두 시간을 기다렸다. 다리가 저릿했다. 대기실 의자는 딱딱했고, 에어컨은 고장인지 미풍만 나왔다. 옆자리 사람이 계속 다리를 떠는 소리가 신경 쓰였다. 드디어 전자 안내판에 숫자가 떴다. "강대길 씨, 3번 창구로 오세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리에 저린 느낌이 확 퍼졌다. 접수원은 성별을 짐작하기 어려운 담담한 얼굴이었다. 명찰에는 이름 대신 사번만 적혀 있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서, 몇 년째 이 자리에 앉아 온 사람 같았다. "적성 검사 처음이시죠?" "네. 배달 자격 등록하려고요." "간단합니다. 이 수정구에 손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손바닥에 닿은 수정구는 차갑고 미끈했다. 표면에 옅은 빛이 스멀스멀 번졌다. 마치 우유 한 방울이 물속에서 퍼지는 것처럼, 빛이 번지는 속도가 은근히 아름다웠다. 삐이익. 접수원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어머, 반응이 굉장히 빠르시네요! 이런 경우는 드문데." [적성 수치를 측정 중입니다.] 나는 괜히 어깨가 펴졌다. 어라, 나 재능 있는 건가. 짜장면 배달만 하려던 대학생이 알고 보니 숨겨진 인재였다, 뭐 그런 서사 시작되는 건가. 머릿속으로 이미 이야기를 짜고 있었다. 알고 보니 각성한 배달자, 유설아 방송에 게스트로 나가서 몬스터를 대신 잡아주는 그림까지. 삐이이이이익─. 수정구가 검게 그을리듯 색이 바뀌었다. 접수원의 표정도 함께 바뀌었다. 밝음에서 당혹으로. "저, 잠시만요."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드리고, 다시 수정구를 살펴보고,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거 기계 오류인 것 같은데···" 【강대길 님의 적성률: -1000%】 "...선생님, 이거 마이너스인데요." "저도 그렇게 나오네요." 접수원은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뭔가 굉장히 신기한 생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 이 일 6년 했는데 마이너스 적성률은 처음 봅니다." "그게··· 좋은 건가요?" "아니요." 단호했다. 망설임 하나 없이 바로 나온 대답이었다. "이건 역대 최저 기록입니다. 축하드릴 일이 아니라···" 접수원이 잠깐 말을 골랐다. 서류를 뒤적이다가 다시 나를 봤다. "솔직히 위로가 필요한 수치예요." 나는 그 순간 뭔가가 명치를 세게 때리는 기분을 느꼈다. 침샘이 바짝 말랐다. 목구멍이 조여왔다. 좋은 소식일 거라 믿었던 마음이 그대로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그러면 배달자 등록은···" "불가합니다. 던전 진입 자체가 위험 등급 초과로 승인이 안 나요." [적성률 마이너스 구간은 시스템상 '재난급 부적응자'로 분류됩니다.] 재난급이라니. 던전 안에 들어가면 몬스터가 아니라 내가 먼저 재난이 되는 건가. 상상해봤다. 슬라임 앞에서 넘어지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로 슬라임을 도망가게 만드는 그림.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등록금을 벌겠다는 결심이 십 분 만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접수원이 서류철을 뒤적이다 멈췄다. "음, 딱 하나 방법이 있긴 한데." 눈이 번쩍 뜨였다. 방금까지의 절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순식간에 희망이 차올랐다. "뭔데요, 뭐든 할게요." "저층 던전 한정 배달원 임시 허가증이요. 위험도가 낮아서 적성률 심사가 느슨해요." "그거 신청할게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재난급이라는 딱지가 붙었어도, 슬라임 몇 마리쯤이야 못 하겠나 싶었다. "보통은 등급 1~2 던전만 배정됩니다. 안전하죠." 접수원이 도장을 찍으며 웃었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아마 나 같은 케이스가 드물어서 반가운 모양이었다. "운 좋으면 슬라임 몇 개 잡는 게 전부예요." 나는 안도했다. 슬라임이라니, 유설아 방송에서 본 그 물컹한 애들이라면 무섭지도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유설아도 매일 상대하는 그 몬스터를 나도 만나게 되는 건가, 하는 이상한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서류에 도장이 찍히고 서명을 마쳤다. 접수원이 종이 몇 장을 봉투에 넣어 건넸다. "이거 잘 챙기시고요, 등록 완료되면 앱으로 알림 옵니다."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접수처를 나왔다.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눈을 찔렀다. 오전인데도 벌써 더웠다. 서류를 받아 나오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던배] 신규 배달원 등록 완료. 첫 콜을 배정합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첫 콜이라니, 인생 첫 배달이라니. 봉투를 옆구리에 낀 채 서둘러 화면을 눌렀다. 메시지 하단에 작은 지도가 떴다. 목적지: 칠흑던전 최심부. 나는 그 문구를 세 번 다시 읽었다. 칠흑, 던전, 최심부. 세 단어를 하나씩 곱씹어봐도 도무지 슬라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이거 슬라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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