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약골 탐색자님, 믿어도 돼요?

4화

"신기록 축하드립니다!" 협회 직원이 활짝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금색 테두리까지 둘러져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상장 수준인데.' "클리어 영상, 협회 게시판에 공식 등록해도 될까요?" 그가 물었다. "아... 예, 뭐..." 나는 어물쩍 대답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던전 클리어 기록이야 자랑스러운 거고, 협회에서 알아서 홍보해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꼭 시험 끝나고 답 맞춰볼 때 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다 맞은 것 같은데, 뭔가 하나 걸리는 게 있는 그 기분.' 나는 애써 그 예감을 무시하기로 했다. * 그 예감은 딱 사흘 만에 현실이 됐다. "이거 봤어? 이 클랜 없는 팀, 완전 미쳤던데." 협회 커뮤니티 게시판이 난리였다. 영상 조회수가 순식간에 십만을 넘겼다. 십만이면 웬만한 아이돌 뮤직비디오 초동 조회수 아닌가. 댓글창은 처음엔 순수한 감탄으로 가득했다. [와 저 힐러 결계 진짜 사기 아니냐] [파이어볼 데미지 미친] [저 팀 클랜 어디임? 스카웃하고 싶다] 그런 댓글들이었다. 나는 흐뭇하게 스크롤을 내렸다. '그래, 이런 반응이지. 이게 정상이지.' 댓글 하나하나가 마치 성적표에 붙은 참 잘했어요 스티커 같았다. 그런데 하루 지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근데 저 남자 뭐야? 뒤에서 손짓만 하던데] [저거 버프 스킬 아니야?] [여자 둘 데리고 다니면서 뭐하는 건지] [설마 저거 매혹 계열 스킬 아니냐] 댓글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쏠렸다. '아, 시작됐다.' 나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예상했던 그림, 그것도 최악의 버전이었다. 댓글 밑에는 좋아요 숫자가 무섭게 쌓이고 있었다.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며 커지는 걸 실시간 중계로 보는 느낌이었다. '이러다 나 스킬 이름이 매혹 계열로 굳혀지겠는데.' 《인연의 축복》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봐야 이미 늦은 것 같았다. * 다음 날, 협회 게시판에 어떤 익명 게시물이 올라왔다. [속보: 여자 홀리는 스킬 보유자, 초심자 두 명 데리고 다녀]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작성자는 던전에서 우리를 촬영했던 그 탐색자 중 하나로 보였다. 글 내용은 대부분 왜곡이었다. 버프 스킬을 마치 정신 지배 스킬처럼 묘사했다. 심지어 "저 여자들 표정이 이상했다, 뭔가에 조종당하는 것 같았다"는 문장까지 있었다. '조종을 당했다니, 그럼 나도 리모컨 하나쯤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댓글창은 이미 반쯤 확신에 찬 사람들로 가득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저런 애들 꼭 조심해야 함] [협회는 뭐하는지 저런 스킬 규제 안 하나] 나는 스크롤을 내리다가 손이 멈췄다. '이게 진짜 여론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사실 하나 왜곡되면, 그 위에 열 개의 억측이 쌓이는 게 순식간이었다. "이거 완전 헛소문이잖아요!" 은채가 화면을 보며 분개했다. 그녀는 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저 진짜 이런 스킬인 줄 알았으면 안 들어갔어요, 도윤 씨가 무슨 조종자인 것처럼 써놨는데." 해린도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쓴 재판 피고인처럼 보였다. 나는 조용히 화면을 응시했다. '이게 내가 그렇게 조심했던 이유였는데.' 버프 계열 스킬을 가졌다는 걸 처음부터 숨기려 했던 것도, 결국 이런 그림이 나올까봐서였다.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 그날 오후, 협회 사무실 앞에서 우리 셋은 한 남자와 마주쳤다. 허름한 방어구를 입은, 등급이 낮아 보이는 탐색자였다. 방어구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있는 걸 보니 실전 경험은 있는 모양이었지만, 딱히 강해 보이진 않았다. "어이, 너네가 그 유명한 팀이라며?" 그가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목소리에 이미 술 냄새가 살짝 섞여 있었다. '낮부터 이러시는 겁니까.' "근데 나도 좀 예뻐해 주면 안 되나?" 그가 은채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은채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목소리가 순간 확 높아졌다. "이 스킬, 여자 홀리는 거 아니야? 그럼 나도 좀 당해보고 싶은데." 그가 낄낄대며 해린 쪽으로도 손을 뻗었다. 해린이 얼굴을 굳히며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손끝에서 아주 미세하게 열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저거 지금 참고 있는 거 맞나.' 나는 순간 조마조마했다. 분노가 확 치솟았다.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이 자식 뭐 하는 놈이지, 여기 협회 사무실 앞인데 이렇게 대놓고?' 나는 그의 손목을 낚아채며 붙잡았다. 생각보다 손목이 가늘었다. '등급 낮다더니 근력도 딱 그 정도구나.' "어이,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나는 낮게 말했다. 겉으로는 최대한 담담하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 자식, 오해한 게 아니라 그냥 그걸 핑계로 삼는 거네.' 정말로 스킬을 오해했다면 조심스럽게 물어보든가 협회에 문의를 하든가 할 것이지, 대체 여자한테 손을 뻗는 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 핑계는 핑계일 뿐이었고, 본심은 그냥 시비였다. "뭐야, 놔봐. 너 어차피 전투력 약하다며?" 그가 비웃으며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저 소문까지 다 보고 온 모양이네.' 