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진동이 멈춘 건 채 삼십 초도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교실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천장 일부가 갈라져 있었고, 벽에는 길게 균열이 나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깨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유리 가루가 책상 사이사이에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칠판 위에 걸려 있던 급훈 액자가 바닥에 떨어져 모서리가 부서졌다.
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라 시야를 흐렸다.
'···진짜냐.'
숨을 들이쉬자 콘크리트 가루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괜찮으세요, 다들!"
김민재 선생님이 소리쳤지만,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두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도 놀랐구나.'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그건 평범한 지진이 아니었다.
땅이 흔들린 게 아니라, 뭔가가 아래에서 통째로 밀어 올린 것 같은 진동이었다.
몸이 붕 뜨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마저 있었다.
아이들이 책상 밑에서 하나둘 기어 나왔다.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안혜원도 무사히 몸을 일으켰다.
교복 소매가 찢어져 있었지만 상처는 없어 보였다.
"다친 사람 없어?"
누군가 물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몇몇은 책상에 부딪혀 팔뚝을 문지르고 있었지만, 그 정도였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안도의 숨을 채 내쉬기도 전이었다.
그때, 복도에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쿠구구궁-!
뒤이어 여러 명의 비명 소리.
"뭐야, 저건···!"
누군가 창밖을 보며 외쳤다.
나도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봤다.
숨이 멎었다.
운동장 쪽 체육관 벽면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이 튀어 오르고, 철골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무너진 잔해 사이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안개는 처음엔 그냥 연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건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 안개는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네 발로 서고, 등이 굽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저게··· 대체 뭐야.'
두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지리산에서 맹수와 싸운 적은 있었지만, 저런 형체는 처음이었다.
호랑이도, 멧돼지도 아니었다.
검은 짐승 형태의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그대로 살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윤곽은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쪽은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는 검은 구멍 같았다.
'저런 걸 봤다는 사람이 있었나···'
스승님도 저런 존재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갑자기 눈앞에 반투명한 창 같은 것이 떠올랐다.
띠링-
[알림: 미확인 이상 현상이 감지되었습니다.]
[게이트가 개방됩니다.]
[던전 등급: E]
'이게 뭐야, 게임 시스템이야?'
말도 안 되는 문구였다.
그러나 그건 분명 내 눈앞에, 현실처럼 떠 있었다.
손을 뻗어보니 손끝이 그대로 창을 통과했다.
만질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교실 안 다른 아이들도 같은 걸 보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터졌다.
"이거 뭐야!"
"게임 아니야?"
"진짜야?"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누군가 창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혼란은 순식간에 배가 됐다.
김민재 선생님도 눈앞의 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
"다들··· 다들 침착하게 자리에서 나와서 운동장으로···"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도 쪽에서 또 한 번 벽이 무너졌다.
쿠르릉-!
먼지가 파도처럼 교실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교실과 복도를 잇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버렸다.
"뭐야, 이제 어떻게 나가!"
누군가 절규했다.
창밖을 보니 다른 반 학생들이 무너진 계단 근처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계단 난간을 붙잡은 채 울먹이며 뭔가를 외치고 있었지만, 이쪽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강철수가 다가와 창밖을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거 뭐야, 진짜 몬스터야?"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평소의 그 거들먹거리던 태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박창수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엄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몸을 떨었다.
석두식만이 침묵을 지키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교실 안 구조를, 창밖의 상황을 번갈아 훑고 있었다.
'저 녀석은··· 침착한 건지, 얼어붙은 건지 모르겠군.'
김민재 선생님이 창가로 다가와 밖을 내려다보다가, 순간적으로 다리가 풀린 듯 벽을 짚었다.
"저··· 저게···"
말을 잇지 못했다.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른이라고 해서 이런 상황에 익숙할 리 없었다.
교사 임용 시험에는 몬스터 대처법 같은 게 없었을 테니까.
나는 조용히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복도는 막혔고, 창밖에는 몬스터가 있다.'
'다른 출구는···'
머릿속에서 교실 구조를 다시 그려봤다.
비상계단이 있는 반대쪽 복도로 시선을 돌렸다.
그쪽도 마찬가지로 벽이 갈라져 있었지만, 완전히 막힌 건 아니었다.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저기라면··· 가능성이 있다.'
"저기로 가면 돼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몇몇은 놀란 눈으로, 몇몇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강철수가 코웃음을 쳤다.
"허약이가 뭘 안다고."
그 말에 담긴 조롱은 여전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워낙 급박했기에, 다른 아이들은 반박할 처지가 아니었다.
누구도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일단··· 다들 조용히 이동합시다."
김민재 선생님이 겨우 정신을 붙잡고 지시했다.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쪽 복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상 다리에 걸려 넘어질세라 서로 손을 붙잡으며, 최대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창밖의 검은 짐승이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두 개의 붉은 눈이, 정확히 우리 교실을 향하고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쭉 올라왔다.
'설마···'
바라지 않던 예감이 확신으로 변해가는 순간이었다.
짐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발로 껑충 뛰며, 무너진 벽 사이를 타고 건물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였다.
한 번의 도약으로 몇 미터를 훌쩍 뛰어넘었다.
마치 고무줄로 튕겨 나가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온다! 저거 이쪽으로 온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교실이 혼란에 빠졌다.
방금까지의 질서 있는 이동이 완전히 무너졌다.
아이들이 서로 밀치며 복도 쪽으로 몰려갔다.
강철수가 제일 먼저 튀어나갔다.
방금 전까지 남을 비웃던 입은 어디로 갔는지, 가장 빠르게 뛰쳐나가는 건 그였다.
박창수와 석두식도 뒤따랐다.
안혜원은 넘어진 여학생을 부축하며 뒤늦게 움직였다.
김민재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챙기려 했지만,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오히려 밀려나고 있었다.
몸집 작은 선생님이 학생들 사이에 끼여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안타까웠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붙잡혀 있는 것보다, 흩어지는 게 더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좁은 통로에서 서로 밟고 밟히는 참사가 날 게 뻔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나서서 통제할 수는 없었다.
스승님의 경고가 다시 머릿속에 울렸다.
'힘을 드러내는 순간, 세상은 너를 다르게 본다.'
수년간 몸에 새긴 그 말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나도 다른 아이들을 따라 복도로 이동했다.
그러나 좁은 통로에 인파가 몰리면서, 곧 아수라장이 됐다.
누군가 넘어지고, 그 위로 또 누군가 걸려 넘어졌다.
책가방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신발이 벗겨진 채 나뒹굴었다.
"으악!"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짐승이 이미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벽돌을 긁으며 스파크처럼 불꽃을 튀겼다.
창문 하나를 그대로 부수며, 그 검은 형체가 복도 안으로 뛰어들었다.
쨍그랑-!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몇몇 아이들이 팔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짐승의 붉은 눈이, 넘어진 학생들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낮게 울리는 그르렁 소리가 복도 전체를 채웠다.
바닥을 딛는 발끝에서 검은 액체 같은 것이 뚝뚝 떨어져 흔적을 남겼다.
'제발, 제발 아니길···'
순간 온몸이 굳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짐승이 낮게 그르렁거리며 발톱을 세웠다.
그 표적은, 다름 아닌 강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