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7년 수련, 첫날 들켰다

4화

짐승의 발톱이 강철수를 향해 뻗어 나가는 순간, 나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보다 몸이 빨랐다. 스승님이 늘 말씀하셨던, '위기 앞에서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훈련하라'는 그 말이 그대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몸에 새긴 습관은 머리보다 빠르다더니.' 정말이었다. 퍽-! 나는 강철수의 어깨를 밀쳐 옆으로 넘어뜨렸다. 동시에 짐승의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바닥 타일을 그대로 긁어냈다. 쩌억-! 타일이 종이처럼 찢겨나갔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내 종아리를 스쳤다. 따끔한 감각이 스쳤지만, 지금은 통증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뭐, 뭐야!" 강철수가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그 표정엔 두려움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나 역시 놀랐다.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밀쳐낸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는 걸, 그 열기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짐승은 곧바로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붉은 눈이 이번엔 나를 향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표적이 바뀌었다.' 짐승의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결이, 복도의 서늘한 공기마저 데울 정도로 뜨거웠다. 그 열기가 얼굴에까지 와닿는 것 같았다. "도망··· 도망쳐야 해···" 박창수가 뒷걸음질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발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담이 작은 그로서는,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석두식이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도망가!" 그러나 그 역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와중에도 남을 향해 소리치는 걸 보면, 완전히 정신을 놓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짐승과 거리를 재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몸집은 크지만, 움직임에 빈틈이 있다.' 지리산에서 상대했던 맹수들과 비교하면, 이 짐승의 움직임은 다소 어설펐다. 마치 처음 육체를 얻은 것처럼, 균형이 완벽하지 않았다. 발톱을 세우고 있는 앞다리의 각도, 무게중심이 실린 뒷다리의 위치, 그 모든 것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이건 훈련받은 짐승이 아니다. 뭔가···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야, 너!" 강철수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너 뭐야, 방금 어떻게···" 말끝이 흐려졌다. 분명히 자신을 구했는데, 그 방식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에 떠오른 건 고마움이 아니라 의심이었다. '하긴, 나라도 저 표정을 지었을 거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저런 힘으로 사람을 밀쳐낼 수는 없으니까. "운이 좋았을 뿐이야." 나는 짧게 대답하며 짐승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변명이 궁색하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이거밖에 없다.' 짐승이 다시 낮게 몸을 웅크렸다. 도약하려는 자세였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순간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맞서느냐, 도망치느냐.' 그때, 뒤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도와줘요!" 돌아보니 안혜원이 넘어진 여학생을 부축하다가, 짐승의 진행 방향에 갇혀 있었다. 둘 다 도망칠 틈이 없었다. 안혜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녀가 부축하고 있는 여학생은 발목을 삔 듯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젠장.'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짐승이 도약했다. 순간 나는 온몸의 기를 끌어올렸다. 스승님께 배운 대로, 배꼽 아래 단전에서 시작된 기운이 팔다리로 퍼져나갔다. 뜨거운 물줄기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기억이 밀려들었다. 어린 시절, 화장실 구석에서 강철수의 발에 짓눌리던 순간. 그때 느꼈던 무력감이, 지금 이 순간과 겹쳐졌다. 바닥 타일의 냄새, 축축한 냉기,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 비웃음. '또 이런 일이···' 다리가 순간 굳었다. 0.1초,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몸이 얼어붙었다. '왜, 왜 지금···' 트라우마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머릿속으로는 움직이라고 명령했지만, 다리는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 기분이, 어릴 적 그날과 똑같았다. 짐승의 발톱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안혜원의 눈이 커졌다. "진아!" 그 목소리가 얼어붙은 몸을 흔들었다. 이름을 부르는 그 짧은 외침 하나가, 마치 얼음물처럼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움직여, 움직여야 해.' 스승님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공포는 몸을 얼리지만, 그걸 깨는 건 결국 의지다." 그 말이 귓가에서 울리는 순간, 굳어 있던 근육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다. 안혜원과 여학생을 감싸 안으며, 옆으로 굴렀다. 바닥과 부딪히는 충격이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짐승의 발톱이 바로 옆 벽을 긁고 지나갔다. 콰지직-! 벽 타일이 산산조각 나며 튀었다. 파편 몇 개가 등에 부딪혀 따가운 통증이 번졌다. "괜찮아?" 내가 묻자, 안혜원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 어떻게···"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손이 내 팔을 붙잡은 채로 떨고 있었다. 부축받던 여학생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설명할 시간이 없다.' 짐승이 다시 자세를 바꿔 이쪽을 노려봤다. 이번엔 확실히 나를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가 나만을 응시하는 그 감각이, 마치 표적이 된 사냥감처럼 소름이 돋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학생들은 이미 멀리 도망친 상태였다. 복도 저편에서 몇몇이 휴대폰을 들고 이쪽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저 상황에서 촬영이라니.' 허탈한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강철수와 박창수, 석두식도 복도 끝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새끼 죽는 거 아니야?" 박창수가 중얼거렸다. 석두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철수의 표정도 복잡했다. 방금 자신을 구한 사람이, 이제 눈앞에서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 얼굴에 스치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굳이 읽어내려 하지 않았다. '여기서 힘을 쓰면··· 다 들킨다.' 스승님의 경고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네 힘은 절대 남들 앞에서 드러내지 마라. 세상은 다른 존재를 곱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안혜원과 여학생을 지킬 다른 방법이 없었다. '들키는 것과 죽는 것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짐승이 다시 도약 자세를 취했다.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 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 퍼지며, 마치 복도 전체가 짐승의 숨소리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선택할 시간이 없다.' 나는 안혜원을 뒤로 밀며 앞으로 나섰다. 두 손에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힘이, 처음으로 표면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손끝이 저릿저릿하게 떨렸다. 억눌렀던 것을 풀어놓는 느낌이, 마치 오랫동안 잠가두었던 수문을 여는 것과 같았다. 짐승이 도약했다. 순간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발톱 하나하나의 움직임, 근육이 뒤틀리는 결, 심지어 그 짐승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답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짐승의 거대한 몸이 나를 향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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