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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화. 청석마을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듣는 사람 소리였다. 11년 만이었다. 나는 걸음을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좌판이 늘어선 장터가 눈에 들어왔다. 생선 장수의 목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수레바퀴가 구르는 소리. 모든 것이 낯설고, 동시에 그리웠다. *전생에서 나는 이런 번잡함을 싫어했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 다녔다.* 이번에는 그 소리들이 반가웠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 바람에 실려 온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기름에 볶은 야채 냄새, 젖은 흙냄새, 사람의 체취. 산속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냄새들이었다. 사부와 지낸 십일 년 동안, 나는 오직 눈과 얼음, 그리고 사부의 낮은 목소리만을 알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이 등 뒤로 사라졌다. 눈을 뜨자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검댕으로 가린 눈썹을 한 번 더 매만졌다. [성망 : 0/100] [남은 시간 : 58시간 03분] 판이 시야에 걸렸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그것을 밀어냈다. 이 낯선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나는 알지 못했다. 사부는 이런 것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성망이라는 두 글자가 유독 눈에 밟혔다. 무엇을 채워야 저 숫자가 올라가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먼저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돈은 없었다. 사부가 남긴 은자 몇 냥이 전부였다. 그것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품속에서 은자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몇 개인지 세어보았다. 다섯 냥이었다. 이것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은자를 품속에 넣었다. 장터를 천천히 걸으며 좌판을 둘러보았다. 곡식을 파는 노파, 옷감을 늘어놓은 아낙, 대장간에서 울리는 쇠 두드리는 소리. 모든 것이 눈에 설고, 모든 것이 신기했다. 나는 열한 살의 몸으로 이 모든 것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 몸으로는, 이 생으로는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거기 서!"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한 소녀가 넘어질 듯 달려오고 있었다. 열 살쯤 되어 보였다. 허름한 저고리, 헝클어진 머리. 그 뒤로 덩치 큰 사내가 뒤쫓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소녀의 것이었다. "그건 우리 엄마 약값이에요!" 소녀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다리가 자꾸 꼬였다. 사람들은 힐끔거릴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좌판 주인들은 고개를 돌렸고, 지나가던 사내들은 걸음을 재촉해 자리를 피했다. 익숙한 광경인 듯했다. 이 마을에서는 늘 있는 일인 것처럼. *전생에서 나는 이런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돌렸다.* *강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남의 일에 힘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로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다리가 이미 앞으로 뻗어 있었다. 사부의 가르침이 몸에 새겨져 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사내가 내 앞을 지나치려는 순간, 나는 발을 뻗었다. 사내가 크게 휘청였다. 거구가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듯 몸을 틀었다. 주머니가 손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튀었다. 나는 그것을 낚아챘다. 손끝에 닿은 주머니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이 안에 든 것이 정말 약값의 전부인가 싶을 만큼. 사내가 나를 노려보았다. 붉게 충혈된 눈, 술 냄새가 밴 숨결. "뭐야, 이 꼬맹이는." 험악한 목소리였다. 나는 목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에 목검의 나뭇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사부가 깎아준 것이었다. "이건 저 아이의 것입니다." 담담하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은 것에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사내가 잠시 나를 훑어보았다. 허름한 행색, 그러나 흔들림 없는 눈빛. 그의 시선이 내 눈에서 잠시 멈췄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눈치였다. 열한 살짜리 아이의 눈빛치고는 이상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가 혀를 찼다. "재수 없는 날이군." 그는 몸을 돌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나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부딪힌 순간이었다. 전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사람과 이렇게 정면으로 맞선 것은 처음이었다. 산속에서는 늘 사부와 짐승, 그리고 나뿐이었다. 소녀가 다가왔다. 숨이 찬 얼굴이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 고맙습니다." 그녀가 주머니를 받아 품에 꼭 안았다. 두 손으로 감싸 쥐는 모습이, 그 안에 든 것이 목숨보다 소중한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요?" 나는 물었다. "네. 오라버니 덕분에요." 소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했으나, 그녀는 애써 참아내고 있었다. "이거 엄마 약값이에요. 엄마가 많이 아파요." 그녀가 주머니를 더 꼭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벌써 세 달째 누워만 계세요. 이 약이 없으면……." 말끝을 흐리며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박서연이에요." "백현입니다." 나는 짧게 답했다. 서연이 눈을 깜빡였다. "이름이 특이하네요." "어디서 왔어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나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무어라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십일 년을 산속에서 보냈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시야 한쪽에서 낯익은 빛이 반짝였다. [성망 획득 : +15] [성망 : 15/100]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숫자가 올라간 것이다. 처음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는 듯한 낯선 감각이 스쳤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만은 분명했다. 어리둥절한 채로 서 있는 나를, 서연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왜 그래요?" 작은 얼굴이 갸웃거렸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전생에서 나는 누군가를 도와도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상은 내게 무언가를 돌려주고 있었다.* 선의가 힘이 되는 세상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나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연이 내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작은 손이었다. 굳은살 하나 없는, 아직 여린 손. "저희 집에 가실래요? 엄마가 인사라도 하고 싶어 하실 거예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갈 곳도, 잘 곳도 없었다. 하룻밤 묵을 곳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낯선 이의 집에 발을 들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부라면 어떻게 했을까. *전생에서 나는 누구의 집에도 신세를 진 적이 없었다. 홀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아도 좋을 듯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서연의 얼굴이 환해졌다. 방금 전까지 눈물이 그렁했던 눈이, 순식간에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녀를 따라 골목을 걸었다. 좁은 골목길, 낮은 담장들이 이어졌다. 빨래가 널린 마당,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아낙의 뒷모습. 이 모든 풍경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가, 이내 검게 변해갔다. 마을에 하나둘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걸린 등불이 골목을 은은하게 밝혔다. 나는 그 불빛들을 보며 걸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였다. 사부의 오두막에는 화로 하나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불빛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서연이 앞장서서 걸으며 종알거렸다. "저희 집은 저 끝에 있어요. 그렇게 크진 않지만요." "엄마가 원래는 바느질을 하셨는데, 아프신 뒤로는 제가 대신 이것저것 해요." "오라버니는 어디서 오셨어요? 저 마을 사람들은 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하던데." 나는 짧게 답할 말을 고르다가, 결국 얼버무렸다. "조금 먼 곳에서 왔습니다." 서연은 더 캐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다시 그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목덜미가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산속에서 맹수의 기척을 느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 끝, 어둠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을 뿐이었다. 등불의 그림자만이 흔들리고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라버니?" 앞서 걷던 서연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가시죠."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서늘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등 뒤에 무언가 달라붙은 듯한 기분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이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느껴온 위화감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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