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이도현이 밭두렁을 뛰어 내려갔을 때, 노인은 이미 넘어져 있었다.
흙바닥에 주름진 손이 파묻혀 있었다.
숨은 거칠었고, 다리는 제대로 펴지지 못한 채 뒤틀려 있었다.
"할머니!"
이도현이 소리쳤다.
발이 땅을 박차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노인은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봤다.
눈동자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도, 도현이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물의 몸체가 다시 움직였다.
쿠구구-
땅이 진동하듯 흔들렸다.
검붉은 비늘이 햇빛에 번쩍였다.
꼬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막아야 해.'
딱히 생각을 정리할 틈이 없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도현은 노인 앞으로 뛰어들었다.
콰직!
꼬리가 그의 팔을 강타했다.
뼈가 부서질 것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팔뚝을 타고 번개처럼 퍼지는 통증에 눈앞이 잠깐 흐려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왜...'
발끝이 땅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마치 뿌리라도 내린 것처럼.
팔이 부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끝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불에 데인 것도 아닌데, 화끈거리는 열감이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올라왔다.
괴물이 다시 몸을 세웠다.
붉은 눈동자가 이도현을 정확히 응시했다.
입이 크게 벌어지며 낮은 포효가 터졌다.
크와아아아-
땅이 흔들릴 만큼 울림이 컸다.
노인은 그 소리에 몸을 떨며 뒤로 기어갔다.
흙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었다.
이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뭘 하려는 거지, 나.'
생각과 몸이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그의 팔을 잡고 조종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손끝에서 검붉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낱같던 빛이, 점점 굵어지며 손등을 타고 번졌다.
번쩍-
짧은 섬광이 터졌다.
괴물의 시선이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몸의 움직임이 순간 둔해졌다.
'지금이야.'
어디서 나온 확신인지 알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몸 안쪽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이도현은 발을 굴려 앞으로 파고들었다.
흙이 튀어 올랐다.
괴물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뒤로 밀려났다.
쩌저적!
비늘 몇 개가 갈라지며 땅에 떨어졌다.
검붉은 파편이 흩날렸다.
노인이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채, 벌어진 눈으로 이도현을 바라봤다.
"저, 저게 무슨..."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손가락 끝도 함께 흔들렸다.
괴물은 몸을 뒤틀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 했다.
꼬리를 세우고, 발톱으로 땅을 긁으며 위협하듯 낮게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 순간, 손끝의 빛이 다시 번쩍였다.
이번엔 더 크고 선명했다.
빛은 잠깐이었지만, 그 잠깐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괴물의 눈동자가 흐려지는 게 보였다.
마치 무언가에 압도당한 짐승처럼, 거대한 몸체가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발톱이 흙을 끌며 물러나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크르...
낮은 울음소리를 남기고, 괴물은 산 쪽으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숲의 그림자 속으로 검붉은 그림자가 완전히 삼켜졌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람만이 밭두렁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도현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숨을 몰아쉬느라 어깨가 크게 오르내렸다.
손끝이 계속 뜨거웠다.
'방금 뭐였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힘을 쓴 게 맞는데, 어떻게 쓴 건지는 몰랐다.
분명 몸이 알고 있었는데, 머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노인이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괘, 괜찮은 게냐..."
"네.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나는 괜찮다만, 네가..."
노인의 시선이 이도현의 손끝에 머물렀다.
빛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노인의 눈에는 여전히 그 잔상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이도현은 손을 슬쩍 뒤로 감췄다.
"별거 아니에요."
짧게 대답하고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노인은 뭔가 더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대신 떨리는 손으로 그의 팔을 다시 한번 꽉 붙잡았다.
산 위쪽, 그가 놓아둔 밭 근처.
작은 검은 물체가 조용히 떠 있었다.
클로였다.
렌즈가 여전히 이쪽을 향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고, 정확히 같은 위치에 고정된 채였다.
'설마, 이것도 다 찍힌 건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스쳤다.
방금 있었던 모든 움직임, 모든 빛, 모든 순간이.
이도현은 그 생각을 하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을 거고.'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어깨를 한 번 털고, 다시 노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클로는 이미 방금 있었던 모든 순간을, 초당 스물네 장의 화면으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서버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렌즈 안쪽에서 작은 빛이 규칙적으로 점멸했다.
마치 무언가를 열심히 삼키고 있는 것처럼.
노인을 부축해 마을로 내려가는 이도현의 등 뒤로, 산등성이는 여전히 조용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조용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멀리,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화면 위에서.
그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