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윤지아...?"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눈을 두 번쯤 깜빡였다.
'진짜 윤지아야?'
착각인가 싶어서 다시 봤는데도 그대로 윤지아였다.
"오랜만이라는 말로는 부족하지." 그녀가 픽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2년 만이었다.
같은 초심자 교육을 받았던 시절엔 둘 다 아무것도 아닌 신입이었다.
그때는 같은 조에서 같은 훈련용 목검을 나눠 들고, 같은 강사한테 똑같이 갈굼당하던 처지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A급, 나는 여전히 무소속의 C-였다.
'이게 사람 인생 격차구나.'
'같은 출발선에서 뛴 것 같은데 왜 나만 아직 신발끈 매고 있냐.'
씁쓸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소문 듣고 왔어."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여자 홀리는 스킬 보유자라며, 그게 너라고?" 그녀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윽, 여기까지 퍼진 건가.
'소문이란 놈은 왜 항상 제일 창피한 버전으로만 퍼지는 걸까.'
"오해예요." 나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진짜 오해라니까요, 진짜." 나는 다시 강조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던 것 같다.
"알아, 알아." 그녀가 손을 저으며 웃었다.
"너 그럴 배짱 없잖아. 옛날에도 여자애들한테 말도 못 걸던 애가." 그녀가 낄낄거렸다.
그 말에 나는 그때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훈련장 구석에서 물병 좀 빌려달라는 말도 세 번 연습하고 갔던 흑역사가.
'제발, 제발 거기까진 얘기하지 마.'
은채와 해린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뭐야, 그 눈빛은.
호기심 반, 놀림 반의 눈초리였다.
'옛날 얘기는 좀 그만해줘.'
나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윤지아는 이미 신났는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저는 서은채예요. 도윤 씨 클랜 동료입니다." 은채가 자기소개를 했다.
목소리에 힘이 딱 실려있었다.
"강해린이에요." 해린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늘 그렇듯 짧고 담백한 인사였다.
윤지아는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한 번 왔다갔다했다.
"얘들 데리고 신기록 세운 게 진짜였구나." 그녀가 중얼거렸다.
"백룡 클랜 쪽에도 벌써 소식 들어갔어."
심장이 덜컹했다.
'백룡 클랜까지?'
국내 최상위권 클랜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이름만 들어도 등급이 다른 세계 얘기 같았다.
"그렇게 큰 데까지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목이 살짝 말라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D급 던전 신기록, 그것도 절반 이상 시간을 단축시켰으니까."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윗선에서 관심 가질 만하지."
"윗선"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
윤지아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눈빛이 스캐너처럼 위아래로 훑는 게 느껴졌다.
"근데 진짜 신기하네." 그녀가 말했다.
"넌 그때도 전투력이 형편없었는데, 여전히 형편없는데, 결과는 완전히 다르잖아."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콤보로 팩폭 안 날려도 되는데...'
"무슨 스킬 각성한 거야?" 그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눈을 빛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이미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숨긴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여기서 얼버무려봤자 나중에 더 이상한 버전으로 소문이 돌 게 뻔했다.
'차라리 제대로 아는 사람한테 설명하는 게 낫겠다.'
나는 스킬의 진짜 원리를 설명했다.
신뢰도에 따라 계수가 달라지는 버프 스킬, 그리고 신뢰가 없으면 거의 발동조차 안 되는 치명적인 페널티까지.
말하면서도 스스로 좀 어이가 없었다.
'설명하면 할수록 사기템인지 저주받은 템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윤지아는 한참 듣더니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휘이-" 소리를 냈다.
"그거 완전 양날의 검이네." 그녀가 감탄했다.
"신뢰 없으면 쓰레기, 신뢰 있으면 사기." 그녀가 정리했다.
'요약 진짜 칼같이 하네.'
"근데 그 신뢰라는 거, 시간이 오래 걸려?" 그녀가 물었다.
"경우에 따라 달라요. 얘들은 며칠 만에 확 올랐고요." 나는 은채와 해린을 가리켰다.
은채가 그 말에 살짝 뿌듯한 표정을 지었고, 해린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그럼 나도 좀 태워봐." 윤지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팔을 걷어올리며 손목을 내밀었다.
마치 헌혈이라도 하러 온 사람 같았다.
"저요?" 나는 당황했다.
