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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숨소리조차 죽인 채 벽에 등을 붙인 선우결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좁아져 오는 기척의 숫자를 헤아리려 했으나, 곧 그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깨달았는데, 최소한 열은 넘어 보이는 인영들이 산 전체를 원처럼 둘러싼 채로 아주 조금씩, 아주 조용히 오두막 쪽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셋···' 그는 손끝으로 벽면의 갈라진 틈을 짚으며 숫자를 헤아려보려 했지만,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와 실제 인영의 그림자가 뒤섞여 구분이 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정확한 숫자를 세는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사방에서 조여드는 압박감만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형제들 짓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러 왔던 이복형제들은 언제나 소란스럽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요란한 발걸음으로 들이닥쳤을 뿐, 이렇게 훈련된 움직임으로 침묵을 유지한 채 접근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선우결은 이 낯선 정적 속에서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은 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왔었지. 자기들이 얼마나 잘났는지 떠벌리려고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냈고.' 그런데 지금 이 기척들은 그런 유치한 과시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 신중하게 거리를 재는 맹수 무리처럼, 발걸음 하나하나가 계산되고 절제되어 있었으며, 그 절제된 침묵이야말로 선우결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냉기의 근원이었다. 사삭··· 마른 잎을 스치는 발소리가 지나치게 균일한 박자로 겹쳐 들려오는 순간, 선우결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몸을 굴려 오두막 옆의 바위 그늘로 파고들었는데, 바로 그 직후 그가 서 있던 자리로 무언가가 정확히 날아들었다. 퍼억! 짧고 둔중한 파열음과 함께 벽면 일부가 움푹 함몰되었고, 그 파편이 흩날리는 것을 곁눈으로 확인한 선우결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손끝에 황금빛 영력을 끌어올렸다. '조금만 늦었어도.' 바위 그늘에 몸을 붙인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는데,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방금 자신의 목을 스쳐 지나간 죽음의 궤적에 대한 순수한 생리적 반응이었으며, 동시에 그는 자신의 판단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지금 이 순간 숨을 쉬고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되새기고 있었다. 위이이잉··· 손바닥 위로 응집된 뇌전의 빛이 낮게 진동하는 소리를 내는 순간, 어둠 속에서 검은 복장을 갖춘 인영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튀어나와 그의 목을 향해 짧은 검을 휘둘렀는데, 그는 상체를 뒤로 젖히며 그 궤적을 피해내는 동시에 손바닥을 상대의 옆구리에 밀착시켰다. 콰지지직! 순간적으로 방류된 전격이 상대의 몸을 관통하듯 훑고 지나가자, 그 인영은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고, 선우결은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짧게 숨을 삼켰다. '죽인 건가.' 손끝에 남은 미약한 저항감으로 보아 완전히 숨이 끊긴 것은 아닌 듯했으나, 상대는 이미 의식을 잃고 늘어져 있었고, 그 얼굴에 새겨진 표식 하나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는데, 검은 복면 위로 드러난 그 문양은 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형태의 인장이었다. '이건··· 뭐지?' 선우결은 그 문양을 뇌리에 새기려 애썼으나, 지금은 그것을 곱씹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문양의 형태는 마치 뒤틀린 뱀이 원을 그리며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선우가에서도, 오대세가의 어느 문파에서도 이런 인장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할 틈은 없었다. 곧이어 좌우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또 다른 두 명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협공을 걸어왔고, 선우결은 이를 악물며 몸을 낮춰 회전하는 동시에 두 다리로 지면을 스치듯 쓸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쿠웅! 둔중한 소리와 함께 둘 중 하나가 바닥에 그대로 처박히자, 나머지 하나는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는데, 그것은 부적처럼 보이는 얇은 종이 다발이었고, 그 위에 그려진 문양이 붉게 빛나기 시작하는 것을 본 선우결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며 몸을 크게 뒤로 젖혔다. '주술구···?' 그가 속으로 그 단어를 되뇌는 순간, 부적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기운이 형체를 갖추듯 응집되었다. 펑! 짧은 폭음과 함께 튀어 오른 화염이 그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갔고, 그 열기에 미간을 찌푸린 그는 곧바로 상대를 향해 손끝의 뇌전을 방출했다. 촤아아악! 