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실력 좀 숨겼을 뿐인데

3화

국가던전관리청 서울 본부에서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는 익숙했다. "강태호 씨, 한서연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중층 3구역에 실종자 파악 요청이 들어왔어요. 정확히는 실종이 아니라 통신 끊김입니다." 한서연은 늘 그렇듯 사무적이고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말투에는 지친 기색이 섞여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다른 전화벨 소리가 겹쳐 들렸다. 본부 상황실이 얼마나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저희 쪽 인력은 이미 다른 건으로 다 나가 있어서, 프리랜서 회수인 중 등급 맞는 분한테 연결하는 거예요." "이해했습니다. 대상자는요?" "파악 중입니다. 현장에서 확인하셔야 할 것 같아요." "신원도 모르는 채로 들어가라는 겁니까?" "···죄송해요.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요. 위치 좌표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졌다. 평소의 한서연답지 않은 초조함이었다. '뭔가 있구나.'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현장에 가면 알게 될 일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오태식과 함께 장비를 다시 점검했다. 칠흑빛 권총, 마력탄 여섯... 여덟... 여섯, 여섯이 아니라 여덟, 여덟 발. 숫자가 자꾸 헷갈려서 다시 셌다. 여섯 발에서 여덟 발로 늘리고, 로프도 더 챙겼다. 여벌 마력석과 응급 지혈포까지 배낭에 쑤셔 넣었다. "중층이면 최소 2인 1조가 원칙 아니야?" 오태식이 물었다. 말투에는 걱정과 짜증이 반쯤 섞여 있었다. "급하다니까 저 혼자 먼저 들어가고, 현장 인력이랑 합류하기로 했어요." "찜찜하네." "저도요." "내가 같이 가면 안 되나?" "형은 이번 주에 하층 정산 건 남았잖아요. 여기 붙잡혀 있으면 안 돼요." 오태식은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결국 로프 뭉치를 내 어깨에 마지막으로 걸어주었다. "조심해. 뭐 이상하면 바로 빠져나와." "네." 대답은 짧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스쳤다. '이상하면 빠져나오라니, 이미 이상한데.' 인천항 던전 중층 입구에는 국가던전관리청 소속 구조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장비도 통일되어 있었고, 완장에는 계급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방한복 색깔부터 헬멧 마크까지 하나같이 규격에 맞춰진 모습이었다. 나는 프리랜서 조끼를 걸치고 그 사이를 지나갔다. "뭐야, 저 사람은." "프리랜서 아니야? 여긴 왜 들여보내." 대원 몇몇이 대놓고 수군거렸다.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마치 어시장에서 낚아 올린 잡어를 구경하는 눈초리 같았다. 나는 못 들은 척 지나쳤다. 입구를 지키던 팀장 계급의 남자가 나를 막았다. 체격이 크고, 완장에 별 하나가 박혀 있었다. "신분증 확인." "한서연 담당관님 지시로 온 강태호입니다." 남자는 신분증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프리랜서한테까지 손 벌릴 만큼 급하다는 거네. 요즘 인력 부족이 심각하긴 한가 봐." 뒤에 서 있던 다른 대원이 낮게 웃었다. "저런 사람들 데려다가 뭐 얼마나 하겠어. 그냥 몸빵용이겠지." 귀에 다 들리도록 하는 말이었다.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신분증을 다시 챙겼다. '상관없어. 사람만 구하면 되니까.' 그렇게 되뇌었지만, 속에서 뭔가 작게 부글거렸다. 억울하다기보다는, 익숙한 종류의 짜증이었다. 프리랜서 회수인으로 산 지 몇 년째, 이런 시선은 늘 따라붙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같은 답을 내렸다. '저 사람들 인정 따위 필요 없다. 살릴 사람만 살리면 그걸로 끝이다.' 팀장이 손짓하며 앞장섰다. "따라와. 시간 없어." 중층으로 진입하는 통로는 상층과 완전히 다른 공기를 갖고 있었다. 마력 농도가 짙어 숨쉬기가 답답했고, 벽에서는 희미한 인광이 흘렀다. 발밑의 흙은 상층보다 훨씬 미끄러웠고, 습기가 종아리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간간이 들려왔다. 낮게 울리는 그 소리는 짐승의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기계적인 떨림이 섞여 있었다. '뭐지, 이 소리.' 팀장이 앞장서며 말했다. "신호 잡힌 위치는 이쪽. 실종자 통신 마력석이 여기서 끊겼어." "실종자 신원은요?" "몰라. 위쪽에서 파악하라고만 했어." "신원도 모르고 구조 인력을 투입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명령이 그렇게 내려왔으니까 그런 거지. 나도 답답해." 팀장의 목소리에는 짧은 짜증이 섞였다. 그러나 그 짜증 뒤에는 뭔가 감추는 듯한 조심스러움도 함께 있었다. 나는 답답한 기분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마력 흐름을 보니 이상했다. 중층인데도 하층에서나 느껴질 법한 밀도가 국지적으로 뭉쳐 있었다. 정상적인 중층 몬스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뭐지, 이거.' 주변 대원들도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공기가 왜 이렇게 무겁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순간 발밑의 바위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대원 몇몇이 화들짝 놀라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뭐야, 방금 그거!" "지진인가?" "이 던전에서 지진이라니, 그런 게 어디 있어!"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좁은 통로에 부딪혔다. 나는 진동의 방향을 계산했다. 동쪽, 통로 끝의 넓은 공동 쪽이었다. 진동은 한 번이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치 무언가가 지하 깊은 곳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반복되었다. '저건 몬스터가 아니야. 뭔가 다른 거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 순간, 통신기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살, 살려주세요! 누구든···!" 여자 목소리였다. 젊고, 어딘가 방송에서 들어본 듯한 톤이었다. 목소리 끝이 떨리고 있었고, 숨소리가 거칠게 섞여 있었다. 팀장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저거··· 저 목소리 아는데." 주변 대원들도 순간 얼어붙은 듯 서로 눈치를 살폈다. 누군가 낮게 숨을 삼켰다. 나도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통신기 화면에 뜬 발신자 태그가 눈에 들어왔다. [서은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내려앉았다. 어제 티브이에서 봤던 그 이름이 지금 이 순간 목숨을 걸고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주변의 소음이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만 귓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게 뭔 상황이야.' 팀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통신기를 다시 조작했다. "신호··· 신호 다시 잡아봐! 위치 확인!" 대원들이 급히 장비를 만지기 시작했지만, 화면에는 붉은 점이 깜빡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신호가 끊겼습니다!" "뭐? 다시 잡아, 다시!" 혼란스러운 목소리들이 통로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이미 걷고 있었다. 동쪽, 공동 쪽으로.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 있어야 한다.' 그 짧은 문장 하나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 나는 어둠 속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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