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몰래 살고 싶었는데요

2화

다음 날, 교실 문을 열자마자 서연이 상자 하나를 책상 위에 툭 올려놨다. "자, 선물." 이도현은 상자를 내려다봤다.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검은 박스였다. 포장도 없이 테이프로만 대충 붙여놓은 상자였다. "뭔데." "열어봐." 이도현이 테이프를 뜯는 사이, 서연은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턱을 받친 채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지켜봤다. 상자 안에는 작은 드론이 들어 있었다. 프로펠러 네 개, 렌즈 하나, 매끈한 검은 외장. "드론이잖아." "그냥 드론이 아니야. AI 촬영 보정에 자동 업로드 기능까지 있는 최신형이거든." 서연이 손가락을 튕기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목소리에 뿌듯함이 잔뜩 배어 있었다. 이도현은 드론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봤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손끝으로 프로펠러를 톡 건드려보니 부드럽게 돌았다. "이걸 왜 나한테." "너 매일 산길 다니잖아. 뭐 찍을 거 많을 것 같아서." "안 찍을 건데." "찍을 거야, 두고 봐." 서연이 확신에 찬 얼굴로 웃었다. 그 웃음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도현은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드론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쓸 일이 있을까.' 산길이라고 해봐야 밭을 가꾸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 일을 굳이 영상으로 남길 필요는 없었다. "이름은 지었어?" "이름을 왜 지어." "물건에 이름 붙이면 정 붙어. 너 혼자 살잖아." 그 말에 이도현은 잠깐 말을 멈췄다. '혼자 산다는 거,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하네.' 서연의 말투엔 동정도, 배려의 과장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얘기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를 낮추거나 표정을 조심스럽게 바꾸곤 했다. 서연은 그러지 않았다. "클로." "응?" "이름. 클로로 하지." 서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발톱? 왜 그런 이름이야." "몰라. 그냥 떠올랐어." 서연은 뭔가 짚이는 게 있다는 표정으로 잠깐 이도현을 바라봤다. 입술을 살짝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이도현은 교실을 나서기 전에 다시 한번 상자를 확인했다. 드론은 얌전히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하굣길, 이도현은 클로를 가방에 넣고 산길로 들어섰다. 평소보다 발걸음이 조금 느렸다. 가방 속에서 상자가 등에 부딪치는 감각이 낯설었다. 밭에 도착해서 상자를 열고 클로를 하늘로 띄웠다. 웅- 작은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드론이 천천히 떠올랐다. 렌즈가 빙그르 돌며 주변을 훑었다. 밭 전체가,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산등성이가 렌즈 안에 담겼다. '설정 같은 건 안 만졌는데.' 이도현은 손에 든 작은 리모컨을 눌러 클로를 조금 더 높이 띄웠다. 드론은 그의 손짓에 따라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 서연이 미리 세팅해둔 자동 업로드 기능은 이도현이 알 리 없었다. 클로는 촬영된 영상을 정해진 시간마다 서버로 조용히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산속에 아무도 없었다. 밭 한쪽에서 흙을 뒤집던 이도현은 문득 손을 멈췄다. '또 이상하게 잘 자란 자리네.' 같은 자리에서 유독 빠르게 자라는 뿌리풀이 있었다. 뿌리는 다른 곳보다 굵고, 색도 짙었다. 캐낼 때마다 손끝이 저릿했지만, 그는 늘 그것을 피곤함 탓으로 넘겼다. '요즘 계속 이랬나.'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도현은 뿌리풀을 캐낸 흙더미를 손으로 다시 다졌다. 클로는 그 위에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떠 있었다. 그때였다. 산 아래쪽 마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거기! 뭐야 저게!" 이도현은 흙 묻은 손을 털며 고개를 들었다. 소리는 계속됐다. "살, 살려주세요!" 마을 노인의 목소리였다. 이도현은 몸을 일으켰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건 그냥 짐승 소리가 아니야.' 그는 곧바로 상자를 챙기지도 않고 산길로 몸을 돌렸다. 클로가 허공에서 잠시 흔들리다 그 뒤를 따라붙었다. 산길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처음 보는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검붉은 비늘로 덮인 커다란 몸체였다. 몸길이는 사람 셋을 눕혀놓은 만큼이나 길었다. 등에서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비늘이 햇빛에 번들거렸다. '저게 뭐야.' 산골에서 몬스터 소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가끔 작은 개체가 산기슭까지 내려와 밭을 망치는 일은 있었다. 하지만 저런 등급의 것이 마을 근처까지 내려온 적은 없었다. 노인 한 명이 밭두렁에서 다리를 절며 도망치고 있었다. 괴물의 꼬리가 노인의 등 뒤로 스치듯 지나갔다. 쿠구구- 땅이 낮게 울렸다. 발밑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이도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저릿했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산길을 뛰어 내려갔다. 클로가 그 위를 조용히 뒤따르며, 이 모든 순간을 렌즈에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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