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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오전 6시. 잠을 자지 못했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다가, 몸을 돌려 벽을 보고 누웠다가, 다시 천장을 보았다. 그 사이 등불을 몇 번이나 다시 켰다가 껐다. 켤 때마다 손끝이 미세하게 저렸다. 꺼질 때마다 방 안의 어둠이 한 층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룡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비늘의 색. 검붉은 빛깔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색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눈동자의 형태. 세로로 길었던가, 둥글었던가. 마지막 울음소리. 그 소리가 어떤 음정이었는지, 어떤 높이였는지 아무리 되짚어도 잡히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에 검이 울던 소리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것 같기도 했고, 유리가 갈라지는 것 같기도 했던 그 소리. 그 소리만큼은 지금도 귀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이상했다.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 부분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애초에 내가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처음부터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던 걸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그런데 익숙하다는 감각과, 그게 정말 내 얼굴이라는 확신 사이에 미묘한 틈이 있었다. "강태산."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낯설었다. 분명 내 이름인데, 입에서 낯선 단어처럼 흘러나왔다. 발음은 정확했다. 혀도 정확한 자리에서 정확한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내가, 그 이름의 주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 번 더 불렀다. "강태산." 여전히 낯설었다. 세 번째로 불렀을 때는, 이름이 아니라 그냥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거울에서 시선을 돌렸다. 오전 7시 30분. 식당에서 차유나와 마주쳤다. 그녀는 식판을 들고 내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나를 흘끔 살폈다. "안색이 안 좋아요." "잠을 잘 못 잤어." "뭐 걱정 있어요?" 걱정이라는 말에, 순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걱정.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텅 빈 느낌이 걱정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걱정이라면 무언가를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어야 할 텐데, 나는 지금 잃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실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건 걱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걱정이 아니면, 이건 대체 무엇인가. "괜찮아." 짧게 대답했다. 차유나는 숟가락을 든 채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길었다. "진짜 괜찮은 거예요?" "그래." "이하늘 씨, 요즘 좀 이상해요." "뭐가." "모르겠어요. 그냥... 눈빛이."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국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 묻지 않았지만, 눈빛에 의심이 남았다. 나는 그 의심을 피하듯 밥을 입에 넣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씹고 있었고, 삼키고 있었는데, 그게 짠지 매운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오전 10시. 수업 시간, 정하은이 마정석 감정 실습을 시켰다. 교탁 앞에 선 정하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오늘은 마정석의 미세 마력 흐름을 손끝으로 감지하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각자 배부된 마정석을 손에 쥐고, 마력의 흐름을 느껴보세요." 나는 마정석을 손에 쥐고 마력을 느껴보려 했다.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새벽 게이트에서 느꼈던 그 선명함과 달랐다. 그때는 마력이 손끝에서 명확한 온도와 질감으로 존재했다. 지금은 어딘가 흐릿하고, 멀게 느껴졌다. 마치 두꺼운 유리 너머로 만지는 것 같았다. 정하은이 다가와 내 손을 흘끔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손끝에 잠시 머물렀다. "손끝에 미세한 마력 흔적이 있네요." 심장이 조여들었다. 숨을 멈췄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내쉬었다. "어제 실습장에서 만졌던 거예요." "어제는 실습이 없었는데." 정하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슬쩍 이쪽으로 모였다가 흩어졌다. "...혼자 연습했어요." 정하은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별말 없이 지나갔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다음 학생 앞에서 멈추는 걸 들으면서도, 나는 그 시선이 오래도록 등에 남는 것을 느꼈다. 등 뒤에 뭔가 얹혀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무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떨쳐낼 수도 없었다. 오후 2시. 실습장 구석에서 등불을 다시 꺼내보았다. 빛은 여전히 은은했다. 분명 잘 만들어졌다. 빛의 색도, 밝기도, 처음 완성했을 때와 똑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빛을 보면서도, 처음 완성했을 때의 그 감격을 다시 느끼지 못했다. 기억은 있었다. 등불을 만들던 손의 움직임. 원석을 다듬을 때 느껴졌던 미세한 진동. 완성된 순간, 손바닥에 번지던 열기. 그 모든 장면이 순서대로, 정확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설명할 수 없었다. 기쁨이었나. 성취감이었나. 아니면 단순한 안도였나. 그 중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도 어딘가 틀린 것 같았다. 정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답을 담을 그릇 자체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느껴야 하는데,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손끝으로 등불의 표면을 쓸어보았다. 