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산 전체를 감싸며 조여드는 기척의 규모를 가늠하던 선우결은, 그것이 조금 전의 소규모 습격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위협임을 직감하며 재빨리 오두막 안으로 몸을 숨겼는데, 발끝으로 땅을 딛는 감각조차 조심스러웠던 것은 아주 미세한 진동조차 저 아래 몰려오는 이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 아래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오로지 이 좁은 오두막과 익숙한 지형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고 있었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그는 그것이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곧 쏟아부어야 할 힘을 예비하는 몸의 반응인지 스스로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정면으로 맞서는 건 무리다.'
그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오두막 주변의 지형을 되짚어 보았는데, 뒤편의 바위 지대는 크고 작은 돌들이 겹겹이 쌓여 몸을 숨기기에 유리하고, 좌측 계곡은 좁고 가팔라 다수의 인원이 동시에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였으며, 반면 정면 공터는 나무 한 그루 없이 시야가 트여 있어 원거리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에, 그는 방어의 축을 뒤편 바위 지대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일단은 저곳으로 몸을 옮기고, 그다음엔 놈들이 어느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섣불리 움직여선 안 돼.'
계산을 마친 그가 오두막 문틈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그 순간,
부스럭.
등 뒤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는데, 그곳에는 조금 전 돌아갔어야 할 다인이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나타나 있었다. 옷자락 끝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어둠 속을 얼마나 다급하게 헤치고 돌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라버니, 산 아래에 병력이 잔뜩 몰려오고 있어요. 아버지가···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숨을 헐떡이며 내뱉는 그녀의 말에 선우결은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는데, 이 소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은 오직 자신을 걱정해서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는 두려움보다 먼저 책임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왜 돌아온 거야. 여기 있으면 너까지 위험해지는데.'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대신, 그는 다인의 어깨를 붙잡으며 낮게 물었다.
"누구한테 들었느냐."
"몸종 아이가··· 부엌 쪽에서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엿듣고 저한테 알려줬어요. 오대세가에서 사람이 왔었대요. 그날 이후로 아버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다인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드는 것을 들으며, 선우결은 짧게 답했다.
"태랑이 오대세가에 적발됐다고 들었다."
짧게 던진 그 말에 다인의 눈이 크게 흔들렸는데, 그녀 역시 아버지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 뿐, 그것이 이렇게 큰 사건으로 비화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그녀는 곧 두 손으로 제 팔을 감싸 안았다.
"그럼··· 아버지가 벌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왜 병력이 여기까지···"
"그럼 오라버니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다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선우결은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하는 순간 이 상황의 무게가 너무나 선명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그녀의 손을 붙잡아 오두막 뒤편 바위 지대 쪽으로 이끌었다.
"일단 여기서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있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오지 마."
"오라버니는요? 혼자서 어쩌시려고···"
"묻지 말고 들어가."
그가 다인을 바위틈 안쪽 깊은 곳으로 밀어 넣으며 낮게 속삭이는 동안, 산 아래쪽에서부터 밀려오던 기척은 이제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할 만큼 가까워져 있었는데, 나무들 사이로 어른거리는 인영들의 숫자는 조금 전의 습격자들보다 몇 배는 많아 보였다. 발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절제되어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훈련된 자들의 움직임임을 짐작케 했다.
'이번엔 그 특수부대가 아니다.'
선우결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하며 미간을 좁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이복형제들이었고, 저마다 손에 무기나 부적을 든 채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마치 오늘만큼은 평소의 유희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해치려는 의도로 이곳에 온 것임을 짐작케 했다.
달빛에 비친 그들의 숫자를 헤아리던 선우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다섯, 여섯··· 아니, 그보다 많았다.
"서자 놈이 아직 살아 있었네."
앞장선 형제 중 하나가 이죽거리며 내뱉은 그 말에 다른 형제들이 낮게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 웃음소리 안에는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조롱과 우월감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저놈들은 아직도 모르는 건가, 지금 뭐가 벌어지고 있는지를.'
선우결은 그 여유로운 태도에서 오히려 위험한 신호를 읽어냈는데, 오대세가의 숙청령이 이미 발효된 상황에서 형제들이 이토록 태연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들이 아버지 태랑의 명을 받아 자신을 처리하려는 임무를 부여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인원을 이끌고 올 이유가 없지.'
"오늘은 다인이도 없이 혼자냐?"
그중 하나가 주변을 훑어보며 던진 질문에 선우결은 아무 대답 없이 자세를 낮췄는데, 바위틈에 숨은 다인이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등 뒤에서 미약하게 들려왔다.
'절대 나오게 해선 안 된다.'
그는 다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평소처럼 대충 상대를 밀어내는 정도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며, 양손에 서서히 황금빛 뇌전을 끌어올렸다.
위이이잉···
손끝에서 점차 세력을 키워가는 그 빛에 형제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는데, 지금까지 이들은 선우결이 힘을 완전히 드러내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낯선 광경에 본능적인 경계심을 느끼는 듯했다. 공기 중에 팽팽하게 감돌던 긴장이, 그 빛이 커질수록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뭐, 뭐야 저건."
누군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들으며, 선우결은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너희가 지금까지 나를 얼마나 몰랐는지, 이제야 알게 될 거다.'
뇌전의 빛이 그의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타고 오르며 파직, 파지직, 작은 불꽃을 튕겨냈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형제 하나가 슬쩍 뒷걸음질 치는 것을 선우결은 놓치지 않았다.
'그래, 겁이 나겠지.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다, 너희도.'
형제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자가 신호를 보내듯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선우결은 다인이 있는 바위틈 쪽을 흘긋 돌아보았다. 그녀가 무사히 몸을 숙이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저 아이만은 지킨다.'
그 다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머지 인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사방에서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쳐라!"
그 외침과 동시에,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폭풍 같은 힘이 마침내 산속 오두막을 뒤흔들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콰지지지직!
첫 번째 뇌전이 그의 손끝을 떠나 어둠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