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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장치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완전히 끊긴 후에도, 선우결은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는데, 방금 들은 몇 마디 말이 지금까지 자신을 짓눌러온 감금의 이유와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으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외숙부가 부정행위로 적발됐다면, 오대세가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쓰러진 습격자의 몸을 뒤져 조금 전의 그 기계 장치를 회수했는데, 손바닥만 한 그것은 표면에 낯선 문양이 새겨진 통신 기구였고, 다시 몇 번을 만져보아도 더 이상의 음성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거, 다시 켜지지도 않는 건가.' 그는 손끝으로 표면을 몇 번이나 눌러보고 두드려도 보았으나, 장치는 마치 처음부터 죽어 있었던 것처럼 완전히 침묵했고, 그 무거운 정적이 오히려 방금 들었던 목소리가 진짜였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습격자의 나머지 소지품도 마저 뒤졌으나, 특별할 것 없는 단검 몇 자루와 지도 조각 하나, 그리고 어느 가문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패 하나가 나왔을 뿐이었다. '이 패···,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오랜 감금 생활 동안 바깥세상의 정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그로서는 그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그것을 품속에 챙겨 넣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산 아래쪽에서부터 전해지던 새로운 진동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으나, 다행히 그 방향이 오두막을 정확히 향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선우결은 잠시 숨을 돌릴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쿠구구···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듯한 낮은 울림이었는데, 그 진동의 규칙성으로 보아 다수의 인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까 그 하나보단 훨씬 많겠지.' 그는 오두막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방비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는데, 함정 몇 개와 미리 숨겨둔 무기들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서야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 같은 시각, 지리산에서 수백 리 떨어진 오대세가 총본산의 대회의장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높은 천장 아래 반원형으로 배치된 좌석마다 각 가문의 수장들이 자리해 있었고, 그 정면 상석에는 백발을 단정히 뒤로 넘긴 노인 하나가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오대세가 총괄 가주 강목현이었다. 180센티를 훌쩍 넘는 장신에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력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그의 앞에는 두툼한 문서 뭉치가 펼쳐져 있었으며, 그 안에는 선우태랑이 지난 수년간 벌여온 부정행위의 증거들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주술구를 불법으로 유통하고,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영술 자료까지 해외에 팔아넘겼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좌측에 앉은 한 가주가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으나, 강목현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실이오." 짧고 단호한 그 한마디에, 회의장 전체가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으로 물들었다. 우측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가주 하나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강 가주, 선우가는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함께해온 지 이미 백 년이 넘었소. 그런 가문을 이리 성급히 처리하는 것이···" "성급하다니." 강목현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좌중을 향해 울렸다. "내가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덮어둔 시간이 얼마인지 아시오? 이미 삼 년 전부터 조짐이 있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어 미뤄왔던 것이오. 이제야 명백한 증거가 갖춰졌으니 움직이는 것일 뿐, 성급함과는 거리가 멀지." 그 말에 반문하던 가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한 채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고, 회의장 안의 다른 이들 역시 서로 눈치를 살피며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강목현은 문서 위에 손끝을 올려놓은 채로 잠시 눈을 감았는데, 그 짧은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15년 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강, 자네가 이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선우강,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 벗이자 제자였던 사내의 얼굴을 떠올리던 그는, 함께 검을 맞대던 젊은 시절의 기억과,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 한 조각까지 함께 떠올렸는데, 그 기억들이 지금 이 순간의 결정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내 아들을 부탁하네, 목현.'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던 벗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으나, 그 부탁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지금껏 그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이 자리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곧 눈을 뜨며 회의장을 가득 채운 좌중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선우태랑의 부정행위는 이제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오. 이는 선우가 전체가 이미 통제 불능의 상태로 부패했다는 증거이며,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소." 그의 목소리가 회의장 곳곳으로 울려 퍼지는 동안, 좌중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오대세가 사이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던 균형이 이 한 번의 선언으로 완전히 뒤흔들리려 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선우가의 전면 해체를 명한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회의장 안의 공기가 얼음처럼 굳어졌다. 몇몇 가주들은 낮게 숨을 삼켰고, 또 다른 몇몇은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이 결정이 앞으로 자신들의 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하는 듯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동시에, 선우가 혈족 전원을 신병 확보 대상으로 지정하며, 이에 저항하는 자는 예외 없이 처리할 것을 명한다." 그 명령이 회의장 벽을 타고 울려 퍼지는 동안, 강목현의 시선은 문서의 한쪽 구석, 작게 적힌 이름 하나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것은 '선우결'이라는 세 글자였다. '선우강, 자네의 아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들었네.' 그는 오랫동안 백서연의 행방을 추적해 왔으나,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을 뿐, 그 아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최근에서야 극히 단편적인 정보를 손에 넣은 상태였고, 이 아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내던져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서자로 태어나 산속에 갇혀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게 불과 얼마 전이었지. 만약 이번 작전에 그 아이까지 휩쓸린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는 문서 위에 올려두었던 손끝에 미세하게 힘을 주었으나, 이미 명령이 떨어진 이상 지금 와서 그것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지리산에 이미 병력을 투입해 두었소. 이번 작전으로 선우가의 씨를 완전히 뽑아낼 것이오." 좌측에서 낮게 흘러나온 다른 가주의 목소리에 강목현의 눈매가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그는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은 채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되는 인원을 보냈소?" 강목현이 짧게 물었다. "정예 삼백을 투입했소. 산세가 험하다 하나, 선우가의 잔당이 아무리 많아 봐야 그 정도 병력이면 충분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오." '삼백이라···' 강목현은 그 숫자를 속으로 되뇌며 잠시 눈을 가늘게 떴는데, 그 정도 병력이라면 산속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이든 결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선우결, 자네가 만약 그곳에 있다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겠군.' '이미 시작되었다면, 더 이상 늦추는 것도 무의미하겠지.' *** 산속으로 돌아온 시선은 다시 선우결에게로 향했다. 습격자들의 몸을 뒤지며 얻어낸 파편적인 정보들을 조합하던 그는, 자신이 이 오랜 세월 동안 왜 이 산속에 갇혀 있어야 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단순히 서자라서 감금된 게 아니다.' 어쩌면 외숙부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두려워했거나, 혹은 이용하기 위해 숨겨왔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 이유를 명확히 알기도 전에 산 전체를 감싸듯 밀려드는 거대한 기척이 다시 그의 감각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땅이 미세하게 떨려오는 감각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고, 그 진동은 이전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훨씬 많은 지점으로부터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이건··· 아까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번에는 조금 전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였다. 선우결은 숨을 죽인 채로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어둠 속 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흔들리는 불빛 몇 점이 산 아래쪽에서부터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불빛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그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열, 스물··· 아니, 그보다 훨씬 많다.' 그는 품속에 챙겨둔 습격자의 패를 다시 한번 움켜쥐며, 지금까지 준비해둔 것들이 이 정도 규모의 습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되물었으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낮은 발소리와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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