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약골 탐색자님, 믿어도 돼요?

1화

던전에서 나는 몬스터를 잡으러 온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잡긴 잡는데 목적이 좀 달랐다. "이 아래쪽 습지 구역에 '늪 개구리'가 나온다던데..." 나는 지도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늪 개구리 뒷다리는 어느 던전 요리 채널에서도 다루지 않은 미개척 식재료였다. '프랑스 요리에 그르누이 요리가 있다면, 던전 요리엔 늪 개구리 튀김이 있어야지.' 남들은 몬스터를 잡아서 각성석을 뽑고 등급을 올리는데, 나는 몬스터를 잡아서 레시피를 짰다. 전투력 C-. 이게 내 정식 등급이다. 웬만한 초심자보다 약하다는 뜻이고, 던전협회 사람들 표현으로는 "쟤 아직도 살아있네" 소리를 듣는 부류다. 그런데도 나는 던전 정보 수집과 요리라는, 누가 봐도 탐색자스럽지 않은 취미에 진심이었다. 어차피 파티도 못 짜는 몸이니까. 정확히는, 짜면 안 되는 몸이었다. 여자 탐색자랑 파티를 짜면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남자 하나에 여자 여럿, 거기서 뭔가 이상한 스킬이라도 쓰면 인터넷에 조리돌림 당하는 거 순식간이다. 나는 아직 그 스킬의 정체도 몰랐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알았다. '혼자 다니는 게 편해.' 그래서 나는 늘 솔로였다. 인지도? 그런 거 없었다. 협회 등록 명부에서 내 이름 옆엔 그냥 '무소속'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가끔 후배 탐색자들이 명부를 보고 물어본다고 했다. "이도윤이 누구예요?" 그러면 선배들이 대답한다고 했다. "아, 그 요리하는 애." 몬스터 이름보다 요리 이름으로 먼저 기억되는 탐색자. 이게 내 포지션이었다. * 습지 던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발밑이 질척였다. 장화 신고 오길 잘했다. 던전 벽면은 이끼가 덮여서 미끌미끌했고, 공기는 눅눅한 곰팡내가 났다. '이 습도, 이 냄새... 딱 좋은 숙성 환경인데.' 나는 배낭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습도까지 체크했다. 옆에서 보면 완전히 정신 나간 놈처럼 보였을 거다. 실제로 몇 번 다른 탐색자한테 그런 눈빛을 받은 적도 있었다. '뭐, 상관없어. 어차피 나 혼자니까.' 습지 구역으로 내려가는 길,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첨벙, 첨벙, 그리고 다급한 숨소리. "저기요, 누구 없어요?!" 여자 목소리가 울렸다. '뭐야, 이 시간에 여기서 사람이 나?' 습지 던전은 원래 등급이 낮아서 초심자들이 라이센스 시험 삼아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래도 이 구역은 좀 깊었다. 초심자가 여기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는데. '설마 길 잃은 건가.' 이런 던전에서 길을 잃으면 진짜 답이 없다. 습지는 지형이 다 비슷비슷해서 나침반 없인 방향 감각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나도 초심자 때 한 번 여기서 세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빙빙 돈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가보니 한 여자애가 늪 개구리 세 마리한테 포위당해 있었다. 교복 같은 협회 초심자용 방어구, 등에 멘 힐러용 지팡이. 딱 봐도 F급이었다. "거기 서 계시지 말고 도와주세요!" 그녀가 소리쳤다. 나는 순간 계산기를 돌렸다. '내 전투력으로 늪 개구리 세 마리? 하나도 못 이겨.' 늪 개구리는 등급표상으로는 최하급 몬스터지만, 세 마리가 동시에 덤비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껍질은 단검으로 안 뚫리고, 뒷다리 근력은 웬만한 격투기 선수 하체보다 낫다. 한 마리도 버거운데 셋이라니. 그런데 발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해보니 이게 문제였다. 나는 늘 머리보다 발이 빠른 타입이었다. 학창시절 성적표에도 늘 그렇게 적혀 있었다. '행동은 빠르나 신중함이 부족함.' 담임선생님, 지금 이 순간을 보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이 몸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 나도 참..." 나는 자조하며 단검을 뽑았다. 푹, 첨벙! 개구리 한 마리 껍질에 칼끝이 튕겼다. 윽... 역시 방어력이 만만치 않았다. '이대로 죽으면 저 늪 개구리 뒷다리 요리는 물 건너간다.' 그 와중에도 나는 요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니 진짜 정신이 나갔다는 소리를 듣는 거였다. 늪 개구리 한 마리가 혀를 날려 내 다리를 감았다. 끈적한 점액질이 순식간에 종아리를 타고 올라왔다. "으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첨벙, 진흙탕에 그대로 처박혔다. '아, 이거 물티슈로도 안 지워지는 냄새다.' 이 와중에 세탁 걱정을 하는 나 자신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개구리가 뛰어올라 내 어깨를 노렸다. 나는 몸을 굴려 겨우 피했다. 첨벙, 첨벙, 진흙이 얼굴까지 튀었다. 세 번째 개구리는 아예 여자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안 돼요!" 