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알람이 울렸다.
나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팔을 뻗어 스마트폰을 더듬었다.
손끝에 차가운 액정이 닿았다.
화면에는 오전 7시라는 숫자와 함께, 며칠 전부터 즐겨찾기 해둔 뉴스 알림이 떠 있었다.
[VRMMO '클랜온라인', 금일 정식 서비스 개시]
나는 그제야 눈을 번쩍 떴다.
(오늘이었지.)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창문 틈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어 방바닥에 옅은 노란빛 줄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책상 위에는 어제 미리 정리해둔 VR 기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헤드셋 위로 먼지 한 톨 없이 반짝이는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저녁까지만 참으면 된다.)
나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기지개를 켜며 복도를 지나는 동안 관절 어딘가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다.
기분 좋은 아침의 소리였다.
식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새벽 근무를 나가셨고, 아버지는 출장 중이었다.
식탁 위에는 어머니가 남겨둔 짧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아침 꼭 챙겨 먹어.]
나는 그 메모를 슬쩍 보고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컵에 따랐다.
어제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의 포장을 뜯는 손끝이 조금 서둘렀다.
(누나는 요즘 연락도 없네.)
대학생이 된 누나, 이서연은 몇 달째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가끔 오는 문자도 짧고 무뚝뚝했다.
마지막으로 온 문자는 '밥 챙겨 먹어라' 딱 그 한 줄이었다.
나는 그 생각을 오래 붙잡지 않고 우유를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감각이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물자 참치 마요의 익숙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창밖으로 새 몇 마리가 지나가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가 사라졌다.
학교로 가는 길, 나는 이어폰을 꽂고 클랜온라인 관련 영상을 틀었다.
화면 속에서는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캐릭터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붉은빛 이펙트가 화면을 채우고, 이어서 푸른빛 마법진이 그 위로 겹쳐졌다.
(오늘 저녁에 서준이랑 민재랑 같이 접속하기로 했지.)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문득 배 속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꾸르륵.
작고 낮은 소리였다.
(어제 매운 라면을 먹은 게 문제였나.)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는 신호가 바뀌자 걸음을 옮겼다.
건널목을 건너는 동안 발밑에서 아스팔트의 온기가 슬며시 올라왔다.
초여름의 공기는 아직 축축한 새벽 기운을 조금 머금고 있었다.
교문을 지나자 익숙한 얼굴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박서준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도현아, 오늘 저녁 약속 안 잊었지?"
서준은 늘 그렇듯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붙어 다닌 친구답게, 그의 목소리에는 익숙한 편안함이 있었다.
그 뒤로 안경을 쓴 김민재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까먹으면 진짜 죽는다."
민재는 짧게 말했지만, 그 말에는 묘한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억하지. 클랜온라인 오픈인데."
서준이 스마트폰을 흔들며 덧붙였다.
"나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너무 기대돼서."
"너답다."
민재가 짧게 코웃음을 쳤다.
"난 캐릭터 세팅 다 끝내놨어. 너희만 늦게 오지 마라."
"안 늦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우리 셋은 나란히 교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동안 창밖으로 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초여름의 공기가 살갗에 닿아 선선했다.
평온한 아침이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울리고, 그 웃음소리가 벽을 타고 잔잔하게 흩어졌다.
교실 문을 열자 이미 몇몇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안에 한소은의 자리가 보였다.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 모습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옅게 걸쳐 있었다.
(오늘… 말해볼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살짝 빨라졌다.
가방을 내려놓는 손끝이 평소보다 조금 서툴렀다.
서준이 옆에서 그 모습을 눈치채고 슬쩍 웃었지만, 나는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 나는 배 속에서 다시 그 낮은 울림을 느꼈다.
꾸르륵.
조금 전보다 소리가 커진 듯했다.
(진짜 뭐 잘못 먹었나.)
서준이 옆에서 나를 쳐다봤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아니, 별거 아니야."
나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소리인데, 오늘따라 유독 신경을 긁는 기분이었다.
나는 배를 슬쩍 문지르며 애써 숨을 골랐다.
(별거 아니야. 그냥 배탈이겠지.)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나는 노트를 펼치며 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배 속의 감각은 조금씩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참을 만해. 이 정도는.)
나는 애써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창밖 하늘은 맑았고, 구름 한 점 없이 파란빛이 가득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그 풍경이 오히려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무언가 삐걱거리는 듯한 이질감이 마음 한구석에 스쳤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칠판 위 분필이 긁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멀리서 울리는 것처럼 조금 흐릿하게 귓가에 얹혔다.
나는 몇 번이나 노트에서 시선을 떼고 배 쪽을 내려다봤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옷 위로 손을 얹은 채, 나는 그 감각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쉬는 시간, 나는 화장실에 다녀왔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그냥 기분이었나.)
안심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잠깐 들여다봤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
조금 창백해 보이긴 했지만, 그건 아마 아침을 서둘러 먹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서준이 스마트폰을 보며 나에게 화면을 들이밀었다.
"봐봐, 클랜온라인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영상 나왔어."
화면 속에는 다양한 종족과 직업의 캐릭터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뭐로 할지 정했어?"
"음… 아직. 서준이 넌?"
"난 검사 쪽으로 갈 거야. 민재는 뭐 할 거야?"
민재는 팔짱을 낀 채 짧게 대답했다.
"탱커."
짧지만 확고한 말투였다.
"넌 뭐 할 건데, 도현아."
서준이 다시 물었다.
"글쎄… 마법사도 괜찮을 것 같고."
"넌 늘 정하는 데 오래 걸리더라."
민재가 픽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오늘 저녁이 기다려졌다.
그 순간만큼은, 배 속의 불편함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교실 안 시계가 초침을 넘기는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리던 아침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급식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나는 한소은과 마주쳤다.
그녀는 친구들과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우며 잠깐 나를 스쳐 지나갔다.
(오늘, 방과 후에 말해볼까.)
결심이 서는 순간, 다시 배 속에서 신호가 왔다.
이번엔 조금 더 뚜렷했다.
꾸르르륵.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배를 문질렀다.
(설마… 오늘 하루 종일 이럴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이 스쳤지만, 나는 그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급식실 안은 시끄러운 소음과 밥그릇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줄을 서서 식판을 받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지었다.
서준과 민재가 뒤따라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너 아까부터 배 만지던데, 진짜 괜찮은 거야?"
서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나는 손을 저으며 밥을 한술 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배 속에서는 또 한 번 낮은 울림이 지나갔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한소은에게 고백할 결심을 굳힌 날이자, 클랜온라인이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그 두 가지 기대감으로 불편함을 덮어보려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식판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그 이상한 감각이 다시 한번 배 속을 훑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훨씬 낯설었다.
(이거… 진짜 뭔가 이상한데.)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선 채, 배를 내려다봤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여전히 맑았지만, 어쩐지 그 빛조차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