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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4화. 밤의 방문자 서연의 집은 마을 가장자리에 있었다. 낡은 초가였다. 지붕의 이엉이 군데군데 헐어 있었다. 담장도 낮고, 허물어진 곳이 많았다. 가난이 눈에 보였다. 서연이 사립문을 밀며 앞장섰다. "들어오세요. 좁습니다만."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한쪽에 장독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문을 열자 탁한 공기가 먼저 흘러나왔다. 약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했다. 눈가가 움푹 꺼져 있었다. 입술은 마른 잎처럼 갈라져 있었다. 숨소리가 얕고 빨랐다. "어머니, 저 왔어요." 서연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머니가 힘겹게 눈을 떴다. "연아…." 목소리가 실처럼 가늘었다. 서연이 약봉지를 내밀자, 어머니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손이 떨렸다. 늙은 손이 아니었다. 병 때문에 미리 늙어버린 손이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느냐." "저 도련님께서 구해주셨어요." 어머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물이 먼저 차올랐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서연이 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어머니, 누워 계세요." "아니다. 은인께 인사를 드려야지." 어머니가 상체를 일으켜 나를 향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이마가 거의 이불에 닿을 정도였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별일 아닙니다. 일어나지 마십시오." "그런 말씀 마세요. 이 약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저도 압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거짓말이었다. 운이 아니라 성망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다시 눕자, 서연이 이불을 정돈해주었다.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익숙한 손길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했을 손길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전생에서는 이런 것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사정 같은 것은, 그저 지나가는 풍경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서연이 문을 닫고 나오며 나를 돌아보았다. "약을 달여 드리는 건 제가 할게요. 하루 이틀이면 좀 나아지실 거예요."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밤이 늦었습니다. 저는 어디서 쉬면 되겠습니까."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당의 헛간으로 나를 안내했다. 낡은 문짝이 삐걱 소리를 냈다. 안은 좁고 어두웠다. 짚더미가 한쪽에 쌓여 있었다. 농기구 몇 개가 벽에 걸려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누추하지만." "고맙습니다."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방에 자리를 만들어 드릴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서연이 안심한 듯 작게 웃었다. "필요한 것 있으시면 부르세요. 저는 안채에 있을 거예요." 그녀가 등불을 하나 건네주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헛간 안을 둘러보았다. 낡았지만, 이슬을 피할 지붕은 있었다. 노숙보다는 나았다. 짚더미 위에 몸을 눕히자,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몸이 무거웠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그러나 자리에 눕자마자, 나는 눈앞의 판을 다시 떠올렸다. [성망 : 15/100] [남은 시간 : 51시간 27분] 판을 바라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85이 더 필요했다. 숫자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모을지 아직 막막했다. 그러나 오늘, 조금은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사람을 돕는 것. 그것이 성망을 얻는 길이었다. 낮에 약초를 캐던 일, 서연을 도왔던 일이 떠올랐다. 작은 일이었다. 그러나 판은 반응했다. 숫자가 조금씩 올랐다. *전생에서는 강함만을 좇았다.* *그 끝이 어땠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게 살아야 했다.* 사부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강해져라. 그리고… 착하게 살아라.* 이상한 말이었다. 강함과 선함이 무슨 상관인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완전히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 말이 지금의 나를 이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되뇌며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작스러운 한기에 눈을 떴다. 숨이 하얗게 흩어졌다. 헛간 안이었다. 분명 밤이 깊었을 텐데, 공기가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짚더미 사이로 스며드는 냉기가 뼛속까지 스미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낮에 느꼈던 그 기운과 같았다. 다만 훨씬 더 짙었다. 숲에서 느꼈던 것이 옅은 안개였다면, 지금 이것은 짙은 먹구름 같았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쿵, 쿵, 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크게 울렸다. 나는 조심스레 일어나 헛간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마당에 달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평소보다 창백한 달빛이었다. 그리고 그 달빛 아래, 무언가 서 있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사람의 형체였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그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았다. 허공에 살짝 떠 있었다. 발끝이 지면에서 한 치쯔음 떨어져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목검을 움켜쥐었다. 손이 떨렸다. 땀이 손바닥에 배어났다. 헛간 문이 저절로 삐걱, 소리를 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여인의 머리가 천천히 들렸다. 느릿하고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인간의 목이 그렇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핏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누구냐." 목소리가 갈라졌다. 대답은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여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창백한 입술 사이로 검은 잇몸이 드러났다. 이가 짐승의 것처럼 뾰족했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등이 헛간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경고: 강대한 사기(邪氣)를 감지했습니다.] [숙주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습니다.] 판이 붉게 물들며 경고를 띄웠다. 글자가 눈앞에서 떨리듯 번쩍였다. 나는 그것을 볼 겨를이 없었다. 여인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다음 순간, 그녀가 거기 있었다. 향기랄 것도 없이, 썩은 흙냄새 같은 것이 코를 찔렀다. 차가운 손끝이 내 목을 향해 뻗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손끝이 벽을 스쳤다. 벽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나무가 얼어붙는 소리가 났다. 쩌적, 하는 소리가 귀에 선명히 박혔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목덜미에서 소름이 돋았다. "…인간이 아니야."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제법이구나." 낮고 서늘한 목소리였다.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여러 겹으로 울리는 듯한 음색이었다.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목검을 앞으로 겨눴다. 손이 떨리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목검을 쥔 손끝의 감각이 이미 얼어붙은 것 같았다. "물러나지 않으면, 벨 수밖에 없습니다." 허세였다. 목검으로 무엇을 벨 수 있을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이런 존재를 벤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여인이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입만 벌어지고, 웃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소름을 돋게 했다. "그 눈썹."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검댕이 조금 지워졌던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숲에서 뛰고,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는 사이 눈썹을 가리기 위해 발랐던 검댕이 지워졌던 모양이었다. "주상께서 말씀하신 그대로군." 낯선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숨이 막혔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이것은 도망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여인의 눈이 더욱 붉게 빛났다. 두 눈동자가 마치 타오르는 숯불처럼 밝아졌다. "오늘 밤, 너는 여기서 끝난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톱이 칼날처럼 길게 자라나 있었다. 손톱 끝에서 서리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헛간은 좁았고, 그녀는 이미 문 앞을 막고 서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서연 씨! 도망치세요!" 나는 외쳤다. 목이 찢어질 듯 크게 외쳤다. 안채 쪽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불빛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 공간만이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소리가 이 헛간 안에 갇혀버린 것처럼, 밖으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여인이 한 걸음 다가왔다. 찬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숨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목구멍이 얼얼했다. 폐 안으로 얼음물이 흘러드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도망칠 수 없다면, 맞서야 했다. 사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강해져라.* 전생에서는 도망칠 곳이 늘 있었다. 힘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없었다. 그러나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정신을 차리게 했다. 나는 목검을 고쳐 쥐었다. 손끝에서 낯선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心 한가운데서부터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여인의 붉은 눈이 나를 향해 더욱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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