그녀가 지팡이를 들어 막았지만, 초심자 힐러용 지팡이는 방어 기능이 거의 없었다. 퍽, 소리가 나며 그녀가 뒤로 밀려났다. [경고: 생명력 위험 수준 도달]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아니, 지금 그거 안 알려줘도 다 아는데. 이 시스템은 항상 이렇게 뒷북이다. 이미 온몸이 진흙과 점액으로 범벅이 된 다음에 "위험합니다"라고 알려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차라리 처음부터 "이 몬스터, 당신 상대 아님"이라고 띄워주지.' 그 순간, 그녀가 내 등 뒤로 몸을 던지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제가 엄호할게요!" 그녀가 외쳤다. 초심자 힐 마법이 내 상처에 스쳐 갔다. 따뜻한 감각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히든 특성 각성: 《인연의 축복》] 눈앞에 처음 보는 문구가 박혔다. '뭐야 이건.' [대상: 서은채 (F급) / 신뢰도: 낮음 / 버프 계수: 0.12배] 숫자가 뜨자마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버프 계수 0.12배라니, 이거 완전 시식용 미니 사이즈 아닌가. 편의점 시식 코너에서 나눠주는 소시지 한 조각 정도의 효율. 그래도 그녀의 힐 마법이 미묘하게 밝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작은 빛무리가 개구리 한 마리를 밀어냈다. 퍼엉, 작은 폭발음과 함께 개구리가 붕 떠서 진흙탕에 처박혔다. '오, 이거 뭔가 되는데?' 나는 얼떨결에 남은 개구리 한 마리를 향해 단검을 다시 겨눴다. 이번엔 칼끝이 튕기지 않았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제대로 들어갔다. '버프 0.12배가 이렇게 차이가 나나?' 솔직히 놀라웠다. "어? 방금 뭔가 이상했는데..."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얼른 딴청을 부렸다. "기, 기분 탓 아닐까요?" 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여자 버프 스킬이잖아. 이거 알려지면 나 완전 끝장인데.' 그 짧은 순간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속보: 여성 조종 스킬 보유자 등장] 같은 자막까지 상상하니 아찔했다. 거기에 댓글창까지 상상이 됐다. '이 새끼 파티 절대 짜면 안 됨', '여캐들 조심하세요', '협회는 뭐하냐' 같은 문구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절대. 절대 들키면 안 돼.' 나는 이를 악물고 남은 개구리를 마무리했다. 첨벙, 진흙탕 위로 개구리 사체가 떠올랐다. 이걸로 세 마리 다 처치. 어쨌든 늪 개구리들은 우리 둘이 어떻게든 처치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힐과 내 발악이 반씩 섞인 처치였다. 솔직히 8대 2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녀 쪽이 8.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녀가 꾸벅 인사했다. 허리를 90도로 접는 인사였다. '아니, 살린 건 오히려 그쪽인데.' 민망해서 손을 내저었지만 그녀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서은채예요. F급 초심자, 힐러 지망이에요." "아, 예... 저는 이도윤입니다." 나는 짧게 답했다. '이름은 알려줘도 괜찮겠지, 뭐.' 어차피 협회 명부에 무소속으로 박혀 있는 이상 이름 하나 알려준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었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뭔가 위험한 눈빛이었다. 마치 흥미로운 실험체를 발견한 연구원 같은 눈빛. 이런 눈빛, 예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주로 협회 연구팀 사람들이 이상한 스킬 가진 탐색자 볼 때 짓는 표정이었다. '설마, 얘도 그런 쪽인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저기, 방금 그 스킬... 저 도와주려고 쓰신 거죠?" 그녀가 물었다. "아, 아뇨! 그건 그냥..." 나는 손을 내저었다. "신기했어요. 힐 마법이 갑자기 세졌거든요." 그녀가 눈을 빛냈다. 망했다. 이 애, 뭔가 감이 좋다. 보통 F급 초심자면 자기 힐 마법 세기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애는 그 미세한 변화까지 딱 잡아냈다. '이거 위험 신호다.'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저, 이만 가볼게요. 조심히..." 나는 몸을 돌렸다. 한 걸음, 두 걸음. 진흙에 발이 푹푹 빠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잠깐만요!" 그녀가 내 소매를 붙잡았다. 작은 손인데 힘이 셌다. 생각지도 못한 완력이었다. '이거 힐러 맞아? 근력 스탯도 찍은 거 아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슬쩍 힘을 줘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힘, 뭔가 이상한데.' 등에서 다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상황, 어쩐지 순탄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