"우리 옛날에 같이 훈련받았잖아. 신뢰도가 제로는 아닐 거 아니야." 그녀가 팔을 걷어올렸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2년 전이라도, 함께 보낸 시간이 있긴 했다.
같이 밤새 과제하고, 같이 훈련 조교한테 갈굼당하고, 같이 매점에서 삼각김밥 나눠 먹던 시간들.
'그게 어디 가진 않았겠지.'
나는 조심스레 스킬을 발동시켰다.
손끝에서 익숙한 감각이 훅 퍼져나갔다.
[대상: 윤지아 (A급) / 신뢰도: 중간 / 버프 계수: 0.58배]
숫자를 보고 나도 놀랐다.
'생각보다 높은데.'
2년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예전에 쌓인 신뢰라는 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 모양이었다.
인간관계도 결국 적금 같은 건가, 하고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오, 뭔가 느껴진다." 윤지아가 손끝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마력 순환이 확실히 빨라졌어."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A급 탐색자한테도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 진짜 물건이었네.'
나는 이제야 이 스킬의 진짜 가치를 실감했다.
지금까지는 은채와 해린한테만 써봐서 감이 없었는데, A급한테도 통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
"이도윤, 너 이거 제대로 키우면 어마어마해질 거야." 윤지아가 정색하고 말했다.
방금까지 낄낄대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백룡 클랜 쪽에서도 관심 있어 할 거고, 아마 다른 상위 클랜들도."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조심해. 이런 종류의 능력은, 좋게만 보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야." 그녀가 경고했다.
뭔가 심각한 어조였다.
카페 안 소음이 순간 멀게 느껴졌다.
"무슨 뜻이에요?" 나는 되물었다.
"이런 버프 스킬, 잘못 알려지면 사람들이 널 이용하려고 할 거야." 그녀가 설명했다.
"강제로라도 데려가려는 클랜도 있을 수 있고." 그녀가 낮게 덧붙였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금까지는 소문이 골칫거리였는데, 이제는 진짜 세력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소문 정도야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는데, 이건 좀...'
은채와 해린의 표정도 덩달아 굳었다.
*
"그래서 말인데." 윤지아가 화제를 돌렸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손을 탁 치며 말했다.
"클랜, 정식으로 만들 거면 거점부터 확실히 잡아." 그녀가 조언했다.
"내가 아는 좋은 건물 하나 있어. 예전에 소규모 클랜이 쓰던 곳인데, 지금 비어 있거든." 그녀가 말했다.
은채와 해린이 동시에 눈을 반짝였다.
두 사람 다 아까 굳었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진짜요?!" 은채가 목소리를 높였다.
몸까지 살짝 앞으로 기울이는 게, 벌써 그 건물을 눈앞에 그리고 있는 눈치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 윤지아가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나중에 백룡 클랜이랑 합동 던전 한 번 뛰어줘." 그녀가 씩 웃었다.
'이거 완전 상위 클랜한테 눈도장 찍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C-급 무소속 클랜이 국내 최상위권 클랜이랑 합동 던전을 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그림이었으니까.
'근데 지금 이 조건,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나는 살짝 불안했지만, 지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거점이 생긴다는 건, 이제 진짜 클랜다운 클랜이 된다는 뜻이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우리는 거점을 확보하고, 클랜 창설 절차를 밟기로 했다.
은채와 해린은 벌써 클랜 이름을 두고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신뢰의 검, 어때요?" 은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너무 유치해." 해린이 단칼에 잘랐다.
"그럼 언니가 하나 말해봐요." 은채가 볼을 부풀렸다.
윤지아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방금까지의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진 얼굴이었다.
"근데 이도윤." 그녀가 낮게 불렀다.
목소리가 확연히 달라졌다.
"협회 상층부에서도 벌써 네 얘기가 돌고 있대."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방금까지 들떠있던 은채와 해린의 대화 소리도 갑자기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상층부요? 누가요?" 나는 되물었다.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조금 다급해졌다.
윤지아는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봤다.
시선이 한동안 창문 밖 어딘가에 고정돼 있었다.
"협회장실 쪽에서, 네 스킬 정보를 따로 요청했다는 얘기가 있어."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페 안이 갑자기 너무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그 한마디가, 오늘 나눈 모든 대화 중에서 가장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