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오전 6시 40분.
양성원 실습장은 아직 조용했다.
불도 절반만 켜져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도착해 벽에 걸린 재료 목록을 훑었다.
[마정석 - 개당 8만 원]
[정제 광석 - 킬로그램당 5만 원]
[게이트 입장 보증금 - 50만 원]
숫자를 볼 때마다 속이 뒤틀렸다.
이하늘의 통장 잔고는 3만 2천 원.
그게 전부였다.
학비 214만 원, 기한 D-9.
계산이 안 맞았다.
아무리 굴려도 안 맞았다.
3만 2천 원으로 214만 원을 만드는 방법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실습장 안쪽, 낡은 작업대 앞에 앉았다.
버려진 부품 상자를 뒤졌다.
녹슨 나사, 깨진 회로판, 마력이 다 빠진 마정석 조각들.
전부 폐기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강태산의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망치질의 리듬, 열처리의 온도, 마력 각인의 순서.
쇠를 두드릴 때의 무게감, 불꽃이 튀는 각도, 담금질 직전의 냄새까지도.
이하늘의 머리가 알고 있었다.
전류, 회로, 저항, 전압.
전자기학 교과서의 문장들이 활자 그대로 떠올랐다.
두 지식이 겹쳐졌다.
마정석 조각에 이하늘의 회로 지식을 얹으면, 마력을 더 오래 저장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되는 생각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신할 시간도 없었다.
손이 움직였다.
부품을 조립하는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회로판 위에 마정석 조각을 얹고, 각인 순서를 손끝으로 되짚었다.
하나, 둘, 셋.
순서가 틀리면 마력이 새어나간다.
강태산의 손끝이 그걸 알고 있었다.
"뭐 하는 거예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놀라서 부품을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마정석 조각이 데구르르 굴러갔다.
차유나였다.
같은 편입생, 열다섯 살, 갈색 단발머리, 눈이 크고 겁이 많은 아이.
소매가 긴 실습복을 입고, 늘 실습장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필기만 하던 학생.
"그냥, 정리하고 있었어."
"이 시간에요?"
차유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이거 다 폐기물인데."
"...그렇지."
대답이 부자연스러웠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졌다.
차유나는 더 캐묻지 않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뒤돌아보는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그 눈빛이 등 뒤에 오래 남았다.
혹시 봤을까.
회로판 위에 얹힌 마정석 조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떨어진 조각을 주워 서둘러 상자 안에 숨겼다.
오전 8시 15분.
정규 수업이 시작됐다.
정하은이 실습장 앞에 섰다.
검은 실습복 위에 흰 가운을 걸친 모습이, 매번 같은데도 매번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은 마정석 감정 실습이에요."
정하은이 상자를 열었다.
등급별로 나뉜 마정석들이 쏟아졌다.
색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무게가 달랐다.
"E등급 학생은 저등급 마정석만 다룰 수 있어요. 상위 등급은 손대지 마세요."
규칙이 명확했다.
등급이 낮으면 재료도, 게이트도, 전부 제한됐다.
숨 쉬는 것까지 등급대로 나뉘는 기분이었다.
나는 저등급 마정석을 손에 쥐었다.
마력이 거의 없는, 죽어가는 돌이었다.
손바닥 위에서 미약하게 떨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이걸로는 아무것도 못 만든다.
확신이 들었다.
옆자리 학생들은 저마다 열심히 감정 결과를 받아 적었다.
나는 받아 적을 게 없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저등급 마정석은 저등급 마정석이었다.
등급이라는 벽은 실습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오후 3시 40분.
수업이 끝났다.
나는 실습장에 남아 낡은 부품을 계속 만졌다.
회로 설계를 몇 번이나 고쳤다.
저항값을 바꾸고, 각인 순서를 바꾸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정하은이 지나가다 걸음을 멈췄다.
"이하늘 학생."
"네."
몸이 굳었다.
"요즘 좀 이상해요."
심장이 조여들었다.
"뭐가요."
목소리를 최대한 평온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말투도, 손놀림도. 예전에는 실습을 이렇게 진지하게 하지 않았잖아요."
