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저 계속 생각해봤는데요." 서은채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카페 테이블 위, 그녀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도윤 씨 스킬, 저 강화시켜주는 거 맞죠?" 그녀가 확신에 찬 눈으로 물었다.
숨길 수가 없었다.
어제 그 시스템 창을, 그녀도 곁눈질로 본 게 분명했다.
"...맞아요." 나는 결국 인정했다.
"근데 이거 알려지면 저 완전 매장당해요." 나는 솔직하게 덧붙였다.
'진짜야. 커뮤니티 여론재판 무섭다고.'
서은채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좋은 스킬인데." 그녀가 순수하게 물었다.
'세상에, 이 순수함 어디서 파는 거지.'
나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잘 알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강화시키는 스킬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온갖 오해가 붙는다.
제목 후보만 벌써 열 개는 떠올랐다.
[단독] 신인 헌터, 여성 파티원 조종 의혹.
[속보] '길들이기 스킬' 소유자, 협회 조사 착수.
'와, 나 이거 벌써 기사 제목까지 뽑았어.'
혼자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해받기 딱 좋은 스킬이라서요."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저 같은 걸 조종한다거나, 그런 말 나올까봐요."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안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가 말했다.
"어제 저 살려주셨잖아요. 그거면 됐어요." 그녀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와, 이 신뢰 진짜 계산 없이 하는 거야?'
나는 뭔가 뭉클했지만, 겉으로는 딴 소리를 했다.
"그렇게 쉽게 사람 믿으면 안 돼요, 세상 무서운 거 몰라요?" 나는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뉴스 안 봐요? 요즘 헌터 사기 얼마나 많은데."
"도윤 씨는 사기꾼 아니잖아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걸 왜 그렇게 확신하지, 무섭게.'
*
그날 오후, 나는 협회 근처 카페에서 그녀와 다시 만났다.
정확히는, 그녀가 강제로 잡아끌었다.
"제 친구도 소개할게요." 그녀가 말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창가 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여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염색한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긴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애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강해린이에요. 얘가 은채한테 도움 준 사람이라고 해서 왔는데..." 해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별로 안 세 보이는데요." 그녀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윽, 뼈아픈 말이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거울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나 정도 되는 스펙은, 던전 앞에 줄 서면 그냥 지나가는 행인 1처럼 보일 정도였다.
"전투력 C-, 맞아요."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도 도윤 씨 스킬이 진짜 대단해요!" 은채가 끼어들었다.
"어제 제 힐 마법이 확 세졌다니까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해린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턱을 괴고,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나를 바라봤다.
"저기, 은채야." 해린이 은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요즘 이상한 사람한테 잘 속는다는 얘기, 나만 아는 거 아니지?" 그녀가 말했다.
"뭐? 야!" 은채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진짜 친한가 보네.'
싸우는 톤인데 어딘가 정겨웠다.
"말로만 하지 말고 보여줘 봐요." 해린이 팔짱을 풀며 말했다.
나는 곤란해졌다.
[《인연의 축복》 발동 조건: 대상과의 신뢰도 필요] 이게 문제였다.
방금 만난 사람한테 스킬을 쓰면 계수가 처참하게 낮을 게 뻔했다.
'0.12배도 아까 봤잖아, 이번엔 더 낮을 텐데.'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했다.
안 그러면 이 자리에서 '수상한 사람' 낙인 찍히고 끝날 판이었다.
"작은 파이어볼 하나 쏴봐요." 나는 조심스레 부탁했다.
*
해린이 카페 뒷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손끝을 슥 들어 올리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마법을 시전했다.
화륵.
작은 불덩이가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크기는 라이터 불꽃보다 조금 큰 정도, 그래도 형태는 그럴싸했다.
나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대상: 강해린 (E-급) / 신뢰도: 매우 낮음 / 버프 계수: 0.04배]
숫자를 보자마자 나는 한숨이 나왔다.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슨 신뢰가 있겠나.
계수 0.04배라니, 이건 버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불덩이가 아주 살짝 더 커졌다.
정말 살짝이었다.
육안으로 구분하려면 사진 찍어서 확대해봐야 할 정도였다.
"...이게 뭐예요?" 해린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는 진짜 확 셌어요!" 은채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진짜예요, 제가 봤다니까요!" 그녀가 두 손을 휘저으며 강조했다.
"신뢰도에 따라 계수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는 설명했다.
"쉽게 말해서, 저 안 믿으면 스킬도 별 볼 일 없다는 거죠." 나는 자조적으로 덧붙였다.