매끄러운 감촉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감촉이 예전과 같은 온도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마룡과의 마지막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려 했다. 검이 울던 소리는 들렸다. 그 소리는 여전히 선명했다. 마치 그 소리만 특별히 어딘가에 따로 저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느꼈던 아쉬움, 그 감정의 무게는 더 이상 잡히지 않았다. 아쉬움이 있었던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감정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손으로 그려낼 수가 없었다. 두려워졌다. 정확히는, 두려워해야 하는데 그 두려움조차 흐릿했다. 두려움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려움 비슷한 형태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 두려움인지, 아니면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를 억지로 채운 다른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등불을 손에 쥔 채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후 5시.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이하늘] [등급: E] [스킬: 융합 - 미분류] [감정 반응 저하 감지: 2단계] 마지막 문구가 눈에 박혔다. 감정 반응 저하 2단계. 언제 1단계를 지나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등불을 완성한 직후부터 침식은 이미 시작됐고, 상태창이 그 변화를 뒤늦게 수치로 표시한 것인지도 몰랐다.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융합의 대가는 물건이 완성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감정과 기억을 계속 깎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융합 스킬을 쓸 때마다, 뭔가가 대가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강태산의 기억, 혹은 감정, 아니면 둘 다. 손이 떨렸다. 상태창을 붙잡고 있는 손끝이 차가워졌다. 방 안의 온도는 그대로였는데, 손끝만 유난히 서늘했다. 그만두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해답처럼 보였다. 융합을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학비는 여전히 D-5. 그 숫자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D-5. 그 숫자 뒤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나는 이미 몇 번이고 계산해본 적이 있었다. 등급을 올릴 방법도, 돈을 구할 방법도, 결국 이 스킬뿐이었다. 다른 길이 있었다면 진작 찾았을 것이다.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던 거였다. 나는 상태창을 닫았다. 닫힌 화면 위로 내 손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후 8시. 나는 실습장에 남아 등불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나사를 하나씩 풀어내는 동안, 손이 기억하는 감각을 되짚었다. 이 나사는 어느 방향으로 돌렸었지. 이 원석은 어느 각도로 끼웠었지. 혹시 다시 조립하면, 잃어버린 것이 돌아올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시도였다. 등불은 여전히 등불일 뿐이었다.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도, 빛은 똑같은 밝기로 켜졌다. 마룡의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실습장 조명을 끄고, 등불 하나만 켜놓은 채로 앉아 있었다. 바깥에서 다른 학생들이 지나가는 발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누군가 웃는 소리도 들렸다. 그 웃음소리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나는 등불을 손에 쥐고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잘 가늠되지 않았다. 오후 9시 30분. 방으로 돌아가는 길, 게시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음 주 실전 훈련 일정 공고] [E등급 실습 게이트 - 감독관 동행] 공고문 아래에는 날짜와 시간, 그리고 참가 인원 명단이 붙어 있었다. 내 이름도 그 안에 있었다. 실전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감독관이 동행한다면, 감시가 더 심해질 것이다. 정하은이 이미 손끝의 마력 흔적을 눈치챘다는 걸 생각하면, 감독관 앞에서 융합을 쓴다는 건 훨씬 더 위험한 일이었다. 동시에, 그건 기회이기도 했다. 정식으로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 정식 절차를 거친 게이트라면, 몰래 숨어들 필요도 없고, 발각될 위험도 줄어든다. 그 안에서 마정석을 얻을 수 있다면, D-5라는 숫자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공고문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만둘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계속할 것이다. 그건 처음부터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그 대가가 얼마나 커질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번에는 무엇을 잃게 될까. 기억의 조각 하나 정도일까. 아니면 지금 남아 있는 감정의 마지막 흔적일까. 나는 공고문에서 눈을 떼고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등불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보며 눈을 감았다. 감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점점 비어가고 있었다.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채우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텅 빈 느낌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아무것도 견딜 필요가 없었다. 두려움도, 죄책감도, 상실도, 전부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 정확히는, 두려워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두려움이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다는 사실이.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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