정하은의 눈이 나를 살피고 있었다.
스캔하듯, 위아래로.
"의욕이 생겨서요."
"의욕만으로는 등급이 오르지 않아요."
정하은이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 경고의 무게가 실렸다.
"게이트 무단 접근은 즉시 퇴교, 자격 박탈이에요. 명심해요."
그 말을 남기고 정하은은 실습장을 나섰다.
경고였다.
확실한 경고였다.
내가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걸까.
아니면 그냥 일반적인 주의였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했다.
나는 부품을 내려놓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작업대 위에 늘어놓은 부품들을 다시 상자에 담았다.
서두르지 않으려 했지만, 손끝이 자꾸 엇나갔다.
나사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줍는 손이 느렸다.
오후 7시 20분.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게시판 앞에 학생들이 몰려 있었다.
누군가 웃으며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비공개 등급 게이트 - 폐쇄 예정]
[출입 통제 임시 해제 - 관리자 부재 시간대]
낡은 공고문이었다.
날짜를 보니 이미 지난 것 같았다.
종이 끝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관리자 부재 시간대.
출입 통제 해제.
낮은 등급의 게이트, 관리가 소홀해진 시간, 몰래 들어갈 수 있는 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건 기회였다.
동시에 두려움도 밀려왔다.
적발되면 끝이다.
퇴교, 자격 박탈, 이하늘의 삶 전체가 끝난다.
낮에 정하은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게이트 무단 접근은 즉시 퇴교.
자격 박탈.
명심해요.
경고를 들은 날, 경고를 무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그런데도 나는 공고문을 다시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날짜, 시간대, 위치.
214만 원.
남은 기한 9일.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도, 대출도, 뭐 하나 이하늘의 상황에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물건을 만들면, 팔면, 돈이 된다.
강태산의 손이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망치질 몇 번으로 죽어가는 돌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회로 지식으로 그 숨을 오래 붙잡아둘 수 있다면.
그게 돈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문제는 재료였다.
저등급 마정석으로는 시장에 내놓을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
상위 등급 마정석이 필요했다.
그리고 상위 등급 마정석은, 상위 등급 게이트에서만 안전하게 구할 수 있었다.
낮은 등급의 게이트라도 상관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저등급보다 나은 재료가 있다면.
나는 공고문의 위치를 몇 번이고 눈에 새겼다.
오후 9시 5분.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상태창을 다시 불러냈다.
[이하늘]
[등급: E]
[특이사항: 감지되지 않는 스킬 1개]
감지되지 않는 스킬.
그게 뭔지 알아내야 했다.
확인할 방법은 하나였다.
직접 써보는 것.
그러려면 게이트가 필요했다.
창밖으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차유나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누군가 게임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 저녁 메뉴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평범한 삶.
나는 잠깐 그걸 부러워했다.
저 목소리들 속에 섞여 들어가면 어떤 기분일까.
학비 걱정 없이, 등급 걱정 없이, 그냥 오늘 먹은 저녁 메뉴를 두고 웃을 수 있다면.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부러워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서랍에서 낡은 지도를 꺼냈다.
입학 안내서에 딸려온 시설 배치도였다.
접힌 자국이 여러 번 나 있었다.
비공개 게이트로 짐작되는 지점에 손끝으로 원을 그렸다.
관리자 부재 시간대.
언제일까.
공고문에는 정확한 시간이 적혀 있지 않았다.
관리자의 순찰 루틴을 알아내야 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정보였다.
직접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답을 찾아야 했다.
손끝이 지도 위에서 멈췄다.
머릿속으로 순찰 시간대를 추측해봤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 저녁 식사 시간, 야간 점검 시간.
그 틈새 어딘가에 답이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방문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발소리였다.
나는 급히 지도를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닫는 손이 다급했다.
발소리가 방문 앞에서 멈췄다.
숨을 죽였다.
시간이 멎은 것 같았다.
1초, 2초, 3초.
문 너머의 인기척이 사라지지 않았다.
노크는 없었다.
대신, 문틈 아래로 그림자가 잠시 어렸다가 사라졌다.
누구였을까.
심장이 목까지 올라와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