이게 바로 이 스킬의 진짜 무서운 점이었다.
남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이 스킬은 절대 만능이 아니었다.
신뢰 없이는 발동조차 미미했다.
말하자면 게임에서 친밀도 게이지를 안 채우면 스킬이 안 나가는 연애 시뮬레이션 같은 거였다.
호감도 0부터 시작해서, 이벤트 씬 하나 보려면 며칠씩 갈아야 하는 그 지긋지긋한 시스템.
'근데 그게 왜 전투 스킬에 붙어 있냐고.'
나는 이 불공평한 설계에 항의하고 싶었지만, 항의할 대상이 없었다.
시스템 창에 컴플레인 넣을 창구가 있었다면 진작에 넣었을 거다.
해린은 팔짱을 다시 끼고 나를 노려봤다.
"그러니까 결국 도윤 씨한테 잘 보이면 세지는 스킬이라는 거네요." 그녀가 정리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수상해."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시선이 슬쩍 내 쪽에서 은채 쪽으로, 다시 나에게로 오갔다.
뭔가 계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근데... 신뢰도라는 게, 어떻게 쌓는 거예요?"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나는 정직하게 답했다.
"그냥 같이 지내다 보면 쌓이는 거 아닐까요?"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진짜 모른다. 시스템 창이 친절하게 설명서를 주는 게 아니니까.'
*
은채는 신이 나서 테이블을 두드렸다.
"우리 셋이 파티 짜요!" 그녀가 제안했다.
두 눈이 반짝반짝, 벌써 결정된 것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나는 말을 흐렸다.
'파티라니, 나 아직 이 스킬 쓰는 것도 어색한데.'
"어차피 저희 둘 다 아직 소속 없어요." 은채가 몰아붙였다.
"클랜도 언젠간 만들 수 있잖아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클랜이라니,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
나는 아직 파티조차 부담스러운데 클랜 얘기가 나오니 머리가 아파왔다.
이건 마치 반 편성도 안 끝난 신학기에 벌써 수능 배치표 짜자는 소리 같았다.
해린은 못 이기겠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쟤 저럴 때 못 말려요." 그녀가 은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라." 그녀가 덧붙였다.
"야, 그거 칭찬이야?" 은채가 눈을 흘겼다.
"글쎄, 절반은." 해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둘, 진짜 오래 알고 지낸 사이구나.'
투닥거리는 텐션 자체가 다년간 쌓인 관계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
신뢰도가 쌓이면 버프가 강해진다.
버프가 강해지면 클리어율이 올라간다.
클리어율이 올라가면 정식 파티 등록이 가능해진다.
계단식으로 쌓이는 이유들이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모였다.
일단 한 번, 제대로 된 실전에서 함께 부딪혀보기로 했다.
"좋아요, 대신 낮은 등급 던전부터." 나는 조건을 걸었다.
"안전한 데로 가야 저도 마음이 편하죠."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해린이 피식 웃었다.
"쫄았어요?" 그녀가 놀리듯 물었다.
"당연하죠, 저 전투력 C-라니까요." 나는 뻔뻔하게 받아쳤다.
"목숨은 하나뿐이잖아요, 소중히 다뤄야죠." 나는 덧붙였다.
은채가 협회 게시판을 열어 목록을 훑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손가락으로 목록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여기, D급 습지 던전. 초심자 신기록 도전자들이 자주 가는 곳이래요." 그녀가 화면을 가리켰다.
순간 화면에 떠 있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최단 클리어 기록: 47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숫자였다.
그런데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우리가 저걸 깨는 일이 생길까?'
괜한 예감이었다.
해린도 화면을 슬쩍 들여다보더니, 팔짱을 낀 채 픽 웃었다.
"어차피 우리 목표는 그냥 살아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기록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고요." 그녀가 덧붙였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상하게도 그 숫자가 자꾸 눈에 밟혔다.
47분.
우리 셋이 처음으로 맞춰볼 합, 그리고 처음으로 시험받을 신뢰도.
그 모든 게 저 숫자 하나에 걸려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예감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다.
협회 접수처 앞에 도착했을 때, 게시판 위쪽에 붙은 공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해당 던전, 최근 몬스터 개체수 급증으로 등급 상향 조정 검토 중]
나는 그 문구를 두 번, 세 번 다시 읽었다.
'...이거 설마.'
옆에서 은채와 해린도 동시에 그 문구를 발견한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D급이라던 던전이, 우리가 예약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