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덫에 걸린 것은 세상이다

3화

강당 안은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에어컨 때문인지, 아니면 분위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백여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다들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중앙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 반투명한 캡슐 같은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각성검사기,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식 장비였다. 한 명씩 저 안에 들어가 마력을 각성시키고, 그 결과로 어떤 스킬을 얻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앞쪽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화염 마법이다!" 하는 소리에 몇몇이 몰려가 축하를 건넸다. 반대로 뒤쪽 어딘가에서는 낮은 탄식 소리도 들렸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어깨를 떨궜다. 그 극명한 대비가 강당 전체를 팽팽하게 만들었다. "강도윤, 다음 순서다." 박태호 선생님이 명단을 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캡슐 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마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먼저 검사를 마친 재휘가 흥분한 얼굴로 다가왔다. "도윤아! 나 검술 나왔어! [검술 Lv.1]! 봤지?" 재휘가 손에 들린 알림창을 내게 들이밀며 자랑했다. 실제로 재휘의 손목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문양은 칼 모양을 형상화한 듯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형태였다. 검술 스킬은 탐색자 사이에서도 상위권으로 평가받는 스킬이었다. 전투 특화, 성장성 우수, 무기 다양성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였다. "축하해. 정말 잘됐다." 나는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 부러움도 스며들었다. '나도 저런 게 나오면 좋을 텐데.' "너도 곧 좋은 거 나올 거야. 파이팅!" 재휘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물러났다. 그 손길이 오히려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캡슐 앞에 선 나는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했다. 캡슐 표면에 비친 내 얼굴이 유독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발, 뭐라도 쓸 만한 게 나오길.' 캡슐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다시 닫혔다. "위이잉ㅡ" 낮은 기계음이 울리며 몸 전체가 은은한 빛에 감싸였다. 빛은 발끝에서 시작해 서서히 위로 올라오며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것 같았다. [각성 진행 중···] 문구가 눈앞에 떠 있는 동안,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검술이든, 마법이든, 뭐라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스킬 : 함정 Lv.1] 순간 나는 그 문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함정. 그게 다였다. 검술도, 마법도, 그 어떤 화려한 이름도 아니었다. '함정'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 떠 있었다. 글씨체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반짝였지만, 내용만큼은 초라해 보였다. 캡슐 문이 열렸다. 나는 멍하니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리가 살짝 풀리는 느낌이었다. "강도윤 학생, 스킬 결과가..." 박태호 선생님이 내 손목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하며 말을 멈췄다. 선생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평소 무표정하던 선생님의 얼굴에 그런 변화가 생기는 걸 보니,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함정, 이라니." 선생님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음... 그게, 함정 계열 스킬은 워낙 희귀하고, 활용법이 제대로 알려진 게 없어서 말이다." 선생님이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안경을 고쳐 쓰며 태블릿을 뒤적이는 손짓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전투는 못하고, 몬스터를 유인하거나 발을 묶는 정도의 보조 스킬이야. 성장성도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강당 안 몇몇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함정? 그거 완전 잉여 스킬이잖아." "쟤 탐색자 하기는 어렵겠네." "나 저런 스킬 나온 사람 처음 봐." 작은 목소리들이었지만, 내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누군가는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 낮춰 킥킥거렸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괜찮아.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어.' "솔직히 말해서, 도윤 학생." 박 선생님이 목소리를 낮추며 나를 한쪽으로 데려갔다. 사람들 시선에서 벗어난 구석이었다. "이런 스킬을 얻은 경우, 탐색자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찾는 학생들이 많아. 괜히 위험한 던전에 들어갔다가는···." 선생님은 말을 다 끝내지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선생님, 저는 그래도 해보고 싶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선생님이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뭔가를 가늠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래, 네 결정이니 존중은 하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건 알아둬라."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뒷모습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손목의 문양을 내려다봤다. '함정 Lv.1' 글자만 보면 초라하고 볼품없는 능력이었다. 빛조차 다른 아이들의 문양보다 흐릿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 조금 다른 확신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함정이라는 게 정말 그렇게 형편없는 능력일까. 생각해보면, 강한 몬스터를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고도 제압할 방법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남들이 못 보는 각도에서 싸우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정면승부가 아니라, 상대의 발밑을 무너뜨리는 방식. 어쩌면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능할까? 정말로?' 확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검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스킬을 자랑하거나 위로받고 있었다. 검술, 궁술, 화염 마법, 치유 마법 등 다양한 결과가 쏟아졌다. 누군가는 손바닥에 작은 불꽃을 만들어 보이며 신기해했고, 또 누군가는 활 시위를 당기는 시늉을 하며 친구들의 환호를 받았다. 대부분 전투형 스킬이었고, 함정 같은 특이 스킬을 얻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재휘가 다가와 내 결과를 물었다. "도윤아, 너 뭐 나왔어?" 순간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방금 전 웅성거림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냥... 보조 계열이야." 나는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오, 보조계? 힐러 같은 거야?" "비슷한 거지." 나는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정확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재휘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 이걸로 랭커 될 거야. 두고 봐." 그 말에 나는 그저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독 멀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십오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는데, 오늘은 발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손목의 문양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며 걸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보니 문양은 더 흐릿하고 초라해 보였다. 어머니와 서연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어머니는 분명 걱정하실 게 뻔했다. 서연은 또 오빠 걱정한다며 밤새 이것저것 찾아볼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편의점 앞을 지나며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평범한 고등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이었다. '이 모습으로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빛 하나 없는 흐린 밤하늘이었다. '함정이라도, 나는 해낼 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이 왔니? 결과 어떻게 나왔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현관에 선 채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하지만 앞으로 이 다짐을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들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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