허공을 가른 금빛 섬광이 상대의 팔뚝을 관통하듯 스치고 지나가자, 부적을 든 손이 그대로 힘을 잃고 떨어졌으며, 상대는 고통에 찬 신음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처박혔던 다른 하나가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선우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다가가 상대의 관절을 꺾어 완전히 무력화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들려온 둔탁한 소리에 그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우두둑··· '미안하지만 지금은 봐줄 여유가 없어서.' 선우결은 속으로 짧게 사과한 뒤, 이미 무너져 신음하는 상대를 뒤로 하고 다시 다음 위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몇 개의 기척이 남아 있었으나, 이미 절반 이상이 그의 손에 나가떨어진 것을 확인한 남은 인영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으며 잠시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몇 차례의 짧은 충돌이 이어진 끝에, 오두막 주변을 에워싼 열댓 명의 인영들 중 절반 이상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신음하고 있었으나, 선우결은 그 승리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뒤늦게 되새기고 있었다. '숨은 가쁘고, 영력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자신의 영력 소모량을 가늠했는데, 지금까지의 짧은 교전만으로도 상당한 소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남은 자들이 다시 협공을 걸어온다면, 지금과 같은 여유로운 대응은 불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이들은 누구고, 왜 나를 노리는 걸까.'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종류의, 이토록 조직적이고 살의로 가득한 습격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그는 이 산속에 홀로 갇혀 있는 자신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그 어떤 정보도 조력자도 없이 이 위협에 온전히 홀로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외숙부는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그런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으나, 그는 곧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지금은 자신의 안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외숙부의 안부를 걱정할 여유 따위는 사치에 가까웠다. 남은 침입자들이 다시 진형을 재정비하려는 그 순간, 쓰러진 이들 중 하나의 허리춤에서 작은 기계 장치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진동했다. 치이이익··· '뭐지, 저건.' 선우결은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며 경계했으나, 그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자신을 향한 공격의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고는 조심스레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잡음이 뒤섞인 음성이 흘러나오는 것을 선우결이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며 들었는데, 그 안에서 흘러나온 단편적인 말들 중 한 이름이 유독 선명하게 그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선우태랑, 부정행위 적발···주술구 불법거래···오대세가 긴급 소집···" 그 순간 선우결의 손끝에 맺혀 있던 뇌전이 일순 흔들리며 잦아들었고,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그 장치를 향해 몸을 굽혔다. '외숙부가··· 적발됐다고?' 그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뒤엉켰다. 외숙부 선우태랑은 지금까지 그가 이 산속 오두막에서 버틸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을 몰래 이어주던 유일한 혈육이었으며, 그가 이복형제들의 노골적인 괄시 속에서도 완전히 고립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외숙부의 그 은밀한 도움 덕분이었다. '만약 외숙부가 정말로 적발되어 세가에서 힘을 잃었다면···' 그렇다면 지금 이 습격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를 지켜주던 최소한의 방패가 사라진 지금, 누군가가 오랫동안 노려왔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움직인 것이라는 불길한 가정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그 의미를 온전히 되새기기도 전에, 산 아래쪽에서 새로운 인기척들이 무리를 이루며 접근해 오는 진동이 발밑을 통해 전해져 왔다. 두웅, 두웅, 두웅··· 그 진동은 결코 하나나 둘의 발걸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으며, 앞서 그를 습격했던 열댓 명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가 산 전체를 진동시키며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선우결은 이미 절반 가까이 소진된 영력을 다시 끌어모으려 안간힘을 쓰며, 남은 침입자들과 저 아래에서 밀려오는 새로운 무리 사이에 끼어 완전히 포위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절감했다. 도망칠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 이 어둠 속에서, 그는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가장 거대한 위기가 자신을 향해 조여들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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