인터넷에 내 전투력이 낮다는 것까지 이미 퍼진 모양이었다. [《인연의 축복》 발동] 눈앞에 문구가 떴다. [대상: 서은채, 강해린 / 계수: 각각 0.51배, 0.47배] 숫자를 확인한 나는 씩 웃었다. '그래, 이 숫자가 진짜 내 전투력이지.' "저는 약해요, 맞아요."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근데 걔들은 안 그래요."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은채가 지팡이 끝으로 그의 발밑에 작은 결계를 펼쳤다. [초급 힐 마법 → 구속 결계로 변환] 빛의 사슬이 그의 다리를 묶었다. 원래는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이 그의 발목을 조여드는 걸 보니, 마법이란 정말 쓰는 사람 마음이구나 싶었다. "어, 어어?!" 그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넘어지는 자세가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해린이 손끝에 불씨를 만들며 다가섰다. 작은 불씨였지만 그 열기만큼은 진짜였다. "한 번 더 손대면, 이번엔 안 참아요." 그녀가 서늘하게 경고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결코 낮지 않았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서 자리를 떠났다. 방어구가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가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정도 실력으로 시비를 걸다니, 배짱은 인정한다.' * 그 자리에 있던 협회 직원 몇 명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그거, 다 봤어요." 한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저 사람이 먼저 시비 건 거, 저희가 증인 되어드릴게요." 그가 명함을 건넸다. 명함이 벌써 두 번째였다. '이러다 명함첩이 하나 생기겠는데.' 다행이다, 최악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소문은 이미 퍼져버린 뒤였다. 한 번 퍼진 소문은 아무리 진실을 밝혀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 그날 저녁, 우리 셋은 다시 카페에 모였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그 풍경마저 오늘 하루의 소란을 위로해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 이제 결심했어요." 은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했다. "우리 클랜 만들어요. 정식으로." 그녀가 테이블을 짚었다. "소문이 이렇게 퍼졌는데, 오히려 정식으로 등록하면 더 확실해지는 거잖아요." 그녀가 설명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정식 클랜이 되면 최소한 협회 시스템 안에서 관리를 받게 되고, 오늘 같은 시비도 훨씬 줄어들 것이었다. "저도 동의해요." 해린이 팔짱을 끼며 끼어들었다. "이렇게 소문만 나고 흩어지느니, 뭐라도 이름 걸고 하는 게 낫죠." 그녀가 덧붙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까의 서늘함은 사라지고 대신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이 두 사람 진짜 든든하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카페 안의 잔잔한 배경음악만이 그 침묵을 채웠다. 생각해보면 이유는 충분했다. 소문은 이미 퍼졌으니 숨을 이유가 사라졌다. 숨어봐야 이제 와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둘 다 능력을 증명했으니 실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오늘도 그렇지 않았나, 힐러의 결계와 화염술사의 불씨 한 방으로 시비꾼 하나를 순식간에 제압했으니. 정식 클랜이 되면 오히려 협회의 보호를 받을 수도 있다. 명함을 두 개나 받은 것만 봐도, 협회 쪽에서도 우리에게 나쁜 감정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 두 사람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게 진짜 이유였다. 이건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는 이유였지만, 가장 컸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좋아요, 클랜 만들죠." 나는 결심했다. 말을 내뱉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으면 빨리 정하는 게 낫지.' "이름은 뭐로 할까요?" 은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녀는 벌써 노트를 꺼내 뭔가를 적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린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그 순간 카페 문이 열리며 낯선 인기척이 들어왔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소리를 냈다. 키가 크고, 붉은 로브를 걸친 여자였다. 로브 자락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렸는데, 그 걸음걸이만 봐도 보통 실력자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이네, 이도윤." 그녀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컹했다. '설마.' 2년 전, 같은 초심자 교육을 받았던 얼굴이었다. 그때는 나랑 똑같이 F급이었는데. 그때는 서로 등급표를 보고 웃으며 "우리 둘 다 밑바닥이네"라며 자조하던 사이였는데. 지금 그녀의 로브 가슴팍에는 낯익은 문양이 박혀 있었다. 백룡 클랜, A급 탐색자 인증 마크였다. 그 문양을 보는 순간, 나는 목이 바짝 말라오는 걸 느꼈다. '이 타이밍에, 대체 왜.' 카페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몇 도는 내려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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